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지음 / 384쪽 / 19,800원 / 어크로스
초콜릿색 표지에 글자 하나하나 다른 폰트로 적혀있는 제목. “친애하는 카지노 게임 추천 씨”
‘가만있자, 카지노 게임 추천 씨라면 스누피의 작가 아닌가?’
나름 스누피의 덕후라 눈을 반짝이며 책을 펼쳤다. ‘1부, 여자 옷과 주머니’ ‘2부, 친애하는 카지노 게임 추천 씨’로 구성된 이 책은 오랫동안 신문에 칼럼을 쓰고 지금은 구독 기반 매체 ‘오터레터’의 발행인인 박상현의 책이다. 모두 열여섯 꼭지의 글이 실렸는데, 읽다 보면 하나하나 잠깐씩 책에서 눈을 떼고 숨을 고르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공원에서 망원경으로 탐조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고, 누군가는 자기 이름으로 마라톤 경기에 나가 뛰는 내내 방해하는 사람들에 시달려야 했으며, 누군가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남들은 금지당하는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흑인 남성이라서 여성이라서 간성인이라는 이유로 벌어지는 일들은 먼 과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들이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것은 여성 옷에는 주머니가 필요 없다는 남성 중심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완톤 폰트’로 일컬어지는 폰트 문제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뭔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폰트 안에 담긴 차별과 그것을 적당히 이용해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인들 이야기는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세상에, 이 책 제목이 여러 폰트로 쓰여있는 것이 단순히 디자인적 요소만이 아니었다.
계속 불편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슐츠 씨가 보낸 답장에 적힌 말 한마디에 ‘휴~’ 큰 숨을 쉰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후, 해리엇 글릭먼 씨는 슐츠 씨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에게 ‘스누피 만화’라고 불리는 『피너츠』에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달라는 내용이다. 아이들이 인종에 대해 편견 없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이 편지를 받은 슐츠 씨는 고민에 빠진다. 백인 일색의 만화에 흑인 캐릭터 하나를 넣는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 추천을 모르겠다는 말로 마무리하는 답장을 보내는 것이다.
슐츠 씨가 솔직한 고민을 담은 답장을 보낸 그해 여름, 『피너츠』에는 ‘프랭클린’이라는 새로운 흑인 아이 캐릭터가 등장한다. “수영을 하고 있는데 이게 떠다니기에”라는 대사와 함께 찰리 브라운의 비치볼을 들고 말이다. 얼핏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 공공수영장은 흑인이 사용할 수 없었고 ‘흑인은 수영을 못한다’는 편견이 가득했던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슐츠 씨가 프랭클린을 등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을 모르겠습니다’라는 슐츠 씨의 말은 외면이 아니라 무뎌지지 않기 위한 고민의 시작이었다.세상 모든 혐오와 차별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나를 다그치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카지노 게임 추천을 모르겠다고 시작해도 된다는 말이 큰 토닥임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것이 그 시작일 수도 있겠다. 나도 슐츠 씨처럼 무뎌지지 않기 위해, 날카롭지만 좀더 다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사유하기 위해 읽고 다독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박미숙_전 일산도서관 관장,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