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네덜란드 #6.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유난히 밝은 밤이었다. 유럽은, 특히 내가 있는 곳은, 워낙 밤거리에 사람이 없다 보니 가로등마저 빈약했다. 평소보다 유난히 주변이 잘 보이는 듯해서 무심코 하늘을 올려보다 발견한 것이 달무리였다. 보름달이기도 했지만, 그 주변에 살짝 번지듯이 동그랗게 달무리까지 지면서거리를 더욱더 환히 밝히는 듯했다.
더군다나 그 날은 이 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몇 안 되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사실 그동안 업무 공간에서 핀트가 맞지 않는 친구들만 만나 계속해서 말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마음이 맞는 친구, 맞지 않는 친구가 있었음에도, 이를 까먹고 해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부족한 성격만을 탓하며 날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다른 보석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생각 없이 웃으며 즐거운 대화를 마친 하루였다. 사실 그 날 이후로 다시 만난 적은 많지 않아 나를 갉아먹는 짓을 가끔 하고 있기는 하지만, 뭐 일단은. 그 날은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얼마나 웃었던지 광대가 너무 아파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날 발견한 달무리였다. 간단히 맥주를 마셨던 날이라 취기도 오른 상황이었거니와, 한껏 행복한 기분에 달무리라니. 새삼 몇 년 전 가족끼리 갔던 여름 캠핑 날, 밤 중에 화장실 가려고 잠시 텐트에서 나왔다가 발견했던 달무리가 생각났다. 무심코 쳐다본 하늘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을 가족 생각까지 이어지고 나니 저 달무리가 운명의 표식인 양 넋 놓고 쳐다봤다. 추위고 뭐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조금 걸어가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충동적인 오밤 중에 사진 찍기였지만, 카메라를 꺼내고 보니 오기가 생겼었던 것 같다. 밤하늘을 찍기에는 아이폰 기본 카메라로는 뭔가 부족했고, 예전에 받아둔 유료 수동 카메라 어플까지 켜서 셔터 속도, 감도까지 조절해가며 사뭇 진지하게 찍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옆 집에서 카지노 가입 쿠폰 나왔고, 나는, 내 기억에는, 그냥 무심하게 한 번 쳐다봤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 나왔네 정도. 그렇게 옆 집에서 나온 남자는 집 앞에 주차된 차를 닦기 시작했다. 급하게 어디를 가야 하는 일이 있는 건지, 대충 옷과 손으로 창가 서리를 닦았다. 그렇게 잠깐 차를 닦다 나랑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엄청 당황해하기 시작했고, 양 손바닥을 내게 보인 채 멋쩍이게 웃으며 그 카지노 가입 쿠폰 내게 한 말은,"Don't be scared."였다.
난 그냥 쳐다봤을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그 카지노 가입 쿠폰 나올 때 그리고 눈이 마주쳤을 때 움찔거렸나 잠시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랬을 거다.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기에. 집 앞이라 하더라도 밖에서, 밤 중에 갑자기 만난 남자에 몸이 먼저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도 무의식적으로 몸이 겁을 먹다니, 그것도 슬픈데처음 만난 이웃끼리의 첫인사가 "무서워하지 마."라니. 나도 순간 당황해 그냥 멋쩍게 웃으며 괜찮다는 대답 한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계속해서 차를 닦았고, 나도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람은 차를 타고 어딘가로 출발했고, 나도 사진을 다 찍고 자전거를 챙겨 집에 들어갔다.이렇게 예쁜 밤하늘 아래에서의 대화는 왜 그랬어야 했을까. 오늘 달 정말 이쁘죠? 같은 평범한 한 마디, 아니 그냥 평범한 'Hi' 정도라도 나눌 수 없었을까. 왜 나는 이런 평범한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신변의 위혐을 느끼게 되었을까, 계속 생각이 들었다. 설령 내가 움찔거리지 않았더라도,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떠한 잠재적 가해자의 오해를 받아왔기에 단순히 눈이 마주친 (동양) 여자에게 멋쩍게 "무서워하지 마"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생각해 볼수록 모든 경우의 수가 너무 현실적이라 참 삭막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 사람의 무서워하지 말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놓았던 내가 걸렸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