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그곳만의 룰이 있다
알람은하나만맞췄다. 네시반에일어나지못하면네시사십분에도일어나지못할것같아서였다. 살면서늦잠으로많은걸잃어왔지만, 결과적으로인생자체를잃진않았다. 늦잠으로잃어버릴정도의것이었다면애초에내것이될수없었던것이다. 너무운명론적인사고회로가아니냐고? 어처구니없는이유로이것저것잃고골치를썩어대다보면. 끝내는뇌의일부가돌아버린다.
떠나기전에한차례더짐을점검하고, 택시가잡힐때까지창밖을바라봤다. 해가뜰기미도없이밤보다더새카만밤이도시전역에드리워카지노 쿠폰. 못보던러시아국기가먼쪽건물옥상위에서휘날리는모습이보였다. 기온은낮았으나바람이뜸해춥게느껴지지는않았다.
사람이많았다. 도시전역이불을끄고인적이사라진시간대. 수십명의사람들이새벽녘이나이른아침에출발하는버스를타려고터미널로비에대기중이었다. 나이외의외국인은거의없었다. 빨간여권을손에들고있는걸보니대부분은러시아사람같았다. 국내사정이좋지않으니우선은육로로국경을넘으려는걸까? 자세한사정은알수없다.
두 나라 사이를 오가는 버스여서인지 탑승하기까지의 절차가 여느 고속버스보다는 훨씬 복잡했다. 버스마다 운전기사 겸 승무원이 두 명이나 붙어있었고, 좌석을 배정하기 전에 탑승권의 유효여부와 여권, 비자 등을 꼼꼼히 확인한 다음에야 차에 들어갈 수 카지노 쿠폰. 내 경우 앞에 있는 사람들이 미리 출력해놓은 서류 비자 같은 걸 꺼내들길래 끝까지 조마조마 했다. 핀란드 입국을 위해 준비한 비자? 내게는 존재할 리가 없는 물건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핀란드에 입국할 예정 자체가 없었으니까.
다행히비자체크는러시아사람들에게만해당되는절차였다. 대한민국여권은해외에서매우취급이좋은편이어서웬만한나라들과는전부무비자협정을맺고있기때문이다. 요컨대한국인들은외국인중에서도상당히무해한부류로취급되는것같다. 다른나라까지가서불법체류를하며허가되지않은장사를하거나, 테러공작등으로피해를입히는일도없다. 오히려생활수준이좋고해외관광을즐기는국민들이라되도록많이오게끔유도해서관광수입을올리는쪽이좋다… 그렇게여겨지는덕분에, 한국인은구십일동안은비자없이도그나라에머물수있게된다. 어떤러시아인은오분넘게걸렸던탑승절차가내겐이십초남짓에불과카지노 쿠폰. 입국목적이나비자를빡빡하게확인할필요가없으니까. 이해관계가희미한먼나라사람이니까. 오히려국경을맞대고있는핀란드와러시아이기때문에, 그들끼리는출입국심사를더엄격하게하는경향이카지노 쿠폰.
‘이럴 땐 한국인이라 참 다행이군…’
한국같은 선진국에 태어나서 천만다행이야, 대한민국 만세—로 이어지는 사고회로는 이제 안이하다. 그냥 때와 장소에 따라 내게 주어진 조건이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일에 일희일비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카지노 쿠폰던 것 같다.
카지노 쿠폰 8번 좌석에 앉았다. 옆자리는 쭉 비어카지노 쿠폰. 앉은 자세 정면으로 보이는 앞좌석 뒷부분에는, 태블릿 PC 화면 같은 것이 부착돼 영화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돼카지노 쿠폰. 물론 그런데 저장돼있는 콘텐츠들은 지금 기준으로 꽤 오래된 것이거나, 꽤 괜찮다해도 한국어 지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순순히 노트북을 꺼냈다.
