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_대한민국 편 #17
39.
김태평 박사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마을에서 레나와 함께 너무도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땅굴족과의전쟁이 끝나 맘 졸일 일도 없고, 그에게 헌신적인 레나가 하루종일 옆에 붙어서 수발을 들어주니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때가 되면 그녀가 차려주는 밥 먹고, 슬슬산책이나하고, 밤에는 그녀와 운우지정을 나누었다. 그녀는 이제 남녀 간의 사랑에 완전히 눈을 떠 그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그렇게 세상 부러울 것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지만, 김박사는 뭔가마음한구석이 허전하였다. 우주탐사선희망호에 몸을 싣고 외계신호를 확인하기 위해서 떠난탐사길. 그러나 그 끝은이곳,세월이 한참 지난 미래의 지구였다. 도대체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까? 희망호의여정의 끝이 여기일까? 그냥 편하게 이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라는 걸까? 아니면 다시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하는 걸까? 어떻게?그는 늘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런 김박사를 보는 레나는 또 그녀대로 마음 한편이 불안하였다. 그가 이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걸까? 혹시라도 자기를 두고 떠나지는 않을까? 가끔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보노라면 왠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럴수록 그녀는그에게 매달렸다. 그의 모자라는 부분을채워주기 위하여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였다.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어찌 보면 그를 떠나보내지 않으려는그녀의몸부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와 한 몸이 되어 그가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겨우 마음이놓였다.
레나는 김박사를 위해 음식에신경을 많이 썼다. 식사 때마다 밥을 새로 짓고 요리를 정성껏 만들어 상을 차렸다. 하지만 채식 위주의 식재료와 뻔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방식에 한계가 있어그녀 스스로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매일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야 그가 좋아할까'하고 고민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야생닭을 사육하는 우리 옆을 지나던 그녀에게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닭을 잡아서 요리를 하면 어떨까 싶었다. 그녀는 거의 육식을 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야생동물로 요리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김박사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 칼을 들고 나온 그녀가 닭장앞에 섰다. 한참 망설이다 용기를 낸 그녀가 닭장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갑작스러운 인간의 등장에 놀란 닭들이 그녀를 피해 이리저리 달아났다. 그리고 그뒤를 그녀가 칼을 휘두르며쫓았다. 쫓고쫓기는소동이한참 동안 이어졌다. 결국재수 없는 놈 하나가뒤처져그녀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그녀가 든 칼이 허공을 그었고녀석의목이댕강 잘려 바닥에 굴렀다. 머리가잘린 녀석은 붉은 피를 울컥울컥 쏟으며 몇 걸음 더 옮기다 쓰러졌다. 이윽고 그녀가한 손에는 피 묻은 칼을, 다른 한 손에는 목이 잘려 축 늘어진 녀석의 다리를 잡고 의기양양하게 닭장을 나섰다.
"닭요리를 만들었어요. 드셔보세요."
그날 저녁, 김박사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레나가 상을 차렸다며 식사시간을 알렸다. 닭? 닭요리라고? 김박사는 귀가 솔깃하여 일어섰다. 오래전 먹었던 단짠단짠 한 닭강정과 시원한 맥주가 떠올라 입맛이 다셔졌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식탁에 놓인 닭 요리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여전히 멀쩡해 보이는 닭이 가슴까지 물이 찰랑이는 탕에 홀랑 벗고 누워 있었다.뭐야 이거? 아직 생닭 같은데?그가레나가 죽 찢어 준 닭다리를 들고 한입 뜯어먹어보았다.눈에 보이는딱 그 수준이었다.뻐등뻐등하고 질긴 식감에야생동물 특유의 노린내가 났다. 그는 차마 입에 든 걸 뱉어내지는 못하고 질겅질겅 씹어서 겨우 삼켰다. 레나가 눈을 꿈뻑이며 '어때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그런그녀를 보며 맛없다고, 못 먹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오늘 속이 좋지 않아서' 하고 변명을 대며 먹다 남은 닭다리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러나그녀는그의 표정을 보고대번에 알았다.닭온라인 카지노 게임가잘못되었다는 것을.
