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군대를 제대하고 며칠 후, 서울에 간다 말하곤 집을 나섰다.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시는 아버지께 배를 타러 간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말년휴가 나와 혼자 세운 계획이었던지라 어떻게 반응하실지 조금 걱정을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별 말씀 없으셨다.
서울 어귀의 인력사무소에 몇 사람이 모였다. 승합차 한 대에 옹기종기 끼어 앉아 충남의 한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스스로 한 결정이었지만 이동하는 몇 시간 내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적막했던 차 안의 무거운 공기는 나와 그들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목적지에 도착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ㅇㅇ호(배마다 이름이 있었다.) 선주의 집으로 배정되었다. 인력사무소 직원, 선주 아저씨, 나 이렇게 셋이 앉아 잘 알지도 못하는 계약서를 작성무료 카지노 게임. 그렇게 그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기상시간은 새벽 세 시에서 네 시 경이었다. 옷을 켜켜이 껴입고 아주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을 챙겨 항구로 나간다. 통발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기계가 하지만, 그래도 일이 만만치는 않았다. 초반에 손바닥이 두어 번 벗겨졌다. 어떤 날은 홀로 지내는 방에서 밤새 앓기도 무료 카지노 게임.
가을 꽃게를 몇 마리 못 보고 10월 말에 나왔다. 꽃게가 너무 안 잡혀 정산할 금액이 얼마 안 되었다. 그렇다고 했다. 물론 그 금액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지식도 없고 권리 주장도 제대로 못하던 때라 그게 맞는가 보다 했다. 일이 없는 날 시내에 나갈 때 쥐여주었던 몇 푼의 돈도 다 무료 카지노 게임했던 금액에 포함된 거라며 제한다고 했을 때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 나머지 돈을 얼마 후에 주겠다는 말도 그대로 믿고 올라왔다. 10월 말이었다.
다음 해 학교에 복학한 후에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이 몇 번 그 집에 전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나중에”를 반복하더니, 어느 날은 그 집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다. 속이 상했다. 해결 되었냐는 전화기 속 부모님의 물음에 “내가 알아서 할게요.” 퉁명스럽게 받아치길 수차례였다. 몇 개월의 고민 끝에 충남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기로 결심했다. 오후에 버스를 타고 내려가 PC방에서 밤을 새운 뒤에 보령까지 다녀왔다.
며칠이 지난 뒤 연락이 왔다. 선주 아저씨가 모두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얼마 후 돈을 입금해 주겠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도 받아냈다고. 물론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금융 거래 정지. 그랬더니 바로 돈을 보냈왔다. 돈도 돈이었지만, 그것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로 인해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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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일용직 노동자, 아르바이트생, 인턴, 계약직 등 사회적 약자들은 종종 이러한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제때 돈을 받지 못하거나, 계약과 다른 조건으로 일하게 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항의할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법적 지식이 부족하고, 필요한 절차가 복잡하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으면 좋겠다. 약속을 지키면 좋겠다. 지키지 못하면 그다음 해야 할 행동을 취했으면 좋겠다. 피하지 않고 사과하고 책임질 자세와 각오.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 또한 존중해 주어야 할 대상임을 잊지 않는 세상이길 바란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의지가 생길 거라 생각한다. 노력이 결실을 맺으리라는 믿음,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으리라는 믿음, 서로 간의 약속을 지키리라는 믿음.
이 믿음이 깨질 때, 우리 사회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약속에 대한 존중은 사회의 기본이다. 이런 노동의 가치와 권리를 위해 싸웠던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노동환경이 가능해졌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약속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서로의 신뢰가 담긴 행동이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한 사람의 상처를 넘어 사회 전체의 믿음을 흔들 수 있다. 반대로 약속을 지키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약속이 지켜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십 년 전 노동자 전태일은 이렇게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래, ‘준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