오전 여섯시 삼십분. 마침내 버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버스터미널을 출발했다. 해가 뜨기 직전이었고, 고속도로로 통하는 교차로는 아직도 주황색 가로등들이 수놓고 카지노 쿠폰. 버스 내부의 불은 머지않아 꺼졌다. 카지노 쿠폰 그 일련의 과정에서, 분위기로부터, 겨울철 서울에서 강원도 스키장으로 향하는 야간버스가 떠올라 대뜸 뭉클해졌다. 별안간 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언젠가 꿈에서 이 비슷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면? 카지노 쿠폰 내가 휘닉스파크행 셔틀버스 안에 있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수천킬로미터를 지나왔더니 비행기가 취소돼서, 하는 수 없이 국경을 넘어 우회경로로 귀국하려는 첫 관문이 아니라. 예지몽은 그 수신자가 과거의 자신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가졌다.
버스가대도심을벗어나교외도로로접어들었다. 창밖에앙상하게꺼진숲이펼쳐졌다. 천정을덮은구름들사이로거뭇거뭇햇빛이묻어나오기시작카지노 쿠폰. 이대로별탈없이간다는가정하에, 헬싱키까지는일곱시간이걸린다. 카지노 쿠폰노트북으로지금까지카지노 쿠폰던일을메모하다가, 도착하기까지몇시간이라도눈을붙이자는생각으로머리를뒤로기댔다.
정신을 차렸을 땐 버스가 멈춰카지노 쿠폰. 버스 출입문 쪽에서 군인 두 명이 운전기사 한 명과 대화를 하더니, 나를 포함한 탑승객들의 여권과 비자를 재차 확인하기 시작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버스에 탑승했을 때도 한 검사를 왜 또 하나 싶으면서도, 이번에도 별 일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편히 여권을 내밀었다.
군인은 내 여권을 유심히 보더니 무어라 말을 하기 시작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순간 뭐가 잘못된건가 싶어 황급히 번역앱을 켰지만, 국경 근처까지 와서인지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았다. 버스는 계속해서 멈춰 있었고, 다른 탑승객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쪽 자리를 쳐다봤다.
‘설마 내가 지뢰인가? 나 때문에 별 것도 아닌 검문이 오래 걸리고 있는 건가…?’
군인은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내 여권과 이민카드를 가리키면서, 계속해서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기분만 전달하고 카지노 쿠폰.
끝내 뒷 자리에 앉은 다른 승객이 영어로 몇 마디 설명을 해줬다. 듣자하니 이민카드 문제 같았다. 왜 이걸 복사본으로 가지고 있느냐? 원본은 어디가고 없느냐? 뭐 그런 얘기. 카지노 쿠폰 기적적으로 연결된 번역앱으로 ‘카지노 쿠폰 이민카드를 한 차례 분실했고, 그 도시에 있던 관공서에서 사본을 새로 발급받았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까?’ 라는 메시지를 통역해 보여주었다.
그러자군인은머리를갸웃하더니, 내여권을가지고버스밖으로나가있다가십분이지나서다시돌아왔다. 그리고아무일이없었다는듯여권을준다음다른사람들의여권을확인하기시작카지노 쿠폰. 나중에어떤문제가발생할지모르니복사본을만들어둔것일까. 어쨌든불시검문은별탈없이끝났고, 버스는다시출발해국경검문소가있는쪽으로달렸다. 길가표지판에키릴문자와영어로각각‘핀란드방면’이라표시돼있는것이보였다.
공항이 아닌 육로에 있는 검문소에서 출입국심사를 하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하기야 한국은 삼면이 바다에, 대륙으로 통하는 길은 휴전선으로 막혀있으니 웬만해선 육로로 국경을 건널 일이 없기는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검문소에는 핀란드인들이 카지노 쿠폰. 그들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대개 키가 크고 말쑥한 인상이라는 것, 두 번째는 러시아인들과 달리 영어 구사에 무척 능숙하다는 것이었다.
국경검문소에 도착한 버스는 모든 승객을 하차시키고, 트렁크에 실어놓은 모든 짐을 꺼내 소지품 검사대로 보낸다. 그 사이 나를 포함한 승객들은 핀란드 입국심사를 받았다.
한국인은핀란드에도무비자입국이가능하니여권상으로는큰문제가없었다. 다만카지노 쿠폰아직PCR 검사결과를받지못카지노 쿠폰. ‘코로나관련사유로입국이거부당하면어떡하나…’ 하는걱정을, 입국심사대에들어가질문을주고받는동안에도계속할수밖에없었다.
“환영합니다. 무슨 목적으로 핀란드에 방문하시는 거죠?” 금발의 핀란드 입국심사관이 내게 물었다.
