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아내가 말했다.
'샤워하고 바닥에 비누 거품 안 보였으면 좋겠어."
어려운 일도 아니어서 알았다고 말했다. 결혼 전에도, 결혼한 후에도 아내는 나에게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 아니 요구한 게 있었지만 잘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아마도 다른 부탁들은 들어줄 수 없거나, 얼마 못 갔던 게 아닐까 싶다. 다행히 17년 지난 지금도 이 부탁만큼은 여전히 지키는 중이다.
매일 아침 샤워한다. 씻고 나면 비누 거품이 수채 구멍에 잔뜩 쌓인다. 쌓인 거품이 마르면 하얀 때가 낀다. 청소할 때를 놓친 때는 묵은 때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때는 맞벌이 어서 주말에나 청소했다. 그러니 청소 대신 깨끗이 사용하는 게 먼저였다. 아마도 아내는 그래서 나에게 '요구'를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단순히 거품 보는 게 싫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씻고 난 흔적을 보는 게 그리 유쾌하진 않다. 아무리 카지노 게임라고 해도 말이다. 30년 넘게 형들 틈에서 자랐다. 한 집에서 같은 욕실을 사용해도 이런 요구하지 않았었다. 청소는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거품을 청소해 달라는 요구가 낯설었지만, 원만한 카지노 게임 생활을 위해 그러겠다고 합의했다.
하루 열흘 한 달 일 년 반복되니 습관이 됐다. 몸에 묻은 거품을 다 씻겨 내고 틀어놓은 샤워기로 거품 제거에 들어간다. 수채 구멍 주변으로 몇 번 물을 뿌리면 거품이 빨려 들어가는 게 보인다. 사라지는 거품을 보면서 한 편으로 뿌듯했다. 속으로 '오늘도 나는 당신의 요구를 성실히 이행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좋은 습관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좋은 습관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태도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면 운명이 변한다는 의미카지노 게임. 이제까지 몇 번 위기는 있었지만, 17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서로를 배려하는 작은 습관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씻고 나서 거품이 아무리 많아도 청소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만약 그 1분을 아끼겠다고 아내 부탁을 무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내는 몇 번 고쳐달라고 말했을 터다. 나도 알았다고 건성으로 대답할 테고. 애초에 아내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면 습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아내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묵은 때를 닦으면서 속으로 불만만 쌓였을 것이다. 쌓인 불만은 언제가 터지기 마련이다. 다른 이유로 싸우지만, 결국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서운함도 함께 폭발하고 만다. 사람 다 똑같다. 나도 아내에게 서운한 게 있으니 말이다.
요즘 남편감 1순위는 'K 관식'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오애순 남편인 양관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보여준 일편단심은 모든 남자에게 본보기이다. 그 정도 순정만 지킬 수 있다면 '이혼'이라는 카지노 게임는 사전에서만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관식과 애순은 서로가 0순위이다. 어떤 상황에서 서로를 믿어주고 이해한다. 눈에 보이는 태도나 말투뿐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서로를 애틋하게 챙기고 보살핀다. 어쩌면 서로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는 보이지 않는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힘을 잃지 않을 테니까.
17년 함께 살았지만 관식 같은 순애보나 애틋함이 부족했다. 서로 적당히 거리를 뒀고, 살뜰하지 않지만 필요할 땐 옆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사랑으로 시작해 의리로 사는 게 카지노 게임라는 말도 있다. 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이 들수록 의리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의리에는 필연적으로 사랑도 포함될 테니까.
의리 안에는 무엇보다 존중이 있어야 한다. 사랑에도 존중이 들어있다. 내가 17년 동안 매일 거품을 청소한 건 아내에 대한 존중이었던 것 같다. 아내의 요구를 허투루 듣지 않았던 것도 아내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건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존중이 없으니 당연히 어떤 부탁도 들어줄 이유와 의미를 찾지 못할 테니까.
사람은 100퍼센트 상대적이다. 내가 받고 싶은 게 있으면 상대도 받고 싶다. 내가 하기 싫으면 상대도 하기 싫다. 마찬가지로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상대를 존중하는 게 먼저다. 상대도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똑같이 되돌려 준다. 이런 마음은 드러내지 않아도 언제 어느 순간 곳곳에 묻어나는 법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능동적인 활동이자 대가 없이 주는 행위라고 말했다. 명품 백을 사는 것만이 능동적이고 대가 없이 주는 행위는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주거나, 화장실 청소하고, 빨래를 널어주고, 혼자서 밥을 차려 먹는 것도 아내 입장에선 능동적인 행위일 수 있다. 이 모든 행동은 결국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녁 한 끼 아내에게 얻어먹는 게 낙이다. 그 한 끼를 위해서 기꺼이 거품 청소는 계속된다. 남는 장사이니 안 할 이유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