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몰래 주는 사랑
일요일 아침이었다. 보슬보슬한 봄비가 아침부터 촉촉이 내리고, 숲은 점점 농익어가고 있었다. 5월 중순에 피는 아카시아꽃이 5월이 시작되자마자 보름이나 일찍 피기 시작하고 방울방울 한 꽃잎들이 벌어지니 향기가 집안까지 스며들었다. 아내는 성당 미사에 가자고 한다. 일요일이니 지당한 말이나 나는 공원에 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황당한 표정이다. 비를 맞으며 굳이 숲으로 들어가겠다는 나를 알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공원 숲으로 들어섰다.
봄비가 숲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정겹다. 후드득후드득 소리를 내며 널따란 떡갈나무 잎으로 떨어져 내린다. 나뭇잎들이 빗물에 씻겨 초록이 더욱 짙어졌다. 촉촉한 황토 흙길을 밟으니 부드러움이 발바닥으로 전해온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참나무 숲을 지나 아카시아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숲 저 쪽 한편에 키 작은 풀숲이 자리한 가장자리에 노랗고 작은 꽃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평소에도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었고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피었다 지고 또 피었다 졌지만 눈길을 주지 않던 곳이었다. 비가 오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왠지 노란 풀꽃들이 선명하고 아름다운데 어쩐지 애처로워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작은 꽃들이 마치 나에게 와서 보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엄지손톱만큼이나 작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노란 꽃들이 귀여운 아기들처럼 피어있었다. 빗방울이 잎에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 옆에서도 바르르, 그 옆에서도 바르르 몸을 떨었다. 마치 빗방울 리듬에 따라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군무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풀숲에 파동을 일으켰다. 나는 느닷없이 일요일 아침 숲 속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멋진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주변 둘레에는 다른 풀들도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중심부 자리를 내주고 둑새풀, 큰 새포아풀, 서양개보리뺑이 등 이름을 잘 알 수 없는 풀들이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군무를 관람하고 있었다. 다른 풀들도 나름대로 수수한 꽃을 머금고 있었지만 그날의 주연은 단연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꽃은 화려하거나 눈에 잘 띄는 꽃은 아니다. 옆에 있어도 지나치기 쉬운 작은 풀꽃이다. 잘 알아주지도 않고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봄이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나는 한동안 이 작은 풀꽃에 마음을 빼앗기고 비를 맞고 서있었다. 불현듯 이 풀꽃이 꼭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병상련의 아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꽃이든 사람이든 화려하고 눈에 띄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화려함이나 눈에 띄는 삶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망과 자신 없어하는 소심함 사이에서 항상 주저하였다. 이 소심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매우 어려워하였다. 아버지는 6.25 한국전쟁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여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하였다. 그 부상의 후유증으로 항상 건강이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매우 지쳐있었고 아버지 머리맡에는 항상 약봉지가 놓여있었다. 몸이 허약하자 신경이 예민하였고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화를 내시곤 하였다. 나와 동생들은 아버지 눈치를 살피는 일이 버릇이 되었고 이것은 나의 내성적이고 말 없는 아이로 자라게 된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맏이인 나는 동생들이 장난을 치거나 소란을 피우면 아버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까 보아 긴장하게 되고 아버지가 우리 때문에 힘들어하면 내 탓처럼 더욱 움츠러들었다.
아버지는 점점 건강이 회복되어 가고 동생들이 커 나가는 것을 보며 웃음 띤 얼굴을 자주 보이며 집안 분위도 밝아지고 우리도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대하는 데는 어려웠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도 아버지가 되었지만 나와 아버지와의 사이에는 대부분 침묵이 흐르고 어색함이 여전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멀리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런 나를 간혹 미안한 듯해하기도 하고, 오히려 나를 어려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내심 반항심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그때의 상처를 이제는 내가 되돌려주며 반사적으로 쾌감을 얻으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버지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는 잦은 폐렴으로 몇 차례 입원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고 통증 때문에 투여된 약으로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를 못하였다. 아버지는 어렵게 나를 보더니 자꾸만 입술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며 말 대신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잠에서 깨면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다가 면회가 끝났다. 그러다가 이틀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애기똥풀도 꽃말이 있을까? 빗속에서 애기똥풀을 한없이 바라보다가 꽃말을 찾아보았다. 애기똥풀의 꽃말은 몰래 주는 사랑’이었다. 나는 애기똥풀을 보며 관심도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나지 않는 이 풀꽃이 나를 닮았다고 생각하였는데, 애기똥풀이 닮은 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버지가 나에게 무관심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알고는 있었지만, 과묵함과 병약한 몸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 속에 감춰진 아버지의 무거운 사랑을 나는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6.25 한국동란을 겪으며 부상으로 학업까지 중단해야 했던 불운하고 궁핍했던 한 시대를 살아왔으며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고뇌를 알아내는데 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버지가 산소호흡기를 낀 채로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던 얼굴 표정과 몸을 뒤척이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토록 오랫동안 못다 한 말이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분명 마지막으로 나에게 무슨 말을 남기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비를 맞으며 애처롭게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애기똥풀을 보며 불현듯 떠올랐다.
“아들아 사랑한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애기똥풀이 애써 몸을 떨며 전해주려 했던 것은 아버지의 깊고 깊은 사랑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몸을 돌려 나오는 나에게 애기똥풀이 자꾸 말하는 것 같다. 아들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