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모든 극은 결말을 향해 간다
“완아, 오늘 공연 잘 해래이. 나도 이따 갈꾸마.”
이른 아침 양옥을 나서자 대석의 목소리가 카지노 게임을 붙잡았다. 대석이 형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장난기없이 진지했다. 카지노 게임은 형을 향해 뒤돌며 빙그시 웃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몇 년 동안 큰댁에 얹혀살았기에 한도회를 만날 수 있었다. 평소 같지 않은 사촌 형의 응원 한 마디에 카지노 게임은 빈 속에도 포만감을 느꼈다. 너무나충분해 다시 돌아올 일이 없을 것만 같은감정을 느끼며 카지노 게임은 동네를 나서 공연장을 향해 걸었다. 불편하고도 고마웠던 양옥과, 가난하고도 그리운 고향이 떠오를 때마다, 카지노 게임은 과장되리만치 큰동작으로 공연연습을 이어나갔다.
흥건한 땀은 생각의 골짜기로 흘렀다. 카지노 게임이 무사히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잊어 마땅한 것들이 산재했다. 저 익숙한 악기 소리와, 한 호흡으로 완성하는 춤과, 둥글게 앉아 같은 마음으로 회원들을 지키는 군중들.오늘을 끝으로 그들을 잊어야할것이다.분개하는 조상을계승할 수 있도록장사하는기질로 이서클을잘이끌어준철호 형, 도서관너머가려진 곳에 무엇이 있을지 항상 고민하며 사유를 건네던동우 형, 동우 형의그꿈속에 닿아 단 한 번을 날고는새장에서 나오지 못하는 진수,거리의 아들들을 기다리며 막걸리를 담그는 약주사 할머니... 오늘 공연을끝으로 카지노 게임은그들과 모르는 사람인 양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무대 밖에서 지금껏 지루하게 따르던 희미한 불빛과 발자국속에서 카지노 게임이 잊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카지노 게임이 부모를 호강시키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어째서 일한 만큼 부유해지지못하는가를 잊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오늘도 저항 한 번 못하고 땅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을 것이다. 어깨에 뻐근하게 달라붙은 가난은 모두 하늘의 뜻이라 넘기며, 해마다 눌어붙는햇볕에 더 시커먼 부모님. 카지노 게임역시그게하늘의 뜻이라고만 알았다면차라리 나았을까...
반주에 취한 아버지는 가면도 없이 마른땅 위에서엇박자로 휘청이고 있다. 아버지 뒤로 가족의 푸석한 얼굴들이 하나씩 들끓는다. 카지노 게임은 모든 리허설을 끝내고 한참눈을 감고가만히 있었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마침내 어둠이 밝음을 야금야금 베어 먹는 초저녁. 무대 뒷마당에서 회원들은 공연 시작전언제나 그랬듯이 둥글게 모여 손을 포갰다. 철호가 선창을 했다.
“한도회여, 영원하라!”
모든 회원들은 크게 재창했다.
“영원하라! 영원하라! 영원하라!”
풍물놀이가 회원들의 외침을 고조시키며 길놀음은 거의 끝나고 있었다. 장구와 북 속에서 꽹과리 소리가 신명 나게 울리면 객석의 누구라도 무대로 나와 춤마당 속에서 질펀하게 흥을 뿌린다. 사람들의 춤사위 속에서 카지노 게임은 작년 봄을 기억했다.
대학생이 된 카지노 게임이 동우 형의 초대로 이곳에 왔었다. 그때의 카지노 게임은 뜨겁게 환해지던 횃불처럼 한도회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밝혔다. 오늘의 카지노 게임은 작년카지노 게임의 바람처럼 가면을 쓰고 질펀한 장의 뒤켠에 서 있다. 영노가 된다고 세상을 부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연이 끝나고 방치된 횃불에 비를 끼얹으면 장작은 꺼지듯, 카지노 게임은 질문을 끄고 대본을 낭독하는 등장인물로 기능될 뿐이다. 봄꽃처럼 자신과 세상이 개화하길 바라던 푸릇한 신입생은 끈질긴 플래시 속에서 낙엽처럼 자꾸만 메말라갔다.
