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아당 마음편지, 짧은 소설
하얗게 질린 끝순이의 얼굴을 보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어릴 적 동네 친구, 끝순이.
오십여 년이 흘러 다시 만났지만, 죽마고우인 우리는 금세 옛 시절로 돌아가듯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그녀의 집은 ‘딸부잣집’으로 유명했다.
일곱 딸을 낳은 끝에, 아버지는 마지막 딸에게 ‘이제 딸은 그만 낳자’는 뜻으로 ‘끝순’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놀랍게도 그 뒤에 여덟째로 아들이 태어났다.
4월의 봄기운이 가득한 일요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교회 앞마당을 나서던 길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퍼지고, 벚꽃 잎이 흩날리며 햇살에 반짝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유독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서 있는 끝순이를 보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끝순아,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그녀는 한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3월 전도 주일을 앞두고 나는 문득 그녀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고 오랜만에 오늘 교회에 온 것이다.예전에도 교회에 왜 안 나오느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 말씀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쪼여오고 무서워진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목사님은 열왕기상 11장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경고를 두 번이나 어기고 결국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 목사님의 말은 더 날카로웠다. “성경 한 번 안 읽고, 기도도 안 하면서 유튜브만 보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그런 자는 솔로몬처럼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끝순이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가슴이 돌덩이처럼 무거워… 하나님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믿고 싶지만, 자꾸 벌이 먼저 떠올라.”
나는 끝순이의 손을 잡고 교회 1층 커피숍으로 데려갔다. 부드러운 커피 향이 가득한 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녀의 마음까지 데워주길 바랐다. 창밖에는 어린 단풍잎들이 햇살과 바람을 받아 반짝였고,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그 모든 따뜻함 속에서도, 끝순이의 눈은 여전히 두려움으로 움츠러들어 있었다.
“끝순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
그녀는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
“희생을 강요하는 말의 느낌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말을 들으면 힘들어. 그 말만 들으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끝순이는 일곱 딸 중 일곱째였다. 귀한 종손으로 태어난 막내 남동생은 온 가족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독차지했고, 끝순이는 어릴 적부터 ‘이제 딸은 그만’이라는 이름 속에 갇혀 있었다. 가난한 살림에 그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성냥 공장에 취직했다. 모든 것은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서였다.
“식사 때가 생각나. 남동생은 늘 아버지와 겸상해서 쌀밥을 먹었어. 나는 옆에서 보리밥을 먹으면서도 아무 말도 못 했지. 남동생 데리고 학교 가다가 그 애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았어. 귀한 종손을 잘 못 돌봤다고. 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듯이 조용히 살아야 했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반짝였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닦던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받고 싶었어. 쌀밥 먹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었어. 그냥 나로서 대접받고 싶었어.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나도 무언가 필요하다'는 말을 못 해봤어.”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물었다.
“그런데 그게, 내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
그녀는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듯이 말을 툭 내뱉었다. 마침 그때커피가 다 되었다는 말에 일어나 커피를 가져와서 끝순이 앞에 놓았다. 잠시 숨을 고른 뒤, 탁자 위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지금은 어때? 조금 괜찮아졌어?”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 향을 한숨처럼 들이마셨다.
“아까 이야기한 거 말인데…” 나는 말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희생하라는 말이 힘들다’고 했잖아. 나도 그 말 들으면 왠지 껄끄러울 때 있어. 근데 너한테는 그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끝순이는 말없이 커피잔을 감싸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럴 때, 혹시 예전 생각 같은 거 떠오르기도 해?”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어릴 때 내가 늘 동생을 위해 뭔가를 해야 했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혼나고, 엄마 눈치 보이고… 그때 감정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그런 경험이 오래됐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마음은 자꾸 옛날 방식대로 지금을 해석하잖아. 나도 가끔 예전 일이 지금처럼 느껴질 때 있거든.”
끝순이가 살짝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혹시 하나님한테도… 비슷하게 느끼는 건 아닐까? 뭘 잘해야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받을 수 있다고, 안 그러면 벌을 받을까 봐 무서운 거… 꼭 엄마 아빠한테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는 놀라운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럴 수가 있을까… ”
나는 커피잔을 한 번 돌리며, 마치 나도 확신은 없지만 같이 생각해 보자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 네 얘기 들으면서. 어릴 때부터 계속 ‘잘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받는다’는 마음으로 지냈다면, 그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닌데도 말이야…”
끝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단풍잎이 살랑거렸다.
“그럼… 지금 내가 무서운 건 하나님 때문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쌓인 생각이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걸 수도 있다는 거네?”
나는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럴지도 몰라. 혹시 그런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우리 마음이 하는 장난이 꽤 설득력 있잖아.”
그녀는 커피잔을 들어 조용히 한 모금 마셨다.
햇살 속에서 잔이 반짝였다.
끝순이의 눈동자도, 그제야 조금 맑아졌다.
끝순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끝순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다독거려 주고 싶었다.나는 일어나 책상에 앉아 끝순이에게 편지를 썼다.
끝순이에게
끝순아,
오늘 네가 들려준 이야기가 나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어릴 적, 너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마음,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부모를 떠나 객지에서 혼자 지냈을,
누구도 대신 이해해주지 못한 외로움.
그 모든 걸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셔.
네가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네가 울지도 못했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네 곁에 함께 계셨어.
하나님은 너를 벌하려는 분이 아니야.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시는 분이야.
네가 넘어질 때 책망하는 분이 아니라,
다시 손 내밀어 일으키시는 분이야.
끝순아,
네가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받는 게 아니야.
네가 기도를 잘하고, 성경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단지 ‘네가 너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미 너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셨어.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장 1절)
이 약속을 기억해줘.
네가 잘해도, 못해도, 흔들려도,
하나님은 한 번도 널 포기한 적이 없어.
끝순아,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조금 내려놓아도 돼.
벌을 두려워하며 숨지 말고,
그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모습 그대로 하나님 품에 안겨봐.
하나님은 너를 기다리시는 분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으로, 온전히.
네가 오늘 내 앞에서 흘린 눈물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소중한 기도가 되었을 거야.
언제나 너와 함께하는 하나님을 믿으며,
나도 네 곁에서 함께 기도할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는 친구로부터.
(2025.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