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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Jan 21. 2025

오직 혼자서 덤비는 카지노 쿠폰

철학자 최진석

개를 본다. 내 손을 핥으며 꼬리를 흔드는 개. 눈이 참 귀엽구나. 장난기도 보인다. 그런데 유(類)나 종(種)으로 나눈다고 할 때, 가장 근친관계에 있을 법한 늑대의 눈은 갑자기 달라진다. 늑대의 눈에서는 뭔가 슬픈 기운이 느껴진다. 처연하다고나 할까? 매우 쓸쓸하다. 개는 따뜻하지만, 늑대는 쓸쓸하다. 개와 늑대의 눈은 왜 이토록 다른 느낌을 줄까?

개는 눈앞을 보는 것 같고, 늑대는 시선 너머를 보는 것 같다. 개는 주인에게 밀착하려 하지만, 늑대는 인간의 밀착을 매우 싫어한다. 개는 인간을 따라 살려고 하지만, 늑대는 인간과 일합을 겨루려는 태도를 지킨다. 마크 롤랜즈가 자신의 책 『철학자와 늑대』에서 말하듯이 개는 어깨를 들썩이며 깡충깡충 뛰지만, 늑대는 들썩거림이 없이 미끄러지듯 활주(滑走)한다. 개는 귀엽지만, 늑대는 의연하다.

주인을 핥거나 주인에게 꼬리를 흔드는 일을 하지 않는 늑대는 주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늑대는 주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항상 스스로 고독을 불러들인다. 스스로 불러들인 이 고독의 깊이는 눈으로 침투하여 쓸쓸하게 드러난다. 그 처연한 카지노 쿠폰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라야 늑대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사자의 눈을 보자. 늑대보다 더 하다. 한없이 쓸쓸한 카지노 쿠폰에 나는 무섬증보다도 사자가 지키는 그 고독의 지경으로 빨려들 것만 같다. 이제 알겠다. 강한 놈일수록 카지노 쿠폰은 더 쓸쓸하고 처연하구나. 호랑이도 그러하더라. 강한 자의 카지노 쿠폰은 쓸쓸하다. 쓸쓸한 카지노 쿠폰은 고독에서 나온다. 고독을 감당하는 놈이라야 강하다.


(중략)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이 말을 철저히 인간 편에서 한 말이다. 그렇지 않다. 강산은 어제도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보통의 인간들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최소의 시간이 십 년이라는 뜻일 것이다. 어제도 변하고 지금도 변하고 있는 강산을 보통의 인간들은 십 년 정도가 지난 다음에라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변화의 가닥을 시시각각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사람들은 십 년을 기다릴 수 없다. 기어이 그 변화의 가닥 위에 올라타려 한다. 그럴 때는 보통 카지노 쿠폰다. 쓸쓸한 이 모험을 감당할 수밖에 없도록 태어난 자들은 천형을 받은 것처럼 그 부담을 떠안는다.

혼자이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먼저 온 자’가 될 수 없다. 모든 창조는 이 두려움을 가벼이 건너뛴 사람의 몫이다. 건너뛰면서 스스로를 ‘갈등 구조’ 속으로 귀양 보낸다. 늑대의 털이 아무리 따뜻해도 쓸쓸한 카지노 쿠폰을 데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쓸쓸함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초한 것이므로 늑대에게는 ‘힘’이다. 이 ‘힘’을 가진 자는 따뜻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친구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고, 성큼성큼 나아간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란 공자의 말이 이런 뜻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왜 쓸쓸한가? 카지노 쿠폰이기 때문이다. 고독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곳 안에서 ‘우리’로 지내는 일이 이미 생명의 활기를 놓친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나’는 그 ‘우리’를 벗어나 ‘카지노 쿠폰’가 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고독’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변화’를 놓친 맥 빠진 ‘우리’들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자태를 지키면서도, 나는 그저 쓸쓸할 뿐이다. 그래서 장자는 최고의 인격을 이렇게 표현하더라. “봄날처럼 따뜻하면서도, 가을처럼 처연하구나.”


최진석, 『경계에 흐르다』, 소나무, 2017, 46~50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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