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자!
오래전 중딩 때 윤회라는 개념을 <윤회의 비밀 (지나 서미나라) 이라는 책에서 처음 접했다. 모태신앙으로 카톨릭이었던 나는 교회와 성당에서 풀 수 없었던, 어릴 때부터 가졌던 의문점들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초딩 때)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이 카지노 게임 추천을 창조했다면 그 신은 누가 창조한 건가요?"
신부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돌아왔다.
"그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참 어이가 없다고 여겼던 듯하다.
그래서 그곳은 답을 얻을 수 없는 곳이구나 하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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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은 논외의 이야기지만 나름의 큰 깨달음을 얻은 스물다섯의 나는 그제서야 그 신부님의 답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런 질문은 금물!' 이라는 신부님의 본 마음의 본뜻은 좀 다른 것이었는지 몰라도 신을 누가 창조했는가 하는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본다. 왜냐면 신은 창조 혹은 질문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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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윤회라는 개념,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기존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반하여 내게 세계의 평등성을 설명해줄 수 있었다. 왜 누구는 그토록 복된 삶,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나름의 풍요를 누리고 누구는 그토록 가난한 고생을 하는가? 결국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기자신에게 달린 일이었다.
내게 윤회의 기본 개념을 새겨준 지나 서미나라 라는 저자의 윤회의 비밀이라는 책은 최면을 통한 전생퇴행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전생을 추적하는 사례를 담았던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사례들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이 과거생에서 동물이었던 사례는 없었다.
이후에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내용을 접하면서 카지노 게임 추천이 과거생에서 축생, 즉 동물이었을 수 있고, 현재의 카지노 게임 추천 또한 그 업보에 의해 다시 축생으로 윤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큰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죽어서 개나 되지 같은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
세월이 많이 흐르고 명상, 수행, 붓다의 가르침, 깨달음에 대한 의식, 공부,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성숙된 결과에 따라 축생으로의 윤회에 대한 이해 역시도 깊어졌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윤회하는 의식에 대한 의문도 편안해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카지노 게임 추천의 의식이 축생으로 윤회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과거의 내가 잘못 인식하고 실수하고 있던 부분은 카지노 게임 추천의 의식을 '카지노 게임 추천의 영혼' 이라는 식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흔히 불멸하는 카지노 게임 추천의 고유한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윤회하는 주체는 그러한 불멸의 영혼이라고 여긴다.
이런 오해에서 소울메이트니 하는 온갖 환타지스러운 오해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잠시 붓다의 가르침을 들어서 이해해보자.
우리 존재는 오온 혹은 오취온 이라고 하는 다섯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가르침이다.
이 다섯 구성요소를 색수상행식 - 물질(육신), 느낌, 인식, 형성/심리현상, 의식 이라고 한다. 간단하게만 이해하자면 윤회하는 주체가 되는 것은 의식이다.
의식은 불멸하는 영혼이 아니다.
의식은 지능을 가진 카지노 게임 추천형태를 띤 비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 많은 분들에게 함께 지내는 댕냥이가 있을 것이다.
물론 카지노 게임 추천보다 낮은 지능을 가진 동물인 그들도 모두 색수상행식 오온으로 구성된 하나의 존재이다.
그들에게도 그들 각자의 의식이 있음을 알 것이다.
의식은 지능이 아니다.
지능은 어떤 몸의 어떤 두뇌를 가지느냐에 의해 그 대체적인 수준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현재는 카지노 게임 추천의 몸과 정신으로 동작하는 의식일지라도 동물의 몸에 깃들게 되면 그에 적절한 지능을 갖게 된다.
이럴 때 그 동물은 카지노 게임 추천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의지와 선택지를 행사할 수 밖에 없다. 주어진 환경적 조건에 아주 크게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축생은 지옥보다는 낫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보다는 못한 '악처' 로 분류된다.
웬만해서는 카지노 게임 추천으로 환생한 카지노 게임 추천이 축생으로는 환생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큰 과오를 저지른 존재라면, 그 결과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주는 이렇게 크나큰 균형점을 갖고 있다.
스스로 일으킨 일의 과오의 무게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이것은 어느 절대자가 법정의 판사처럼 판결내리는 성질의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아, 물론 이런 일들을 굳이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해서 (사람들이 흔히 신을 절대자인 인격신으로 구체화 하듯이) 본다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내가 정리한 결론은 이렇다.
누구도 무엇에 대해서도 남탓 할 일이 아니다.
스스로 지은 잘잘못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러니 남에게 상처주지 말고
자신에게도 (스스로) 상처주지 말고
자신부터 즐겁게 살고 남들도 행복하게 도와주면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