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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Feb 26. 2025

언어(言語)로 그린 카지노 게임 추천 시(詩)가 되다 1

카지노 게임 추천(Imagism: 사상주의 <寫象主義)의 시(詩) 세 편

지하철 정거장에서

에즈라 파운드 (1885~1972)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In a Station of the Metro

Ezra Pound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지하철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이 애용되는 대중교통수단카지노 게임 추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오늘 지하철을 이용하신 분이 많으실 것이고 정거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셨을 것카지노 게임 추천. 출퇴근 시간이라면, 그리고 항시 혼잡한 몇몇 정거장에서라면 더 많은 사람들을 보셨겠지요.


지하철을 이용하며 이역 저역에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에즈라 파운드는 프랑스 파리의 어느 어두운 지하철 정거장에서 밝은 차 칸의 승객들의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낀 것을 이렇게 시로 써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같은 상황을 묘사하기 위하여 시를 쓴다면 어떻게 쓰실는지요?


1910년을 전후해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영미시단(英美詩壇)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된 시운동(詩運動)을 이미지즘(Imagism, 寫象主義)이라고 합니다. 그 이전 세기인 19세기 내내 유럽의 시사조(詩思潮)를 주도하였던 낭만주의와 상징주의에서 벗어나 이미지(image)를 표현 기법의 중요 요소로 생각하고 창작하는 문예사조를 의미합니다. 낭만주의가 서정적으로 아름답고 슬픈 무엇인가를 노래했다면 이미지즘의 시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정확한 시어(詩語)를 사용하며 시각적이며 구체적인 이미지에 치중하며 자유시형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이러한 이미지즘의 시운동(詩運動)의 중앙에 서 있었던 인물이고 또 오늘 우리가 감상할 ‘지하철 정거장에서’는 이미지즘의 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인용되는 이미지즘 시의 대표 격인 시입니다. 두 줄 밖에 안되니 한 줄 한 줄 살펴보겠습니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첫 줄을 흔히 이렇게 번역하지만 원시의 ‘apparition’에는 무언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존재’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첫 구절은 ‘군중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나는 이 얼굴들’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시인이 애초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지하철 정거장에 있는 사람들을 ‘군중’이라는 집합명사로만 보았기에 무리만 보이고 얼굴은 보이지 않았는데, 아니면 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날엔 별안간 사람들의 얼굴들이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관심을 갖고 그 얼굴들을 자세히 보니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로 보인 것입니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꽃잎이 무슨 꽃의 잎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도 벚꽃, 매화, 아니면 진달래 같은 작은 꽃들일 수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꽃은 생명의 진수이고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는 비에 맞아 젖었건 뿌리로부터 올라온 수액(樹液)에 젖었건 촉촉하게 젖어서 꽃잎들이 피어나게 하고 또 계속 피어있도록 생명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지나친 해석일지 몰라도 그날까지 지하철 정거장에서 만나는 군중들은 내 설 자리 앉을자리를 빼앗는 존재로만 인식했기에 그들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던 시인은 이날 문득 눈에 들어온 군중-승객들의 얼굴을 보며 이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받은 인상을 시인은 추상적인 카지노 게임 추천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이미지만을 제시함으로도 의미 깊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시를 썼던 것입니다. 이 시가 이미지즘 시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T. E. 흄 (1883~1917)의 시 ‘가을’


이미지즘의 시(詩)를 이야기할 때 에즈라 파운드만큼 자주 언급되는 시인이 영국 시인 흄(T. E. Hulme)입니다. 흄은 파운드와 같이 이미지즘의 시운동(詩運動)을주창하였으며 낭만주의의 축축한(damp) 표현에서 벗어나 지성적이고 객관적이며 명료하고 견고한 이미지(dry and hard image)를 중심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쓴 ‘가을’이라는 시는 파운드의 ‘지하철 정거장에서’보다 먼저 발표되었는데 이미지스트들로부터 이미지즘에 입각해 쓰인 최초의 시 중의 하나라고 찬사를 받는 시입니다.


가을

T. E. 흄 (1883~1917)


가을밤의 차가운 촉감 –

집 밖을 걸었다,

울타리 위에 기대고 있는 불그레한 달을 보았다

얼굴 붉은 농부 같았다.