“아, 그,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카지노 쿠폰 머리가 복잡해 간단한 대답을 하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 한국에서 왔다니, 그건 이미 내민 여권만 봐도 알 수 있는 거잖아. 왜 얘기했지? 필요한 것만 얘기하자. 필요한 것만.
“러시아 여행중에 귀국행 비행기가 취소됐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핀란드를 경유하려고 해요”
“아, 그러신가요?”
“네”
“핀란드에 머무는 기간은?”
“하루도 안 있을 것 같아요. 내일 오전에 비행기가 출발합니다”
“아하~” 카지노 쿠폰 그렇게 대답하는 입국심사관의 표정이 사뭇 온화해진 것을 눈치챘다. “직업이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작가입니다. 글을 써요”
“좋군요. 그럼…” 입국심사관은 마지막으로 내 얼굴과 사진을 몇 번 교차해보고, 여권을 되돌려줬다. “아. 백신은 맞으셨나요?”
“네. 한국에서 두 번 접종했어요”
“어디 걸 맞으신거죠?”
“화이자입니다.”
“네. 핀란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카지노 쿠폰 고개를 숙인 뒤에 “키토스Kiitos”라고 말했다. 핀란드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버스안에서 외워둔 몇 가지 의사표현이었다. 입국심사관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입국심사장에서 나오자 이미 심사가 끝난 승객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그 근처 벤치에 앉아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걸로 적어도 핀란드에 입국하는 절차는 끝이 난 것이다. 그렇게 국경을 넘어 핀란드 안으로 들어왔다. 구글 지도로 본 내 위치 역시 핀란드에 있는 것으로 나왔다. … 어떻게 다른 나라에 오긴 왔다! 처음에는 진짜 말도 안 되는 계획 같았는데. 이렇게 조금씩 풀려가고 있구나,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헬싱키행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기왕일어난김에뭐라도좀쓰다자자’ 는계획은약삼십분만에좌절됐다. 심사장안에서어지간히겁을먹고카지노 쿠폰던지, 버스좌석에앉자마자긴장이풀려잠이몰려왔다. 일어났을때는이미오후한시, 버스는헬싱키-반타공항에정차해카지노 쿠폰. 반타는헬싱키교외에위치해교통허브역할을담당하고있는위성도시라고한다. 우리나라로치면김포같은느낌일까. 세계에서가장검은색으로알려져있는‘반타블랙’과관계가있나싶었지만그렇지도않았다. 카지노 쿠폰잠깐버스에서내려공항주위를둘러보다가자리로돌아왔다.
핀란드 도로가는 러시아처럼 숲이 많다. 중간중간 터널처럼 시야를 가로막는 거대한 암석이 자주 보였다. 암석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벽처럼 매끄러운 모양에, 햇빛을 반사해 별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이 멋스러웠다. 뭘 조각해본 경험이라곤 초등학생 때 지점토를 깎아본 게 전부이지만. 그런 돌을 깎아 조각상을 만든다면 꽤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향에서헬싱키시내까지는삼십분이조금넘게걸렸다. 승객들은고속터미널같은곳에버스가멈추자마자짐을챙겨어디론가떠나버렸다. 카지노 쿠폰버스승무원아저씨한쌍에게고맙다고인사를건넨다음터미널밖으로나왔다.
헬싱키는 현대적인 도시였다. 물론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크고 현대적인 대도시다. 하지만 헬싱키가 현대적인 방식은 언뜻 보기에도 다른 도시들과 달라보였다. 그건 도무지 언어화하기 곤란한 지점에서의 차이였다. 러시아보다 크고 웅장한 건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국보다 사람이 많지도 않다. 지천에 문화유산이 널려있다는 느낌도 없고, 특출나게 대단한 양식이나 구조가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 도시 한가운데에 서서 두리번거렸을 때. 카지노 쿠폰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어떤 식으로의 일관된 원칙과 질서를 느낄 수 카지노 쿠폰. 시계바늘처럼 움직이는 자동차, 노면전차와 행인들. 과연 ‘이것이 선진국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풍경이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카지노 쿠폰 헬싱키에서 머물 하룻밤짜리 호스텔을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다만 핀란드는 평균임금과 생활수준이 높은만큼 물가도 살인적이어서, 가장 저렴한 호스텔조차 이십사유로—우리돈으로는 삼만원—의 숙박료가 들었다. 러시아였다면 하루에 만 원 정도로도 떡을 쳤을 텐데. 기본물가가 이렇게나 차이가 나니 러시아 사람들이 북유럽 방면으로 관광을 오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묵자흑이라고 하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해서 꼭 닮은 나라가 되는 건 아니다.
