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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묵칼레 Apr 22. 2025

카지노 게임 비치는 얼굴들

그림에 취미가 있는 남편이 이번 연도에는 수채화에 빠져들었다.


수채 도구, 물감 등 이것저것을 준비하며 설레어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즐거웠다.

수채카지노 게임을 팔레트에 일일이 짜 넣었다. 30가지가 넘는 카지노 게임을 꼼꼼하게 채우는 모습에서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그려지는 얼굴들이 있다.


아이들은 크레파스보다 수채물감에 흥분하는 것 같다. 다음 미술 시간 준비물은 ‘수채화’라는말만 듣고도 소리를 지르고 웅성웅성 시끄러워진다.


유달리 카지노 게임 심하게 반응하며 들썩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준비 과정을 설명하고 빠뜨리지 말 것을 몇 번이고 다짐한다. 물론 대부분 완벽하게 잘 챙겨 온다.


그중 서너 명은 과하게 준비해 온다. 그 서너 명에 해당하는 개구쟁이들이 머릿속에서 맴맴 돈다.

등교하자마자 미술도구부터 책상 위에 꺼내놓는다. 심지어 손에 들고 돌아다니고 새로 산 물감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분주하다.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선생님, 미술 언제 해요? 1교시에 하면 안 돼요?” 아우성친다.


시간표가 있는데도 재촉한다. 빨리 카지노 게임을 만지고 싶은 것이다.


“미술 시간 앞당겨서 하면 안 돼요? 빨리하고 싶은데.”

“선생님, 오늘만, 오늘만” 하며 내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한다.


모른 체하면 갖은 서비스를 한다. 어깨를 주물러 주고 칠판 정리를 하고 화분에 물도 주며 나를 흘깃흘깃 쳐다본다. 세상에 그런 천진난만한 모습은 없다.

시간표를 바꾸었다. 교실이 떠내려갈 듯 함성을 지른다.


삽시간에 책상 위에는 미술 준비물로 쫙 진열된다. 서로서로 준비해 온 것을 보며 시끌시끌하다.


어쩌면 수업보다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더 의미 있는 시간일 수 있다. 새로 사 온 준비물을 만지면서 실컷 느끼도록 한참을 시간을 주고 지켜보았다.


이제 충분히 만끽했나 보다.

“선생님, 언제 시작해요? 빨리 해요” 요구가 빗발친다.


설명과 수업 안내가 들릴 리가 없다. 벌써 카지노 게임을 손에 쥐고 있다. 카지노 게임 짜기에 온통 맘이 쏠려있다.


“자, 그러면…” 말도 끝나기 전에 카지노 게임을 도화지에 짜고 나름 모양을 내는가 싶었다. 몇 번 주의 사항을 주었건만 도화지 위에 카지노 게임을 떡을 쳐 놓았다.


데칼코마니가 아니라 카지노 게임 한 무더기가 짓뭉개져 있었다. 책상에도 손에도 옷에도 카지노 게임이 난무한다.


내 눈치를 본다. 카지노 게임이 맘대로 쑥쑥 나온다며 씩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은 백만 불짜리였다.


맘대로 나오면 한 번 조절을 잘해보라고 했더니 신나서 접어 문지르고 여러 번 시도하더니 날아갈 듯한 형상의 나비 데칼코마니가 나왔다.

자기가 만든 작품에 성취감과 희열을 느끼고 좋아서 자랑하려고 갖고 뛰어나왔다.


빨리 칠판에 붙이라고 성화한다. 얼굴에도 머리에도 카지노 게임칠이 되어 있는 훈이의 오늘 수업 성취율은 최고이다.

의기양양한 훈이는 침을 발라가며 맨손으로 책상의 물감을 닦고 있다. 준비물 물티슈는 이미 다 써버렸다.

종종걸음으로 귀여운 몸짓을 하며 나온다.

“선생님, 화장실 좀 갔다 오면 안 될까요?”

“잠시 후면 수업이 끝나니 좀 기다려요”

입을 실룩거리면서어기적어기적 들어간다.


난 그 아이를 잘 안다. 화장실이 급한 게 아니라 팔레트와 손이 닦고 싶은 것이다. 어느 순간에 훈이를 포함한 서너 명이 보이지 않는다.


책상 위에는 카지노 게임 자국만 남기고 사라졌다. 화장실로 가보니 카지노 게임을 사방에 튀기며 깔깔대고 놀고 있다.


팔레트와 물통을 닦는 게 아니라 사방에 뿌리며 신나게 즐기고 있다.

“선생님, 죄송해요” 두 손을 모으고 조아리고 서있는 모습들이 어찌나 개구져 보이던지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하고 같이 치우자 “ 하니 실내화를 벗어던지고 열심히 화장실 벽에 카지노 게임을 닦고 바닥을 대걸레로 말끔하게 닦아냈다.


아이들 생각은 어른이 헤아릴 수 없는 무궁무진한 기발함을 담고 있다.


기발함을 조금이나마 맘껏 표출할 미술 시간을 은근히 기다렸을 것이다. 본인의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옷에 카지노 게임 좀 묻으면 어떠랴, 책상에 좀 묻으면 어떠랴. 카지노 게임을 만지며 느끼며 만들어내는, 즐겁게 지낸 그 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하교 후 교실 한쪽에 노란색 수채 물통이 나뒹굴고 있다. 훈이 이름이 크게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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