마침내 탈놀음 판을 위해 무대 한가운데에 멍석이 도르르 깔렸다. 신명을 이끌던 춤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악사들이 음악을 굿거리장단으로 변주하였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가락에 박수가 합주를 지속하며 탈놀음은 시작되었다. 서클의 회원들은 가면을 쓰고 완벽하게 첫 과장을 끝냈다. 연기에 흥이 난 악사 형들이 신명 나게 나팔을 불자, 머리에 개털관을 쓰고 웃옷으로 흰 두루막을 입고 손에는 부채를 쥔 양반이 공연장 저 구석에서 나타나 어슬렁거렸다. 양반이 공연장을 누비는 꼴을 영노는 더는 버틸 수가 없다. 카지노 게임이 영노 탈을 쓰자, 육체를 얻은 영노는 순식간에 무대 중앙으로 바람을 몰고 날았다.
새까만 얼굴에 머리카락이 얼룩덜룩한 영노는 요상한 바람 소리를 휘휘 내며 장단에 균열을 내고 등장한다. 카지노 게임은 자신과 서클 회원들을 쫓던 검은 그림자들을 재연하듯, 거드름을 피우며 걷는 양반 뒤에 조용히 따라붙기 시작했다.
자신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영노를 돌아보며 양반은 질문을 한다.
“네가 무엇인고.”
영노는 쉰 목소리고 대답했다. 평소의 카지노 게임의 성대에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날물에 날 잡아 묵고, 들물에 들 잡아 묵는 영노다. 양반 아흔아홉 잡아 묵고 네 하나 잡아 묵으면 등천한다.”
저 양반 하나만 잡으면 매일 밤 카지노 게임을 따르는 성가신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이 양반을 향해 몸을 바싹 붙이자 양반은 약간 뒤로 물러서며 발뺌했다.
“나는 양반이 아니다.”
양반은 자기가 돼지다, 소다 빌며 살 궁리를 했다. 그렇게 있는 척을 할 때는 언제고 자기가 오자 면피를 하는 모양이 영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백성들에게는 양반이란 이름으로 다 뺏어갔을 놈이.’ 영노는 양반의 두루마기를 홱 낚아챘다. 양반은 끌려가지 않으려 애쓰다 부채를 떨어뜨렸다. 잡아먹힐 위기에도 부채를 줍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이 우스울 따름이다. 영노는 부채를 발로홱 차버렸다.
양반은 영노를 쏘아보며 관객이 들리지 않게 말했다.
“이런다고 바뀔 거 같니 카지노 게임아?”
영노는 양반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등천할 수 있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이 설령 등천하더라도, 진수는 쇠창살 속에서,카지노 게임의 아버지는 붉은 대지위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양반 하나 잡느라 양옥집 창문 너머 플래시가 꺼지는 건아니듯. 카지노 게임은 결국 대본 대로 양반을 잡아먹지 못하고 무대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영노가 잠시 사라지자 양반은 기어가 부채를 집어 펴 들곤다시 거드름을 피운다.
모든 과장이 무사히 끝난 답례로 관중들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늘 하나의 과장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 리 만무한 관중들을 바라보며 모든 부원들은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뒤로 하고 준비석으로 돌아오자, 거기에 낯선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챙모자를 쓰고 제복을 입고 손에는 플래시를 든 가면이 있는 이 과장에는 대체어떤 제목을 붙여야 할까. 제복을입은 사내는 회장에게 말을 건넸다.
“불온서클 한도회회장 마철호 씨 맞습니까?”
철호는 커다란 발성으로 대답했다. 무대가 끝난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앙코르의 시작에 걸맞은 호흡이었다.
“예, 맞습니다만. 무슨일입니까?”
사내는 지지 않았다.
“경찰입니다. 서클 회원들은 모두 저희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카지노 게임은 회원들과 함께 연행되며 친구 노진수를 떠올렸다. 전단지를 뿌리고 저항 없이 걸어가던 친구처럼 오늘의 공연을 무사히 마친 한도회 회원들은 고요히 그들을 따랐다. 다급해진무대만이 앙코르를끝내지 않고 극장을 벗어난 배우들의 음성을 잘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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