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3 카지노 게임
이 글을 열어본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얼룩소중독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얼룩소중독증을 진단하고 원인을 짚어보기 위해 쓰였다. 중독이라고 하니 걱정이 앞설 수 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10주짜리 시한부 중독이다. 이제 겨우 4주 남았다.
당신은 얼룩소를 하루에 몇 번 들어오나. 세 번 이상이라면 당신은 얼룩소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얼룩소는 어플도 없다. 들어오기 불편하다. 처음에 당신은 검색을 통해 얼룩소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름의 루트를 만들어 쉽게 접속하고 있다. 얼룩소가 만든 게 아니라 당신이 만든 루트로. 그렇다면 당신은 얼룩소중독일지 모른다.
놀라지마라. 한두 명이 아니다. 적어도 수십 명,
많게는 백 명 이상이 중독증을 앓고 있다. 운영자들도 짐짓 모른 척 하지만 중독일 수 있다. 애초에 일이었지만 재미를 느껴 참여자이고 싶다거나 참여자처럼 개인 글도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어쩌다 중독이 되었나.
그렇다. 당신이 아니라 우리다. 나도 중독이다. 나는 사전가입까지 한 초기 가입자인데 6주가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중독증을 앓고 있다. 결국 이런 글까지 쓰고 있다. 왜 이렇게 됐는지 합리적인 추론을 해보자.
글은 사람을 닮는다. 아무리 사회적인 이슈를 쓴다해도 글에는 글쓴이의 생각과 삶이 녹아있다. 내가 낳은 자식 같은 것, 그게 글이다.
그러니 자꾸 밟힌다. 한번 얼룩소에 글을 써본 사람은 안다. 수시로 들락거리며 내 글에 대한 반응을 살핀다. 좋아요수도 보고, 좋아요 누른 사람도 확인하고(스토커는 아니지만 궁금하다, 누가 공감하는지.) 답글도 읽는다. 댓글을 달기도 한다.
최근에 알림이 생겼지만, 여전히 내 폰으로 알림이 오는 게 아니라 얼룩소에 접속해야만 알 수 있는 알림이다. 궁금하면 들어와야 한다. 댓글은 알림도 안 오고, 자동으로 사람을 설정할 수도 없어 내가 일일이 이름을 언급해가며 달아야 한다. 찾아서 읽어야 하고. 이건 얼룩소 측의 빅픽쳐라고 본다. 아니면 어쩌다 걸린 대박 시스템이거나.
글이 늘어날수록 수고로움은 늘어난다. 글을 쓰면 쓸수록 확인해야 하는 양 또한 많아지는 것.(오래 전 글에도 가끔 좋아요수가 늘거나 답글이 달린다.) 그런 수고로움을 우리는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 우리는 다 현생이 바쁘다.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틈틈이 접속해 살핀다. 내 글만 챙기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 글도 본다. 관심 있는 다른 글의 답글도 읽는다. 대체 왜 이러나.
처음에는 만원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원 이게 한 번 받아보면 못 끊는다. 아 ‘만원이 뭐라고’ 하다가 이게 되기 시작하면, ‘이거라도 벌어볼까’가 된다. 그리고 자주 들락거리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제는 너무 큰 노력 안 해도 돈이 들어온다. 백명 선정인데 중복 선정이 아닌지라 한 명이 아무리 좋아요를 많이 받아도 만원은 한 번만 지급된다. 그러다보니 적당히 답글 쓰는 활동만 해도 자연스레 백 명 안에 든다. 중독자들은 안다. 굳이 많이 들락거리지 않아도 만원은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제 중독증은 꼭 만원 때문만은 아니다. 만원을 이미 확보했는데도 계속 들어와 글을 둘러보고 답글을 쓰는 사람들이 여기엔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카지노 게임에 중독되는가.
얼룩소에서는 본론을 꺼내기가 쉽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날씨가 어떻고 집이 어떻고 애가 어떻고… 아무리 친한 지인을 만나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려면 일단 포석을 좀 깔아야 한다.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진지해야 나온다. 그런데 얼룩소에서는 거두절미하고 일단 본론부터 쓰면 된다. 글이니까. 지인보다도 더 빨리 깊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는 어떨까. 지인과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허공을 맴도는 경우가 많다. 좁힐 수 없는 의견 차를 갖고 있거나, 상대가 관심이 없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깊이 있게 토론까지 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심이 있어도 나이차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제대로 의견을 교환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카지노 게임에서는 일단 나이가 상관 없다. 나이가 적든 많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니 이해관계에 얽히지도 않는다. 더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반응이 여타 플랫폼이랑 다르다는 것도 한 몫을 한다. 카지노 게임는 ‘안전’이라는 수식어가 딸린 ‘공론장’이다. 무슨 이야기든 꺼내는 건 좋지만 함부로 비난하거나 막말을 하지 못한다. 이건 곧 내가 무슨 이야기를 써도 내 정체성이나 생각과 관련한 인신공격적인 비판에 직면할 일은 없다는 걸 보장한다. 말 그대로 안전한 공론장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렇게 쓴 글은 사람들이 바로 알아본다. 가끔 막말이나 무논리, 무성의한 글이 눈에 띄지만 무반응이 뒤따른다. 사람은 악플보다 무플에 더 실망한다. 얼룩소에는 악플은 없지만 무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적응을 못하고 금방 나간다.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의 문제점들을 꺼내놓는 사람들이 이곳에 남는다. 때문에 대화의 밀도가 높아진다.
글쓰기를 좋아해 들어온 사람도 있지만, 쓰라고 해서 쓰기 시작한 사람도 많다. 전자는 알았겠지만 후자는 몰랐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게 결국 자신을 치유하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그리고 글쓰기라는 행위가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한번 글 쓰는 맛을 들이면 계속 써야 한다. 작가들이 계속 쓰는 작가보다 그렇지 않은 작가를 더 신기해 하는 이유다. 한번 맛을 들이면 쓰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기는 꽤 힘들다. 게다가 매일 써보라고 판을 깔아준다면, 그 판이 10주 시한부라면, 우린 빨리 뭔가를 써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과 자발적인 욕구를 동시에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중독을 부르는 마지막 이유는, 스스로가 발전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사회 이슈를 담은 글이 핫하면 열어보게 된다. 왜 그리 난리들인가, 궁금하다. 열어봤는데 어려우면 그냥 닫기도 하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자꾸 보다보면 조금씩 눈과 귀가 트인다.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늘어날수록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여기는 비건, 동물보호, 환경문제, 소수자인권 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내 안의 편견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된다. 내 주변도 돌아보게 된다. 변화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기도 한다.
개인적인 사연들을 읽으면서 소통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함께 기뻐하고, 분노하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감을 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덜어내기도 하지만, 타인의 아픔도 덜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역시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느낌을 준다.
여기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면 당신은 얼룩소 중독이다. 중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0주 시한부다. 이제 겨우 4주 남았다. 당신이 아무리 얼룩소를 애정해도 우리는 곧 헤어질 운명이다.
나는 중독이라면 기겁을 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중독과 관련한 깊은 상처가 있어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건 내게 금기다. 그 무엇도 중독되지 않을 만큼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사는 타입이다. 그런 나도 중독됐다. 당신은 어떤가. 여기까지 완독했다면 당신도 카지노 게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