"미안해요. 제가 요리를 못해서요."
"아니, 괜찮았어요.내가 그냥 속이 안 좋아서..."
다음날 오전 산책을 하고 돌아온김박사는 레나를 찾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닭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여태껏해본 적은 없었지만 어찌하든 이곳 사람들보다는 나을 듯싶었다. 그는 레나에게 이것저것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고 닭장으로 향했다. 그가 닭장 가까이 다가서자 녀석들이 위기상황임을 감지하였는지 저만치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는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침착하게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포획망을던졌고 그중 운이 없는 녀석두 마리가 걸려들었다. 일타쌍피. 잠시만에 닭 두 마리를 들고 주방으로 돌아온 그는 망설임도 없이 닭 목 뒷부분을 콕콕찔러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리고 펄펄끓는 물에 던져 넣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린 녀석들은깃털이며 솜털이며가 쑹덩쑹덩 빠졌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닭을깔끔하게맨 몸뚱이로만들어 놓은 김박사는 이어서 녀석들의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였다. 그러고나서 칼로 녀석들을 탕탕 내리쳐먹기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그는 녀석들을 다시 한번 물로씻어 낸 후 밑간을 하여 재워 두었다. 그가 능숙하게 닭을 다루는 모습을 레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헤 멀리고 지켜보았다.그녀가 보기에 그는 지상족 마을 최고의 요리사였다.
"어떤 요리를 할 거예요?"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게 있는데 아마 레나 입에도 맞을 거예요."
김박사는 레나가 준비해 놓은 재료 중 먼저 옥수수기름을 솥에넉넉하게담아불에 올렸다. 그리고옥수수가루로 질펀한 반죽을 만들었다. 그걸로 튀김옷을 입힐 참이었다. 그가기름솥에반죽을 조금 떼어 넣자 치지직 하며 튀겨졌다. 기름이적당하게뜨거워진 것을 확인한 그는염장해 둔 닭에 튀김옷을 입히고퐁당퐁당집어넣었다. 치지직치지직. 기포가 일며 닭이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가 났다. 닭과 옥수수의 콜라보. 먹이로 옥수수를 먹고 자란 닭이 옥수수 옷을 입고 옥수수기름에 튀겨졌다. 색깔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후라이드 치킨을 보며 김박사가 군침을 꼴깍 삼켰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레나도 덩달아 침을 흘렸다. 김박사는튀긴 닭을 꺼냈다가 한번 더 옥수수기름에 넣고 바싹 튀겼다.
"자, 레나가 한번 맛을 봐요. 어떤지."
김박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레나에게 건넸다. 육식을 별로 해보지도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는 그녀였지만 김박사가 건넨 닭요리는 괜찮을 것 같았다. 레나가치킨 조각을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사삭' 소리를 내며 튀김옷과 함께 살점이 씹히며 입안에 맴도는 풍미와 고소한 맛이 너무도 좋았다. '와우! 이게 뭐야?'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날까?'그녀는 남은 조각을 마저 입에 넣었다. 닭고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김박사의 닭요리는그녀가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서단연최고였다.
다음날 레나는 라일라와 함께 주방에서 닭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김박사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일라는 전날 레나가 건네준 후라이드 치킨을 맛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것이 닭고기라는 말을 듣고 더 놀랐다. 닭이라는 동물이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나 싶었다.라일라는 남편인 조함장 생각이 났다. 그가 땅굴족 마을로 떠난 지 한참 되었는데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곳을오가는 사람들 말로는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날 잊었단 말인가?'라일라는 그가서운하기도 하고그립기도 하였지만 차마 그곳으로 그를찾아갈수는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생각이많이 났다고 했다. 자기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바쁘게 지냈는데, 이제 곧봄이 오면그녀가 있는 곳으로돌아오겠다고 하였다. 그 소식을 듣고 라일라는뛸 듯이기뻤다. 그래서 레나에게 닭요리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가 돌아오면 직접 닭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그에게 음식 솜씨를 자랑하고 싶었다.
