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우리에게 매 순간 숙제를 준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할까? 누구는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숨이 찰 만큼 욱여넣는다. 또 누구는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허기만 달래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살 수 있다. 문제는 무엇을 얼마나 먹느냐이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더 건강한 삶을 살지 모르는 사람 없다. 다만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아는 대로 실천하려면 본능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가 매 순간 숙제가 된다.
월급이 제대로 나오는 직장을 서른 살에 얻었다. 직장 덕분에 쌓였던 빚을 갚으며 학교에도 다닐 수 있었다. 직장과 학교를 병행하니 나름 규칙적인 일상을 보냈다. 다행히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었다. 직장에서 아침 점심을, 학교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어쩌다 술자리도 갖고 때로는 야식으로 에너지를 채웠다. 서른셋에 결혼을 했고, 이후에도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을 갖게 되면서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고 자연히 몸무게도 불었다. 불어난 몸무게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십수 년 동안 식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 세끼를 다 챙겨 먹고 술과 야식이 있는 삶은 마흔넷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몸에서 꾸준히 신호를 보내왔다. 먹는 걸 줄이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으로 살을 빼라고 말이다. 하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보다 먹는 즐거움이 더 컸다. 번번이 신호를 무시해 왔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과연 이렇게 마음껏 먹고 마시는 게 옳은가 싶었다. 마음 한쪽에서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 외침이 결국 몸을 움직였고 먹는 즐거움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식단 관리를 시작했고 햇수로 6년째다. 많이 먹어야 카지노 게임해진다고 믿었던 내가 적게 먹어도 카지노 게임해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믿음이 있다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보다 변화를 직접 체험할 때 믿음이 신념이 되고 지속할 힘도 갖게 될 것이다. 또 변화를 지속하려면 믿음이 흔들려서도 안 될 터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때와는 정반대 태도이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유혹은 늘 주변을 맴돈다. 손만 뻗으면 마음껏 양껏 먹을 수 있다. 그래도 버텨낼 수 있는 건 점점 더 카지노 게임해지는 나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많이 먹는다고 건강하지 않다고 할 수 없고, 적게 먹는다고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기준을 정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스스로 얼마 큼의 양을 먹어야 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는 점이다. 인생을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 열심히 일한 만큼 양껏 먹는 것도 인생을 보람되게 사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똑같이 열심히 살면서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 것 또한 삶을 가치 있게 사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이고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다.
먹는 즐거움으로 살았던 시기에는 '절제'할 줄 몰랐다. 세 끼는 기본이고 술은 옵션, 야식은 보너스나 다름없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일하는 만큼 먹어야 했고 먹는 만큼 일도 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 미덕이 아니었다. 오히려 절제가 왜 필요하냐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제까지 먹어온 습관대로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리화시키기에 이른다. 결국 갈 때까지 갔을 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받고 나서야 생각에도 균열이 생겼다. 절제라는 단어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음식을 절제하지 못했을 때 카지노 게임이 늘 따라다녔다. '이렇게 먹으면 분명 더 살찌는데', '이걸 먹고 자면 잠도 잘 못 잘 텐데', '숙취로 힘들면서 굳이 또 마셔야겠어'. 늘 음식 앞에서 갈등이 따라왔다. 양 갈래 길에서 매번 절제와 반대되는 선택을 했었다. 그 결과 복부 비만 고혈압 높은 당과 콜레스테롤 수치였다. 몸이 보내는 신호로 카지노 게임했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았다. 절제했을 때 마치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카지노 게임도 따라왔기 때문이다. 늘 먹던 대로 먹지 않으면 건강을 잃을 것 같은 카지노 게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건강한 음식을 선택했고 저절로 '절제'도 따라왔다. 그동안 즐겨 먹었던 것들에서 멀어질 때 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매 순간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해서는 반감만 커진다. 음식에 대한 갈증이 결국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얼마 못 가 포기할 게 보였다. 그러니 내 몸에 더 집중했다. 좋은 음식을 먹은 뒤 내 몸에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몸은 정직했다. 절제하는 대로 몸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몸무게가 줄고 피부도 밝아지고 근육이 붙고 정신도 맑아졌다. 절제가 몸을 회복시켰다.
절제와 카지노 게임은 비례한다. 좋지 않은 습관을 줄일수록 카지노 게임은 줄고, 반대라면 카지노 게임은 점점 더 커진다. 식습관도 마찬가지다. 정크푸드, 초 가공식품 대신 자연에서 온 식재료를 먹으면 몸은 건강해진다. 입만 즐거운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면 몸이 건강해지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 당연히 먹는 것에 따라 우리 몸도 건강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절제하지 않았기에 카지노 게임이 더 커지는 꼴이다. 반대로 절제하면 몸은 금방 회복된다. 카지노 게임도 점점 옅어질 것이다. 카지노 게임은 인생을 좀먹지만, 절제는 삶을 건강하게 살 찌운다.
학생 때 숙제는 귀찮은 존재였다. 놀 시간을 빼앗고, 창피도 당하게 했다. 반대로 귀찮아도 꾸역꾸역 하면 남는 게 있었고 기분도 좋았다. 만약 그때 절제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학생이기 때문에 숙제가 먼저이고 당연히 노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걸 알았더라면. 카지노 게임 건강뿐 아니라 삶 곳곳에 필요하다. 지나치면 안 하니만 못하다 했다. 무절제로 얻을 수 있는 건 후회뿐이다. 카지노 게임 고통이 따르지만 적어도 후회는 남지 않는다. 후회를 덜 남기는 인생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절제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