나는 말을 걸려고 서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

도시 아이들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Autumn

T.E. Hulme


A touch of cold in the Autumn night –
I walked abroad,
And saw the ruddy moon lean over a hedge
Like a red-faced farmer.
I did not stop to speak, but nodded,
And round about were the wistful stars
With white faces like town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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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막 떠오른 농촌의 밤에 밖으로 걸음을 내디딘 시인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간결하게 묘사한 시입니다. 불필요한 형용사나 서정적인 표현이 거의 없고 몇 개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무엇인가 느낌을 주는 한 편의 시를 써낸 시인의 필력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첫 줄 ‘가을밤의 차가운 촉감’에서 촉감이라 번역된 ‘touch’는 원래 동사이지만 여기서는 명사로 쓰였습니다. 명사로 쓰였기에 차가운 촉감이 가을밤과 더불어 그림의 배경이 됩니다. 그 그림 안으로 시인이 걸어 들어오고 울타리 너머로 굽어보는 불그레한 달이 등장하는데 달은 마치 얼굴 붉은 농부와 같았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한잔 걸친 뒤 집으로 돌아가다 이웃집 담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는 농부의 모습 같은 달이 있는 가을 풍경은 시(詩)라기보다는 한 편의 수채화입니다.


시인은 달에게 인사말이라도 하고 싶었겠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말 대신 이미지로 가을밤의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부적절한 말의 사용으로 자칫 그림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 대신 등장한 이미지는 생각에 잠긴 듯한 별들입니다. 왜 별들이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는지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별들의 얼굴이 도시 아이들의 하얀 얼굴 같다는 회화적(繪畵的)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얼굴 붉은 농부를 닮은 불그레한 달과 달리 도시 아이들처럼 하얀 얼굴을 가진 별들은 무척 대조적입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작은 그림이 완성됩니다.


아무런 말도 설명도 없이 이미지의 제시만으로 시는 그림이 되어 끝나지만 우리 모두는 어떤 느낌을 받습니다.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아름다운 가을밤의 풍경은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속삭이기에 이 시는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시로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출발’


이미지즘의 시운동은 주로 영미(英美)의 시단에서 활발하게 일어났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눈에 뜨일만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9세기말부터 보들레르를 선두로 한 상징주의 시가 지배적인 조류였기에 이미지즘이 자리를 잡을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라보 다리’의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욤 아폴리네르는 예술 운동에서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선두 주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초현실주의(surréalisme)라는 말도 그가 만들어낸 어휘입니다. 시에 있어서도 새로운 형태의 시를 끊임없이 모색하던 그는 카지노 게임 추천 예술인 시와 시각 예술인 회화의 장점을 융합시켜 독특한 시를 쓰려고 시도했습니다.


그의 시 '출발'을 읽어보면 아주 짧은 시이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와 회화가 잘 융합된 이미지즘의 시를 읽는 느낌입니다.


출발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리고 그들의 흐느낌은 부서졌다


순수한 꽃잎 위의 눈처럼

또는 내 입맞춤에 닿은 너의 손처럼

가을 나뭇잎이 떨어졌다


Le Départ

Guillaume Apollinaire


Et leurs visages étaient pâles
Et leurs sanglots s’étaient brisés


Comme la neige aux purs pétales
Ou bien tes mains sur mes baisers
Tombaient les feuilles automnales


시의 제목이 출발(Départ)이지만 읽다 보면 평범한 일상의 출발이 아니라는 느낌이 점점 전율처럼 다가옵니다. 창백한 남과 여의 얼굴이 그림으로 떠오르고 그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흐느낌이 부서져 깨어진 유리 파편처럼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잔뜩 긴장한 독자에게 다음 순간 장면이 바뀌면서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순수한 꽃잎 위의 눈처럼 또는 내 입맞춤에 닿은 너의 손처럼! 겨울 눈 내린 산길을 걸어본 사람은 겨울 꽃 위에 흰 모자처럼 앉아 있는 눈의 모습에 담겨 있는 평화를 알 것입니다. 또한 연인과 헤어지며 말 대신 그 손에 입맞춤해 본 사람은 떨리는 그 손이 전해주는 안타까움을 알 것입니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이 아름다운 두 가지의 정경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그림이 될 때 돌연 그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있습니다. 가을 나뭇잎입니다. 가을 나뭇잎이 부드럽게 떨어져 내리며 그림은 완성되고 두 사람은 나뭇잎처럼 출발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그들만이 압니다. 하지만 프랑스어 Le Départ 에는 '출발'이라는 뜻 외에도 ‘시작’이라는 뜻도 있으니 그들의 출발은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출발’은 짧은 시이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 예술인 시와 시각 예술인 회화의 장점을 같이 살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낸 아폴리네르의 대표 시의 하나입니다.


2025. 2월 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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