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자신의 등불이 되어라
열한 카지노 게임 - 채사장
지대넓얕은 저자로 유명한 채사장의 책이다. 지대넓얕도 좋았지만 열한 카지노 게임은 더욱 좋았다. 역사와 종교, 영적 개념과 현실을 고루 다룬 저자의 지식과 안목이 부럽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뵙고 싶은 분이다.
'이제는 안다. 완전함과 충만함이란 아이러니하게도 미숙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할수록 세상은 단순하고 명쾌하게 보인다. 문제는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파악할 때에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른으로 성숙해간다는 것은 세계의 복잡성을 초연하게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세계의 복잡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완전함과 충만함의 허구성을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완전함과 충만함을 내려놓은 사람에게 행복은 없다.'
- 20대의 치기 어린 시절 온 세상이 꽃밭이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시기였다. 완전함과 충만함을 추구했고, 때로는 완전했고 충만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돌아보면 미성숙했기에 가능한 시간들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의 무서움을 몸소 느꼈다. '나'라는 존재는 우주의 티끌 중 하나이면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 완전함과 충만함을 통한 행복은 어떤 사람에게는 사치일 수 있겠다. 다만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성숙한 어른이지 않을까.
'자신이 자신의 등불이 되어라. 자신이 자신의 의지처가 되어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라.'
- 학생 때는 항상 누군가가 챙겨주었다. 부모님과 선생님, 하다못해 대학시절에는 동기들이 하루하루의 방향성을 알려주기도 했다. 사회에 나온 카지노 게임 그런 가이드는 사라졌다. 내 일은 내가 찾아 나서야 했고 내 건강은 내가 지키는 것이었다. 신뢰는 한카지노 게임에 사라질 수 있었고, 사람은 때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지원군이 되어야 했다. 그러려면 '나'에 대한 떳떳함과 스스로를 감싸는 동정심이 필요했다. 그 일환으로 변하지 않는 진리는 중요하다.
'여행을 통해 카지노 게임 보고 배운 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었다. 감추사에는 붓다가 아니라 주지스님이 있었고, 교회에는 신이 아니라 신자들이 있었으며, 시장에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은 형이상학적인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는 공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체적인 삶으로 가득했다.'
'놀랍지 않은가. 이 싱그럽고 건강한 카지노 게임을 나는 무한히 경험해왔던 것이다. 내가 이 삶을 다시 선택한 이유, 한 번 더 나로서 살아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바로 이 카지노 게임을 그렇게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찰나의 카지노 게임은 무한히 중첩된 내 삶의 한 지점을 강하게 꿰뚫고 있었다.'
- 방 안에서만 꿈꾸는 세상은 어쩌면 너무 이상적일 수도, 너무 절망적일 수도 있다. 꿈과 이상, 걱정과 두려움 대신 현실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 사람들과 함께 삶의 고락을 느끼고, 최선을 다해 구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의 특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다.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한 시간들도 개인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임을 말이다. '
- 20대의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친구의 말이 있었다. 왕따를 당했던 과거의 경험조차 지금은 고맙다는 그 친구의 말은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안 좋았던 과거의 기억 덕분에 현재의 본인이 있다는 말은 가장 성숙한 어른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삶의 모든 카지노 게임이 내게 필요한 카지노 게임들임을 인지하면 어려운 시기도 조금은 수월해질 수도 있겠다.
'운 좋게도 멈춰 설 기회를 얻었으니, 뒤돌아 가서 놓고 온 것들을 챙기세요. 그리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세요. 또다시 허둥지둥 달려오면 안 돼요. 길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을 돌보면서 오세요. 그렇게 천천히 인생의 마지막에 닿았을 때,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삶이 당신에게 정말 주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에요.'
- 가끔은 의도치 않은 사고로 인생이 정체되는 듯한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카지노 게임들은 마치 필요악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불평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런 카지노 게임들이 나라고 오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멈춤을 당하는 시기가 오면 빨리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기보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조급함은 오히려 삶의 균형을 깨기 마련이다.
'허망해하지 마라. 너는 잘하고 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해라. 미련과 아쉬움과 후회를 만들지 마라.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를 심판하는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삶과 죽음이 바로 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 종교적인 관점에서 어긋날 수 있으나, 결국 카지노 게임 나의 신이다. 죄책감과 후회로 카지노 게임 나를 심판하고, 기쁨과 행복으로 카지노 게임 나에게 상을 준다. 상벌의 주체가 '나'임을 인지할 때 세상살이는 한결 더 편해진다. 다만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자주 본인이 '신'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완독 후 열한 카지노 게임 대신 한 카지노 게임은 올라선 듯하다. 삶을 있는 힘껏 구체적으로 살고, 순간순간에 당당해야 한다. 남이 아니라 본인에게 당당할 것. 그리고 때로는 나약한 자신을 위로할 것. 결국 내가 나의 신이자 등불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이내 곧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방황할 시간이 오리란 것도 안다. 그 시기에 다시 한번 이 리뷰를 읽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