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세 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들어왔다. 전날 퇴근길에 회식 있다고 둘째 저녁밥 챙겨달라는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9시 20분쯤 태권도장에서 돌아온 둘째와 제육볶음에 배추쌈을 먹었다. 먹고 난 자리를 치우고 고무장갑 벗은 게 10시쯤이었다. 수학 학원에 간 첫째는 10시 40분에 들어왔다. 거실 책상에서 검토하던 원고 파일을 닫은 게 11시 반이었다. 둘째는 그 사이 머리를 감았다. 젖은 머리를 안방에서 말렸다. 다 말릴 즘 방에 들어갔고 시계는 12시를 가리켰다. 둘째는 바닥 이불에, 나는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잠이 깊이 들지 않았다. 처음 눈을 뜬 게 1시 반이었다. 여전히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았지만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뒤척이다가 잠시 깊이 잠들었는지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얼른 깼다. 눈만 뜬 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큰딸은 그 시간까지 깨어 있었는지 아니면 나처럼 문소리에 깼는지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몇 초 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눈이 마주쳤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아무 말하지 않고 갈아입을 옷만 챙겨 다시 거실로 나갔다. 나도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안방,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거실에서 자며 겨울을 두 번 보냈다. 잠을 따로 잔다고 관계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항상 나로부터 시작된다. 퇴사이자 퇴직을 결정했고, 이런 나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마뜩잖게 여겼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올해 고등학생이 된 큰딸이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버텨주길 바랐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아마도 그동안 내가 별말하지 않았던 터라 굳이 햇수를 정해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반대로 나는 그만 둘 날만 손으로 꼽고 있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사직서를 냈었다. 그때는 상무의 반대로 유야무야 됐었다. 의지가 꺾일 때마다 다음을 기약했고, 결국 올해 결단을 내렸다. 결정을 내리기 전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일부러 상의하지 않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저런 설명을 했을 것이고. 만약 그게 잘되지 않았다면 아마 크게 부딪쳤을 수도 있다. 대신 나는 우회하기로 했다. 비겁하지만 우선 통보하고 수습하기로 말이다.
엊그제 저녁 먹을 때 후임자가 정해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눈빛이 변했다. 엎질러진 물인 걸 알았지만 막상 돌아갈 길마저 사라진 터라 더 속상했나 보다. 그때부터 표정이 굳었다. 밥 먹을 때도 별말 없었고, TV 앞에서도 말수가 줄었다. 그러고 어느 사이 거실 전기장판 위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미리 말하지도 않은 회식 있다는 걸 퇴근이 돼서야 문자로 보낸 게 끝이었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나가는 걸 본 뒤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옆으로 구르기를 몇 차례, 결국 몸을 일으켰다. 눈에 들어온 벽시계 작은 바늘은 4에 가 있었다. 욕실로 들어갔다. 면도하고 양치하고 머리도 감았다. 둘째 방에서 머리를 말리는 동안 거실에 켜졌던 TV가 꺼졌다.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거실에서 양말을 꺼내 신는 동안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자는 척했다. 나도 못 본 척 겉옷을 입고 가방을 챙겼다. 4시 50분, 현관문을 열고 집에서 나왔다.
작은형을 따라 서울공고 건축과에 입학했다. 군대에 가 있던 시간과 몇 가지 아르바이트했을 때를 빼곤 계속 건설업에 몸담아 왔다. 햇수로 30년 넘었다. 그 사이 한 자리씩 차근차근 올라오며 가족도 꾸리고 먹고살 걱정도 조금씩 덜었다. 월급이 주는 안락함을 평생 누리면 좋겠지만 꿈같은 이야기다. 나이 50이면 언제 자리를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때다. 원한다고 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살아남으려면 싫은 일 억지로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한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졌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10년 전 아니 서른 살부터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일을 50, 60까지 해낼 자신이 없었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문제는 대책이 없었다. 만약 대책을 찾았어도 확신이 없다는 게 또 다른 함정이었다. 이도 저도 못하는 꼴이었다.
운 좋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어설프게 객기로 도전했다가 죽이 될 것 같아 직장에 다니며 8년간 숨죽여 준비했다. 문제는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불확실은 따라온다. 언제 시작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드시 퇴직이 찾아오듯 도전할 결심을 내리는 순간도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안 그러고는 남은 내내 2호선 내선순환 열차를 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랜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게 '지금'이다.
내심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먼저 축하해 주길 바랐다. 물론 마음에 돌덩어리가 들어차 있겠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지지를 원했다. 만약에 입장이 바뀌었어도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갈지 언정 겉으로는 응원과 격려와 축하해 주는 게 먼저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모른다. 다만 지금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고 축하해 주길 바랄 뿐이다.
새벽 5시, 사무실 불을 켰다. 책상, 책장, 의자 하나가 전부인 공간이다.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일기장을 꺼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내가 어떤 마음인지 적었다. 짐작해 적은 글이라 틀릴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적다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도 내 마음을 적어 보니 조금은 누그러진다. 일기장에 쓰지 못했던 말을 다시 이곳에 적으니 마음속 돌 덩어리 크기가 작아진 것 같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서운한 게 있기 마련이다. 수십 년 한 이불 덮는 부부 사이도 당연히 서운한 게 있다. 서운한 걸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서운한 걸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드러내는 게 필요하다. 안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악취를 낼지 모르니 말이다. 문제는 꼭 필요하다고 드러냈던 서운한 감정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서운함을 풀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그게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자기는 있는 그대로 적어보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이럴 수 있겠네'라고 추측해 보는 거다. 설령 추측이 틀려도 괜찮다. 글로 적기 위해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서운한 게 차츰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급한 불을 끈 거나 다름없다. 막무가내로 서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줄지 않을까? 눈앞에 불길이 사라지면 그 넘어가 선명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알아차린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차리는 것, 관계가 좋아지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