레나와 라일라는 후라이드 치킨 만드는 걸몇 번이고 반복하였다. 그 결과 더 이상 김박사의 도움도 필요 없고, 오히려 그보다 더 맛있게 닭을 튀길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지상족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신료를 튀김옷에 가미하여 풍미를 훨씬 좋게 만들었다. 그녀들이 만든 후라이드 치킨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지상족 여인들이 앞다투어 찾아와 요리법을 배워갔다. 저녁 때면 집집마다 닭 튀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였고,남자들은 후라이드 치킨을 안주 삼아 과일주를 마셨다. 김박사는 온 가족이후라이드 치킨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 행복한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후라이드 치킨 다음으로 김박사가 시도한 요리는 토끼 통바비큐였다. 옛날에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캠핑장에서 돼지 바비큐를 맛있게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름이 쪽 빠진 담백하고 고소한 고기는 훈연으로 풍미까지 더해져 야외에서 딱 즐기기 좋은 요리였다. 하지만 이곳에 돼지는 없고 토끼만 있는데, 사실 김박사는 토끼를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렇게 해서 돼지처럼 통바비큐를 해보자 싶었던 것이었다. 이번에는 지상족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아무래도 바비큐를 하려면 그에 필요한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여자보다는남자들이 나을 것 같았다. 김박사는 개략적인 도면을 그려 지상족 젊은이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들 중에 손재주가 있는젊은이들이뚝딱뚝딱 그럴듯한 바비큐장을금세 만들어내었다. 2미터정도로 빙 둘러 흙담을 쌓고,밑에는 불을 땔 수 있는 화덕을 그리고 그위쪽으로 고기를 걸 걸대를얹었다. 구울 때 고기를 꿸쇠꼬챙이도 여럿 만들었다.
바비큐장이 완성되고 난 후 김박사는 젊은이들과 고기 장만에 들어갔다. 살아있는 토끼를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는 일에끔찍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김박사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젊은이들이 따라 하였다. 원래 지상족은 육식을 별로 즐기지 않아 고기 손질이 생소하였으나, 후라이드 치킨을 맛보고 나서는 토끼 손질에아주적극적이었다. 이놈은 또 어떤 맛일까 궁금하였던 것이다. 토끼 고기가 장만된 후 한참을 물에 담가 핏물을 뺀 후 밑간을 하였다. 밑간에는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좋아하는 향신료가 추가되었다. 그러고 나서 쇠꼬챙이에 꿰어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바비큐장 벽면에 가지런히 걸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고기가 익어갔다. 사방으로 퍼지는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에 주변을 서성이던 젊은이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김박사는 고기가 타지 않게 이쪽저쪽으로뒤집어 주며 골고루 익도록 하였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토끼 통바비큐가 완성되었다. 김박사가 잘 익은 놈 하나를 도마에 올려놓고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그리고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입가에 침을 흘리며눈을 크게 뜨고 김박사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김박사 입이 씩 벌어지며미소가 피어났다.그 모습을 보고사람들도따라 웃음을 지었다. '우와! 이거 끝내주는데?' 김박사의 환호에 옆에 있던 레나가 입을 짝 벌리고, '나도 한입만!'을 외쳤다. 이어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잘라놓은 고기를 집어갔다. '와!' '우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토끼 통바비큐는 완전 대성공이었다.
후라이드 치킨과 토끼 통바비큐. 그것은 지상족 사람들에게 고기 맛을 제대로 알리는 큰 기폭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우리를 짓고 더 많은 닭과 토끼를 키웠다. 그리고 바비큐장을 두 개나 더 만들었다. 여자들은 기존에 김박사가 전해 준 요리법 외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하여 더 맛있고 더 다양한 요리들을 만들어 냈다. 한편 지상족에서 키운 닭과 토끼가 땅굴족에게 팔려가면서 요리법까지 건너가게 되었고, 두 종족 간 동일한 음식문화를 공유함으로써 더욱 확고한 우애를 다지게 되었다. 음식을 나눠 먹는 것. 그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의 공유가 있을까?
(1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