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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세를 살아갈 사람들


15년 후 없어질 직업을 위해 하루15시간씩 공부하는 자녀들


탐구자: 요즘 부모 노릇하기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자녀들이 지금 현재 어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위해 학습을 주도하고 있고, 자녀는 부모의 그런 주도에 순순히 끌려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분석가:오늘날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에 관여하는 만큼 그 자녀는 자신의 미래를 부모님께 내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자녀 양육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조차 내가 보기에 실패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어머니와 관계에서 거울반영에 실패한 아이의 문제점을 논하고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너무나도 영리하고 자기 할 일 척척 잘 해내고, 학교에서도 과제 수행도 잘하고 모범생이고 상은 도맡아 받아오고 시험을 치면 늘 상위권이고 이런 아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유능하였다가 점차 공부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공부를 억지로 해 나가다가 존재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탐구자: 그런 경우라면, '부모가 이끌어 준 자녀의 삶은 거기까지다' 하는 말이 되겠군요.


분석가: 그렇습니다.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녀를 부모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로 삼게 되면서, 자녀가 당장 내 앞에서 꽃으로 피어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사춘기가 되면, 그 자녀는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에 여념이 없어야 합니다. 그만큼 혼자(또는 또래 친구들과)고민하고 때로는 방황하고, 현실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스스로의 힘으로 겪어내고 하면서, 누구에 의해 주도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주도하는 자기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때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거든요. 그 아이가 아무리 공부에 탁월하고 경쟁에 유능해진다 할지라도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면, 그런 상태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해도 그 성공은 헛발질에 불과합니다.


탐구자: 자녀들이 우리 사회가 보는 시선에 맞춰서 사회가 요구하는 구조 안에 들어가서 유능하게 사회적 역할들을 수행해 내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닌가요? 그것을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필수 사항이고요. 그게 자본주의 사회, 후기 산업사회의 필수생존 요건 아닌가요?


분석가: 그런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닌데 그런 주장이 통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2000년까지는 통무료 카지노 게임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통하던 교육 시스템은 65세를 평균 수명으로 잡았던 시대의 것으로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죠. 그런데도 이 교육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그 시스템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엘빈 토플러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쓴 소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앞으로 15년 후면 없어 질 직업을 위해 자녀들을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가둬놓고 공부하게 만든다.’ 이 말은 이미 유명한 말이 되었는데도 한국의 부모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탐구자: 그렇지만, 엘빈 토플러가 15년 운운 했던 그 말을 한지가 사실상 20여년이 지났거든요. 2001년도에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한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분석가: 그 시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그 말을 한다면 딱 맞죠. 왜냐하면 앞으로 15년 후면, 우리나라는 메타버스 시대에 들어와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플러가 메타버스까지 예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와 메타버스 시대는 확연이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갈라지거든요.

설령 그런 시대 차원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의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인정받고 유능하여 경쟁적인 직업을 쟁취해 낸 사람이 자기 능력을 계속적으로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나이가 몇 살인지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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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글쎄요, 약 55~60세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그때쯤이면 대부분 정년퇴직을 하게 되죠.


분석가: 그렇지 않습니다. 40세 초반까지입니다.


탐구자: 거의 20년 교육받아서 20년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분석가: 2000년까지는 그래도 전문가 시대였어요. 그래서 그때는 전문적인 지식을 한 번 습득하면 평생 써먹어도 문제가 없었던 시기였죠. 그런데 지금은 지식의 반감기가 갈수록 짧아져 가고 있습니다. 철학자 김용규라는 분은 요즘 시대의 지식의 반감기가 3년이라면, 2030년쯤 되면 3일이 된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 배운 것을 40세까지 써 먹을 수 있다는 것도 65세 수명의 산업구조에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40세가 넘어가면 사회적 자아가 강한 사람도 현실을 견디지 못하거나, 삶의 의미를 상실무료 카지노 게임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특히 남자들은 존재감을 보다 리얼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는 것이 곧 바람을 피울 생각에 몰두한다거나 비현실적인 공상과 환상으로 자아 실현하고자 하여 엉뚱하게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142세를 살아 갈 사람들


탐구자: 그래도 40세라는 나이가 한계라는 것이 여전히 충격적인데요.


분석가: 2015년도 미국의 타임지의 표지 모델로 갓 태어난 아이가 선정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몇 살을 살 것인가 무료 카지노 게임 물음을 던지면서 내리는 답변이 그 아이는 142 세까지 살게 된다는 겁니다. 참고로 지금 40대는 110세를 살고, 지금 20대는 120세를 살게 되지요.


탐구자: 놀랍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오늘날 이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위기에 처해있는가가 느껴지네요. 그러니까 부모가 자녀들이 자발성을 찾을 수 있도록 20 세가 되기까지 기다려 준다 할 때, 그때라도 자녀가 자기 존재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면 다행인 것이네요. 부모는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분석가: 그렇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아동이나 청소년 청년들은 앞으로 한 가지 전공을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으로 자기 계획이나 의욕으로 할 수 있는 것의 폭이 그렇게 길거나 넓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자산의 생을 다할 때까지 살아가는 방식이 좀 바뀌어야 할 겁니다. 교육을 통해서건, 직장생활을 통해서건 자신의 전문성을 확립한 다음에는 이것으로 평생 먹고 살 생각을 하지 말고,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해야 하고 그러기를 최소한 두 번 이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탐구자: 앞으로의 세계가 그런 것을 요구한다면 사람이 매우 창의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겠군요.


분석가: 그런 셈이죠. 만일 100세를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2 모작을 해야 하고,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 세대들이 142세를 살고자 한다면 최소한 삼모작을 해야 자기 삶을 수명대로 효과적으로 살아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65세 평균 수명이었던 사회에서는 유교적인 문화와 겹쳐있어서 아버지가 55세에 은퇴하면 자녀가 그 후 10년 정도를 부모 부양하는 데에 크게 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인인구 증가가 앞으로 크게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부모가 늙었다고 자녀에게 기댈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함께 절대빈곤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망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탐구자: 무엇보다 142세를 살아야 무료 카지노 게임데, 능력 발휘가 40세에 그친다면 향후 100년 동안은 끔찍한 지옥이겠군요. 그런데 최근에 히발 하라리가 쓴 [호모데우스]를 보면, 인간에게 희망을 준답시고 앞으로의 인간은 노후한 장기를 바꿔 가면서 500년을 살 수 있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데 그건 어떻게 보십니까?


분석가: 그런 현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희망을 제시무료 카지노 게임 것이 아니라 인류를 절망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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