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고집 그 어딘가
아이들과 함께 인사동에 다녀오기로 했다. 지하철로 40분 남짓 거리. 갈 때는 설렘에 들떠 괜찮겠지만, 돌아올 때는 분명 피곤할 테니 편의점에서 달달한 간식을 사면 귀갓길이 덜 힘들 거라 생각했다.
출발 전,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비 소식이 있었다. 작은 우산 두 개와 아이들 보냉 물병을 챙기니 작은 크로스백은 금세 가득 찼다. 아이들과 외출할 땐 백팩이 훨씬 실용적이지만, 크로스백은 내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점점 실용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요즘, 그래도 나는 가볍고 스타일 있게 나들이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외출할 때마다 무언가를 들고나가고 싶어 한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와플 블록으로 만든 캐리어에 토끼 인형을 넣어 가져가겠다고 했다. 블록은 쉽게 분해되니 먼 길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인형만 가져가라고 했지만, 아이는 블록까지 꼭 가져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몇 번의 신경전 끝에, 나는 블록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문제가 생기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올 거라고 단단히 말한 뒤에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예상대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옥수역을 지나며 아이는 토끼 인형에게 창밖 풍경을 보여주는 여유도 보였다. 그런데 체험장으로 가는 길, 첫째가 블록을 떨어뜨렸고블록은 두 동강이 났다. 아이는 재빨리 주워 담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소나기가 쏟아졌다. 다행히 미리 챙긴 우산 덕분에 체험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체험과 관람을 마친 아이들은 눈에 띄게 지쳐 보였다. 덥고 습한 날씨에, 평일인데도 거리는 붐볐다. 기운이 빠진 아이들은 점점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밥 먹으러 가는 길, 첫째는 또다시 블록을 떨어뜨렸다. 동생에게 도와달라고 했지만동생은 자기 거 아니라며 외면했다.
결국 첫째는 울상을 짓고 짜증을 냈다.
“왜 넌 안 도와줘?”
울먹이는 아이를 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거 가지고 싸울 거면 그냥 버려.”
쓰레기통을 찾으며 말하자, 아이는 울기 직전의 얼굴로 급히 블록을 주워 맞추기 시작했다.
"아니야, 안 버릴래."
이후에도 사소한 실랑이는 이어졌다. 지하철을 타기 전, 편의점에서 간식을 고르게 했다. 먹기 편한 사탕이나 젤리를 권했지만아이는 끝까지 킨더조이 초콜릿을 골랐다. 블록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 말이다. 지하철 안에서 아이는 꿋꿋이 초콜릿을 떠먹었고, 다 먹은 포장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손이 가득했던 나는 그걸 받을 여유가 없었다. ‘왜 굳이 그걸 샀니’ 하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옆에 서 계시던 할아버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내리는 길에 버려줄게요.”
예상치 못한 친절에 순간 멈칫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건넸다. 아이는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조용히 블록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찝찝함이 남았다. 나는 오늘, 신념대로 일관성 있게 행동한 걸까, 아니면 감정이 앞선 고집이었을까.
돌아보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쇼핑백 하나쯤 챙길걸, 좀 더 부드럽게 말했으면 좋았을걸.
그 순간엔 옳다고 믿었지만돌아서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챙기지만나도 여전히 서툴다. 조금 더 잘하고 싶고덜 후회하고 싶지만 결국 오늘도 감정이 먼저였던 순간들이 있었다.
오늘도 나는 너무 엄마였다. 그래도 그런 하루 덕분에나도 아이도 조금은 자랐다.
일관성은 필요하지만감정을 담아두지 말 것.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가르치기 전에나를 먼저 살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