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앞에 선다는 건
몇 주 전, 첫째 아이 태권도 승급심사가 있었다. 2품을 따기 위해 태권도 학원에 하루에 세 시간씩 다니며 준비해 왔다. 나는 아쉽게도 현장에 함께 가지 못했지만 남편에게 실시간으로 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겨루기에서는 본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상대와 맞붙었다고 했다. 넘어지긴 했지만 나름대로 잘 해낸 모양이다. 모든 심사가 끝나고 만난 아이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한가득 피어올라 있었다.
며칠 후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짜잔!"하고 양팔을 활짝 벌렸다. 가느다란 허리에는 카지노 게임가 단단하게 매어져 있었다. 빨간색과 검은색이 섞인 1품 띠와는 전혀 다른 간지 대폭발. 우리 집에 검은 띠라는 게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걸 이 아이가 해냈다.
감탄하며 바라보는 사이 첫째는 4품까지꼭 따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아까까지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던 카지노 게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늠름해 보였다.
도장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아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카지노 게임가 된 건 좋긴 한데 월요일 수요일 수련 시간에는 자기가 맨 앞에 서야 해서 싫다고 했다.
나는 처음 알았다. 도장에서 아이들이 무작위로 자리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띠의 색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는 사실을. 가장 높은 띠가 맨 앞줄에 서고, 그 뒤로 빨간띠, 밤띠, 파란띠가 차례로 뒤따른다고 했다. 시범단 수업이 아닌 일반 수련 시간에는 자연스레 카지노 게임인 자신이 가장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동작을 따라 할 앞사람이 있어서 부담이 덜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던 모양이다. 자세가 헷갈리기라도 하면 뒤에 선 언니 오빠들까지 다 보게 되고, 사범님들이 지적을 하시기도 한단다. 하얀 띠에서 시작해 노란띠, 초록띠 등을 지나 마침내 카지노 게임 띠.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던 그 띠가 막상 매어보니 무게가 남달랐던 것이다.
"그게 전문가의 자세인 거야. 잘하는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배우잖아. 그래서 카지노 게임는 더 열심히 해야 해. 그러면서 더 잘하게 되는 거고."
내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위로가 됐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부담이 됐을까. 아이는 아무 말 없이 태권도복을 허물 벗듯 훌훌 벗어던지고 소파에 몸을 묻어버렸다. 그 작은 등이 말해주었다. 오늘의 카지노 게임는 조금 벅찼다고.
누군가를 따라가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자리로 옮겨 간 일. 그건 단순히 기술이 늘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만큼 더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고 더 자주 연습하며 스스로를 다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잘해서가 아니라 잘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일도 비슷하다. 책을 한 권 낸 작가는 대부분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첫 책 보다 나은 두 번째 책을 쓰기 위해 오히려 더 오래 고민하고 더 많이 고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생각한다.
캘리그라피도 마찬가지 같다. 수업해 주시는 선생님은 이미 글씨를 아름답게 잘 쓰시지만 정작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는다고 한다. 앞에 선 사람일수록 더 많이 연습하고 더 정성을 들인다. 그래야 뒷자리에 선 사람들이 제대로 보고 제대로 배울 수 있으니까.
카지노 게임를 맨다는 건, 단순히 띠의 색이 바뀌는 일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자주 틀릴 수 있고 누구보다 더 많은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자리. 하지만 그 무게를 견뎌보는 경험이야말로 지금 아이에게 꼭 필요한 성장일지도 모른다. 앞에 선다는 건 완벽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노력하겠다는 마음의 약속이니까.
아이는 그 약속을 카지노 게임 띠에 묶어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