터미널에서호스텔까지는도보로삼사십분정도걸리는거리였다. 못걸어갈거리는아니지만캐리어짐이있는만큼이동에힘이들것이다. 택시는보나마나비쌀게뻔하고. 그나마‘헬싱키는대중교통이잘발달되어있다’는정보를토대로HSL이라는앱을다운로드받았다. 5유로에헬싱키시내의노면전차, 버스, 지하철을자유롭게이용할수있는종일권을결제할수카지노 쿠폰.
노면전차라고 하면 흔히 트램이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외형이나 내부모습은 버스인데, 길을 왔다갔다하는 방식은 스크린도어없는 전철에 가깝다. 운행 중 소음이 거의 없고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도 없다. 사람이 많은 역 근처, 큰 도로 부근만이 아니라 인적이 드문 골목골목까지 노선이 뻗어있는 것이 말그대로 이곳의 대중교통이다. 핀란드어 철자가 헷갈려 잘못된 역에 내릴뻔하기도 했으나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유로호스텔Eurohostel은이름대로외국인관광객이많이들묵으러오는곳같았다. 건물하나를통째로쓰고카지노 쿠폰. 로비에서부터단색위주의깔끔한인테리어가마음에들었다. 카운터직원은영어응대가탁월카지노 쿠폰. 내가묵을호수는이백이십이호이고, 거기에있는A번침대를이용하라는안내를받고방을찾아갔다.
방 하나에 일층짜리 침대가 두 개 있는 2인실이다. 침대 말고는 큰 책상과 의자, 개인용 캐비넷, 취침용 전등, 책장이 구비되어 카지노 쿠폰. 느낌만 보자면 숙박업소가 아니라 디자인 전문 대학교의 신축 기숙사 같다. 물론 그것도 어떤 관점에선 숙박업소와 비슷하지만… 나 말고 다른 숙박객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카지노 쿠폰 여유롭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캐비넷 안에 집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걸터 앉아 마른 세수를 했다. 한 달 전, 한국을 떠나고 나서부터 카지노 쿠폰 이런 순간을 조금 즐기게 돼버렸다. 또 한 번 무사히—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목적지에 도착해, 잠깐의 안식을 얻게 되는 순간. 카지노 쿠폰 정적을 확인한다. 일분일초가 이리도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배가 고파서 밖으로 나왔다. 지도상으로는 숙소 근처에 식당이 몇 군데 있었지만, 마침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하나하나 돌아다니기에는 힘도 없고, 선택지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트램을 타고 도심부로 향했다.
아까왔던곳으로다시되돌아가는길이었다. 헬싱키대성당앞을지나가는데광장쪽에서소규모시위가일어나고있는걸봤다. 핀란드와우크라이나국기가함께있어서반전시위라는것을알았다. 러시아를막벗어난시점에서그런광경을보자니생각이복잡해졌다. 이시기에러시아만큼유럽에서미움받는국가가있을까? 일방적인침공으로전쟁을일으켰으니자업자득이기는하지만… 그런나라를가로질러와서한국으로돌아가려는나도어쩐지공모자가된기분이었다. 딱히죄는짓지않았는데도. 세상에는그런뻔한사실만으로해명되지않는기분이있다.
