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당신의 돌을 놓으시오
철의 십자가 앞에 자신이 짊어진 돌이나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놓고 간다. 내가 놓고 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권여선의 소설 “이모”가 생각난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어머니 등살에 남동생 사업비용을 대느라 다니던 대기업도 그만두고 결혼도 못한 큰 누나는 가족과 연락을 끊고 아주 적은 생활비로 살며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만 읽는 생활을 한다. 왜 이 소설이 떠올랐나. 큰누나, 우리 사회에서 부르는 이모의 나이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피해를 본 세대이다. 그러나 간소하고 어찌 보면 답답해 보이는 이모의 삶은 당당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노후를 저렇게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책을 좋아해서인지, 이모의 삶이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가족을 버렸을 때의 죄책감은 없다. 할 만큼 했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복잡한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지인이 걱정한다. 자신의 자식 결혼식에 올 친척이 없어서 (관계가 틀어져서) 걱정이라고 말한다. 아직 결혼 날짜를 잡은 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한다. 그런데 그 지인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남의 시선 때문에 늘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산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 사랑해야 하는 관계인데 서로를 모른 채 희생만 강요하기도 한다. 나도 형제자매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느끼는 근원적 외로움도 이 관계에서 비롯된다. 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관계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힘들다. 나는 이 관계의 무게를 여기 버리고 간다. 이모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행동하고 싶다. 오해를 받은 행동들, 오해가 생긴 과거들, 내가 용서받고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고 가고 싶다.
눈보라를 헤치고 내려간 길은 다시 봄이다. 내 인생도 새로운 인연으로 잘 가꾸는 봄의 정원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