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작가의 "커피는 내게 숨 이었다"
멈출 것 같지 않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안녕을 고하는 겨울초입에 들어서야 또다시 내 눈에 들어와 결심을 했다. 세상밖으로 내 보내자고. 도서관 신간코너에 떡! 하니 꽂혀있는 책을 보며 어찌나 반가우면서도 미안하던지 오늘은 그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려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 와서까지 아픈 사람을 떠올리긴 싫다. 나는 지금 아픈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게 지긋지긋해 여기로 달려온 거였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어 도망친 셈이라도 쳐 보려 여기로 뛰쳐나온 사람이었다. p.46.
두 발 딛고 서 있는 곳을 두고,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고 뇌까리는 내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안의 어떤 내가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를 벌하려는 나와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려는 내가 내 안에 팽팽하게 살아 숨 쉰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화해시키지도, 살리지도, 죽이지도 못하고 있다, 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