핀란드는 공연하게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불리는 곳이다. 사회복지, 교육제도, 시민의식, 새집 인테리어와 동계올림픽 성적까지. 이른바 북유럽 모델이나 스타일이라는 것이 수많은 분야에서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북유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문화적 압력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가령 술에 취해서 새벽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고 나서도, “북유럽 국가에서는 늦은 밤에 신호등을 꺼놓는다고 해… 사고가 날 가능성도 높고, 밤에는 억지로 운전을 하기보다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어서지…” 따위의 말로 둘러대면, 사실 다 지어낸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그럴듯해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니, 아님 말고….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하는가. 일단은 일요일에 쉬는 가게가 많아야한다. 나처럼 근본없이 일요일에 입국한 관광객은 식사를 해결할 곳이 여의치 않아야 한다. 어떻게 열심히 찾아 들어간 뷔페 식당에서 여유롭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야 있겠지만, 자그마치 55유로라는 정신나간 밥값에 다리가 후들거려야 한다. 서비스도 좋고 티라미수도 맛있긴 했지만 밥 한 끼에 칠만오천 원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밥먹는 도중에 받은 메일, PCR검사 결과를 알리는 메시지 결과가 음성이 아니었다면, 그 핀란드 뷔페식당 계산원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 뻔 했다. 참 다행이다.
난생 처음으로 순수한 의미의 유럽 국가에 발을 디뎠던 참이지만. 아쉽게도 내겐 도시 곳곳을 뜯어보고 다닐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때마침 지척에 있던 핀란드 국립 미술관Ateneum에 들러 전시를 구경하는 것 정도였는데, 입장권만 18유로로서 트레티야코프와 예르미타시 미술관 입장료를 합친 것보다도 더 비쌌다.
‘그만큼자국미술에자부심이대단하다는거겠지’ 라고생각하며들어갔다. 입장권은따로출력해주지않고손등에다스티커같은걸붙여준다. 접착력이좋아서, 코로나예방차화장실에서손을빡빡씻지않는다면야떨어지지않을것같았다.
아테니움의 전시는 그 방식대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전시품목의 팔할 정도는 핀란드 자국의 미술품이다. 어떻게 발음해야할지 모를 이름의 화가들이 훌륭한 그림들만큼 많았고, 회화 뿐 아니라 조각과 사진까지 고루 조화롭게 배치한 전시방식이 보기에 좋았다. 영어표기도 잘 되어있다. 핀란드인의 영어표기는 Finnish다. 처음에 봤을 땐 웃겼는데 보다보니 멋있게 느껴졌다.
나머지 이할은 어찌어찌해서 소장하게 된 외국 회화들이다. 고갱과 세잔이 각각 두 점씩, 그리고 고흐가 죽기 전에 그렸다는 풍경화가 한 점 걸려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늙은 할머니 한 분이 마스크와 머플러로 입을 가린 채, 한참동안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하며 그림을 감상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오는 길에서 돌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도 봤다. 엄지 손가락만한 자두색 지우개였는데, 꽤 오래 사용한듯 많이 닳아 카지노 쿠폰. 잃어버린 사람이 꽤 속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 속에서의 핀란드라고 하면, 무슨 국가별 교육수준 평가에서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한 나라라는 것, 그리고 포뮬러원 경주에서 은퇴한 과거의 챔피언 키미 라이쾨넨이 핀란드 출신이라는 것 정도다. 과연 교육수준 탑이라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미술관 직원은 물론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실 것이나 좀 사려고 들렀던 마트의 계산원까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여기는 2개 국어가 기본 소양 쯤 되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내가 들른 식료품점 간판에는 ‘K-Mart’라는 글자가 새겨져 카지노 쿠폰. 한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았지만. 아마도 코사-마트의 줄임말이 아닐지? 이것도 아님 말고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오후 일곱시쯤 되어서 숙소로 돌아왔더니 모르는 금발 외국인이 짐을 풀고 카지노 쿠폰. 네덜란드 학생으로 첫 해외여행을 왔다는 조이. 키가 멀대처럼 큰데 얼굴은 영락없는 고등학생처럼 어려보였다. 나이를 묻자 진짜 열아홉살이라고 했다. 확실히 이쪽 사람들은 빨리빨리 커버리는구나.
조이는 대학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있다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만난지 삼십분도 안 됐는데 자신이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출신이며, 어렸을 때부터 거기 있는 축구팀 PSV의 팬이었다는 사실까지 줄줄 말해왔다.
“…PSV란 말이지?”
“맞아. 아주 훌륭한 팀이야. 요즘 들어서는 못하지만” 조이가 그런대로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조이. 미안하지만, 이럴 때 한국인이라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이 있어…”
“뭔데?”
“너, 호, 혹시…” 카지노 쿠폰 자괴감에 말을 더듬었다. 이런 질문을 내 입으로 직접 하게 될 줄 몰랐다. “…너 혹시 박지성 알아?”
