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픈 것도 그녀에게는 짜증 나는 일이다.
둘째가 태어나고 아마도 80 일 때부터 감기에 걸려 자주 병원에 갔다. 둘째가 아프면 첫째가 아프기를 반복하면서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는 토요일 아침이면 가장 먼저 예약하고 병원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기다렸다.
왜냐하면 병원을 갔다가 시댁을 가기 때문이다.
아이 둘 짐을 챙겨 맨 첫 번째로 진료를 받고는 시댁으로 출발했다. 40 분거리 시댁에 도착하면 11시쯤이 되었다. 그녀는 밥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들과추운 겨울에도 시댁에 가서는 방이 좁아 거실 겸 부엌에서 네 식구가 자야 했다. 바로 발 밑에 현관문에서 찬바람이 들어왔다. 그렇게 시댁만 다녀오면 카지노 게임들은 다시 콧물이 났다.
우리 둘 다 일을 하니까 평일에는 병원을 갈 수 없었다. 친정엄마가 카지노 게임 둘을 보면서 병원을 데려갈 수가 없었다. 이제 돌이 된 둘째는 12kg이 나가서 업기도 힘들고 첫째도 이제 4살 카지노 게임였다.
한 번은 택시를 잡아서 가려고 했지만 한 두 정거장 거리이다 보니 택시를 100대를 호출해도 오지 않았다. 결국 친정 엄마가 12kg의 카지노 게임를 업고 첫째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엄마가 힘들어했다. 그때는 나도 매일 야근을 하고 신랑도 야근이라 친정 엄마가 저녁 늦게까지 카지노 게임를 돌봐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와 통화하는데그녀몸이 아파서인지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지만 결국 또 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녀는 두통이 항상 있다고 했고 그래서 신경정신과를 방문했는데 의사가 며느리들한테 할 말 다 하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그러냐며 잘 안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의사가 할 말 다 하시라고 그래야 편하시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하면 난 어떻게 살라는 거지?
어쨌든 의사가 정신과에 가보시라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그녀가 화가 나 있는 상태였는데 그때 내가 전화를 하게 된 것 같다. 갑자기 나한테 화가 났다. 그러면서 나온 얘기는
" 왜 꼭 애들은 토요일에 병원을 가니? 너네 엄마가 평일날 택시 타고 데리고 가면 되잖아!!"
" 어머님 택시가 안 잡혀요. "
" 그럼 버스 타고 가면 되지! 꼭 주말에 아들을 병원까지 운전카지노 게임 만들어서는 여기늦게와? "
아들이 집 앞 병원에 운전하는 게 시댁까지 40분 가는 것보다 그녀에게는 더 힘든 일인가 보다.
그렇게 그녀는 병원에서 정신과를 가보라는 말에 열받은 것을 또 나한테 풀었다. 의사가 며느리한테 다 풀라고 했으니 맘껏 풀어보는 것이다.
왜 난 항상 그녀를 건드리는 사람이 된 것인지... 그녀는 착한데 내가 나쁜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그녀는 친정엄마가 평일에 병원을 안 데리고 가는 것에, 시댁 오기 전 병원을 들리는 것에 화가 났다.
그 이후 난 10년간 면허시험장 이후로 한 번도 안 해본 운전을 내가 해야겠다는 다짐을 카지노 게임 되었다.친정 엄마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사실 카지노 게임 사는 동네가 차가 없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다니기 힘든 지역이었다. 신랑을 데리고 장 보는 것도 싫었다.
엄마를 욕먹게 하는 것도 정말 싫었다. 아이까지 봐주기 위해 위아래 집으로 이사까지 왔고 그나마 가까워서 편하게 아이를 맡겼고 아이들도 엄마 덕분에 밝게 컸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면 아이들은 혼이 났고 무서워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하루는 예뻐라 하지만 이틀이 되면 아이들이 자기물건을 만지는 것도, 떠드는 것도 뭐라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카지노 게임들에게까지 왕노릇했다.
그 이후 둘째 돌잔치로 또 한번 난리를 쳤고 한동안 그녀에게 연락도 안 하고 찾아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도로 연수를 받았다. 그녀 없이 아주 맘 편히 주말마다 도로 연수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중고차를 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비밀이었다. 알게 되면 어느 돈으로 차를 샀나 싫어할 수도 있고 이제 아들 없이도 나를 부를 수도 있어서였다. 아직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들킬일도 없었다.
그렇게 연수를 끝내고 차를 사고도 주차를 못해 매일 퇴근길에 아파트 주차장에 들려 주차 연습을 했다. 그리고 한 달 후부터 가까운 곳부터 운전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마트도 나 혼자 가고 아이들만 데리고도 나 혼자 놀러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주말에 병원도 내가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초보 운전을 붙이고 난 엄마를 데리고 가까운 공원도 가고 실수를 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녀의 자극으로 난 내 생에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인 운전을 하게 되었다. 참나 고맙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