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상자
한강 작가의 재주는 어디까지일까. 알아가면 갈수록 그의 다재다능한 면모에 경탄하고 부러움을 쏟아내게 된다.
그는 시로 등단했고 이후 <붉은 닻이라는 단편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다수의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을 썼다. 산문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책도 썼다. 시, 소설, 산문, 그림책, 동화책에 노래 가사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다. 한 장르만 잘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는 모든 게 가능하고 거기다 잘하기까지 한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으니 말해 뭐하랴.
그의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을 섭취하다가 그림책과 동화책은어떤 맛일지 궁금해졌다.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라고 적혀 있는 <눈물상자를 골랐다.
작고 얇은 두께에 표지는 하얀 바탕이다. 눈물 방울방울이 모여 눈물 상자라는 제목을 만들고, 눈물방울이 그려진 검은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을 들고 있다. 바닥에는 검은 상자가 열려 있고 속에는 눈물방울들이 놓인 검은 천이 보인다. 눈물에 속절없이 끌리는 나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글을 읽을수록 ‘눈물단지’라고 불리는 아이 캐릭터에 내가 겹친다. 어릴 때 내 별명은 울보였다.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장면이나 거미줄에 날개가 감긴 잠자리 한 마리를 보고도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나보다 한 수 위이긴 하지만 나 또한 눈물이 많은 건 사실이다.
얼마 전에 내가 쓴 눈물에 관한 글이 생각난다. 아이처럼 나도 눈물이 많은 것이 늘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나의 나약함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눈물을 참으려 애썼던 적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물이 더 많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설명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곤 한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꼭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감정이 순수하다는 걸 수도 있으니까. 때론 눈물이 아픔이나 슬픔을 씻어주고 기쁨이나 행복을 더 값지게 해주기도 하니까.
책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순수한 눈물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순수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란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17쪽)
아이는 눈물을 사겠다는 사람이 사는 마을로 떠나는 검은 옷의 남자를 따라간다. 그 남자와 함께하는 여정에서 아이는 아저씨의 반짝이 가루로 설렘과 웃음을 맛본다. 그러면서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도 눈물을 찔끔 흘리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대신 웃음을 터트리고, 파란 새벽 새와 침묵 속의 대화를 나누는 걸 즐길 줄 알게 된다. 아기였을 때 이후로 평생 눈물을 흘려보지 못한 할아버지에게 눈물을 판 다음 날 아저씨는 아이에게 말한다.
“순수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어두운 그늘까지 담길 때, 거기 진짜 빛이 어리는 거야. (…) 눈물에 어린 빛깔들이 더욱 복잡해질 때, 네 눈물은 순수한 눈물이 될 거야. 여러 색깔의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지만, 여러 색깔의 빛을 섞으면 투명한 빛이 되는 것처럼” (63~63쪽)
분노와 부끄러움, 더러움까지도 담아낸 강인함의 눈물. 아이는 자신의 눈물이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을 담아낸 눈물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눈물이라는 것을.
어쩌면 한강 작가 자신이 동화 속 아이처럼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글은 알게 모르게 글쓴이를 담고 있으니까. 눈물이 많은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 묻어나니까.
순수함과 맑음이 섞인 투명한 글이다. 마음에 낀 얼룩과 상처를 맑고 순순한 눈물로 깨끗이 씻어주는 느낌이 드는 그런 글. 나도 언젠가 순수한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까.
#한강 #눈물상자 #문학동네 #어른을위한동화 #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