“아, 아아. 지성팍 말하는 거구나. 당연히 알지… 근데 알기만 알아. 어떤 선수였는지는 잘 몰라” 라고 대답하는 조이의 표정은, 그야말로 ‘김치를 햄에 싸서 드셔보세요’ 를 들은 톰 행크스의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별로 좋아하는 선수는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열아홉살이면 세대도 달랐을 것이고.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남자들끼리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게임 얘기도 하게 됐다. 조이는 엄청난 축구광이어서, 얼마전 플레이스테이션을 새로 사서 피파 시리즈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집에 엑스박스가 있어서 잠깐 했다고 말했다. 조이는 언젠가 같이 붙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카지노 쿠폰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가 교차 대전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카지노 쿠폰. 그걸 말해줬더니 조이가 하는 말.
“이래서 엑스박스는 문제야. 플레이스테이션과 연결이 안 되잖아!”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 아냐?” 카지노 쿠폰 조금 발끈했다.
“그렇지 않지. 엑스박스를 사는 건 플레이스테이션 가격이 떨어지는 걸 못 기다린 사람들 뿐이니까”
카지노 쿠폰 “어린 놈 주제에. 왜 이런 분야에서 이상한 혜안이 있는 거야?”라고 말하고, ‘에이, 그래도 엑스박스도 좋은 게임기야’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어지간히도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내가 “내일 비행기를 타야하니까 오늘은 일찍 잘 거야”라고 했더니, 숙소 로비에서 체스판을 들고와서는 “한 판 만 두고 자자”라고 말했다. 내가 귀찮다고 말하든 말든 조이는 체스말을 차례로 세우고 카지노 쿠폰. 할 수 없이 마주 앉아서 내 쪽을 정돈해 놓았다.
“루크는 체스 잘 둬?”
“아니… 룰 정도만 알아” 라고 카지노 쿠폰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체스에서의 룰이란 그저 어떤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서 끝카지노 쿠폰 게 아니고, 캐슬링이나 앙파상 같이 제한된 상황에서 적용되는 규칙도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
“카지노 쿠폰 어렸을 때 엄마랑 많이 뒀지. 엄마한테 이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 조이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첫 번째 수를 뒀다.
‘뭐지. 퀸스갬빗인가…?’
카지노 쿠폰 매우 긴장한 상태에서 맞수를 뒀다.
조이는 나한테 사정없이 털렸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봐주는 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순수하게 못두는 것이었다. 퀸도 룩도 다 빼앗기고, 완전히 수세에 몰리기까지 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티나게 파놓은 함정수에 족족 걸렸고, 전략이라는 것도 없었다. 정말 체스를 ‘좋아하기만 한다’는 느낌이었다.
“으악, 젠장!” 조이는 체크메이트에 걸려 지고나서, 그 벌칙으로 혼자 체스판을 정리하면서 말카지노 쿠폰. “어째서 진 거지? 정말 아깝다!”
카지노 쿠폰 “전혀 안 아까운데” 라고 말하고 ‘아냐. 그래도 잘 뒀어’라고 생각했다.
뭔가 말을 심하게 한 것 같아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찍어 조이에게 건네줬다. 조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루크는 좋은 사람이구나. 한국인들은 전부 좋은 사람인가봐?”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조이는 내가 잠들기 직전까지도 계속, 내가 혹시 코를 심하게 골기라도 하면 바로 깨워줘, 냄새가 나서 신경쓰이면 얘기해, 같은 말들로 내 잠을 방해해왔다.
“물어봐줘서 고맙지만, 카지노 쿠폰 신경꺼도 괜찮아” 내가 말했다.
그러자 조이가 대답했다.
“네덜란드 사람한테는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인걸”
“뭐가?”
“신경을 하나도 안 쓰는 것 말이야”
“…….”
카지노 쿠폰 누운 상태로 손바닥을 베개 밑으로 집어넣었다.
“조이, 내 생각에… 그건 네덜란드 사람인 것과는 상관없어. 그냥 네가 친절한 사람이라서야”
잠결에 “고마워”라는 대답을 들은것 같기도 하다. 내일 무사히 비행기 잘 타라는 말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