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십 대 초중반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를 거의 점령했던 사람이 있었다. 많이 좋아했고, 아주 동경했던.
그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어느 정도의 사람으로 남아 있을까. 별 것 아닌 존재로 느슨하고 희미하게 잔여 하면 어쩌나 그 가능성만으로도 풀이 죽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카지노 게임하고 싶었다. 어떻게 카지노 게임하냐면, 이쪽에서는 그쪽을 검색하면 근황을 알 수도 있었으므로, 이쪽의 경우에는 검색하지 않아도 종종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와는 다른 분야에서 약간만 도드라지는 업적으로 비치는 정도. 오래 고민하고 내린 카지노 게임의 방법치고는 짜치지만, 뭐랄까 당당해지고 싶었다. 창작자로 밥벌이를 하는, 재능과 노력과 결실을 겸비한 개체로 보이고 싶었다. 잘 해내서 대견해지고 싶었다. 사실 그를 빼더라도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지만.
어쨌든, 그의 영화가 작년에 개봉했다. 오래 준비했을 것 같은 규모였으나, 흥행에 카지노 게임했다.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와 인터뷰를 하고, 배급사에서 매체를 통해 홍보를 하고 관객이 집계되고 ott를 타는 일련의 과정을 알고리즘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올해 1월에 봤다. 재미있었다. 훨씬 잘하는 사람인데 덜 발휘된 것 같아 안타깝기는 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봤다. 카지노 게임기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그의 재능에 압도되어 피니시 라인이 보이지 않던 때가 있었다. 나 자신도 카지노 게임하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놈의 경쟁을 하나 싶을 때 그의 두 번째 장편이 개봉했었고, 뭘 카지노 게임하려고 했지 잊어갈 때 최근작이 나왔다. 손익분기점을 과연 넘기지 못했겠구나 싶은 이번 영화의 결과는, 어떤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안도감은 아니고, 다행스러움도 아니고. 쨉도 안 됐던 스코어의 갭이 아주 약간 줄어든 느낌이랄까. 나의 추가점이 아닌 그의 실점으로. 사실 중요한 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건 내 쪽이다. 공모전에서 마다마다 미끄러지면서 평균도 못 되고 있으니. 그와 비슷한 선상에 놓이고자 했으나, 나는 너무 ground, 그는 너무 sky.
많이 옅어졌지만, 여전히 그를 동경한다. 그가 가진 안팎의 것들을 질투한다. 생각해 보니 그와 사귈 때의 그의 나이가 됐을 즈음을 피니시 라인으로 점해뒀었다. 나이차가 많이 났으니까. 그 나이에서 3년을 더 먹었다. 카지노 게임기는 어떤 절정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슬픈가. 슬펐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상처받지 않으며 내 한계를 직시한다. 아주 놓지는 않기 위해 브런치를 다시 켠다. 조금은 좋은 결말을 바라면서 점진적으로 나아지고자 한다. 원대한 욕심 없이 문장 자체가 나아지길, 나아가길. 카지노 게임기라고 꾹꾹 눌러쓴 오래된 글자를 지우자 자국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다. 종이를 뒤집어서 그 자리를 문지르면 좀 더 평평해지겠지. 이를 갈던 카지노 게임기는 무색해졌지만 성숙기는 나름 괜찮은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