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속도로 달리는 중입니다
개강한 3월 캠퍼스는 대학 생활에 대한 신입생의 기대로 넘실거린다. 대학의 현실을 깨달은 자들만 존재하는 2학기의 차분한 분위기와 다르다. 신입생의 기대는 물에 닿은 솜사탕처럼 2주 안에 사라지겠지만, 활기찬 캠퍼스에 도착하면 절로 힘이 난다.
K-콘텐츠의 글로벌 흥행과 학령인구 감소 및 고령인구 증가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대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나 만학도가 신입생 중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20대 대학생을 제외하고,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학생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우선, 가장 어려웠던 학생은 질풍노도의 15세였다. 타고나길 노잼인간이라 청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의를 못 한 나의 잘못이 크겠지만, 일부 학생은 강사의 말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중학교 선생님들은 어떤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지난 학생과 비로소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수업했던 경험은 아직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공부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친구들에게 배웠다. 이들은 대학교 평생교육원 소속 위탁교육 학생들로 본인의 진로 방향을 일찍이 결정한 상태였다. 내(라떼)기준으로 고3이라면 응당 해뜨기 전 아침 자율학습을 위해 등교하고 학원과 독서실을 돌다가 자정 무렵에 집에 들어가는 일상이 당연했다. 진로 고민에 대한 답은 대학입시 성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르친 21세기 학생들의 삶에는 대학 진학 이외에도 다양한 목적이 있었다. 영상편집 전문가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꿈을 갖고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학생에겐 대학이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도구였다. 실제로 이 학생들은 대학 진학 후 영상제작사를 설립하여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이 학생들을 보면서 그간 내가 생각해 온 고교 학습과 입시의 세계는 참으로 협소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생활은 좀 했던 어른이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자 대학을 찾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만학도의 등장 되겠다. 지방 전문대학에서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학위과정을 진행하곤 한다. 학생의 평균 나이는 대략 50대. 어린 학생에 비해 기술 습득 속도는 느릴지라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누구 못지않다. 만학도는 기본적으로 수업에 대한 반응이 적극적이며 긍정적이다. 리액션이 좋다는 의미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만학도의 리액션은 보따리 강사를 춤추게 한다. 더불어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어림에도 선생으로 존중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어린 학생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간관계의 능숙함도 느껴진다. 또 다른 특징은 매우 부지런한 학생들이 많다. 9시에 시작하는 수업에 상당수 학생이 1시간 전에 도착했다. 생각해 보니 이분들이 늦잠 자는 20대 초반 대학생 자녀의 등짝을 스매싱하는 부모님이겠구나. 이들은 못해도 일단 해보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 뭔가를 배우다가 남들보다 못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크게 당황하고 이내 포기하는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출처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배운다는 건 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고 한다. 여전히 일주일에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 지방행 기차를 타고 출강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에 해상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일단 이 고생도 감수할 만하다. 지금은 3월. 카지노 게임 좋은 때고,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