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논의한 일본의 상황과 '후퇴'에 대한 이야기다. 기후변화, 고령화 사회, 저출산, 수도권 밀집과 지방 도시 소멸 등 우리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옆 국가의 이야기는 공감되는 구석이 많았다. 특히나 시간조차도 성장과 발전, 생산성의 측면에서 논의하는 현대 사회에서 후퇴란 얼마나 전복적인 주제인가.
책에는 여러 분야의 교수/연구자와 음악가, 극작가, 영화감독, 제빵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저자들의 글이 실려 있는데, 글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후퇴', 즉 그동안 독려되지 않았던 행동들에 대해 탐구한다. 너무나 다양한 나머지 글 사이의 논조나 방향이 제각각인 경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점들을 지적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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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도시로 인구가 과밀되는 현상이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임을 지적하면서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계속해서 주거가 밀집될 것임을 경고했다. 이 논의가 산천 지역이 야생과 인간의 접촉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분법적인 주장으로 흘러가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리고 누군가는 공약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자민당'이라면 무조건 뽑고 보는 정치적 무지를 비판하기도 했다. ‘후퇴’가 직접적으로 논의된 건 아니었지만, 퇴색되어가는 정치 문화 속에서 성장이란 병폐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겠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추구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개념으로는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보통과 표준을 강조하는 문화적 분위기를 지적하고 예외를 긍정하고자 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직업을 갖고 남과 같은 집에 살면서 똑같은 생활을 이루는 게 국가적으로 권장"되었지 않은가(124)? 후퇴를 통해 살펴보아야 하는 지점은 표준화됨으로써 추동되어온 성장 사회 속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다시 고민해보는 것이다.
직진카지노 게임 사이트 문명의 시간과 순환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연의 시간을 대조한 글도 인상 깊었다. “직진카지노 게임 사이트 시간에 살고 있는 건 인간이 유일하다. (…) 나는 왜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처럼 오만하게 행동하고 내 것인 양 으스댔는지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직진카지노 게임 사이트 데 경쟁자가 없으니 독주할 수밖에(145).” 반면 자연은 하루도 계절도 지속적으로 순환할 뿐이다. 이제는 ‘순환 경제'라는 용어조차도 익숙하다 못해 닳아버린 느낌이지만, 우리도 선형 경제의 폐단을 오랫동안 비판해오지 않았나. 자원을 생산과 폐기의 공간으로 착취해온 프로세스를. 이 ‘순환'의 가치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순환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우리는 직진만 해온 나머지 순환의 방법을 오래 전에 망각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후퇴를 논의한 경우도 있었다. 한 연구자는 연구자의 경험을 통해 삶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음을 들려주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연구를 중단하고 다시 처음의 지점으로 돌아가야 할 때, 아쉬움도 남았지만 돌이켜보면 후퇴가 좋은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고. 사업자가 사업을 접고 가진 재산도 모두 빚을 상환하는 데에 써서 0으로 돌아간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일종의 관성과 미련과 욕심에서 벗어나 무엇을 얻고 추구하게 되었는지. 물론 이런 사례의 경우, 후퇴에 분명 쓴맛이 있기 때문에 많이들 후퇴를 기피할 것이다. 쉽게 생각해보자면 오랫동안 공을 들인 원고가 날아갔을 때 느낀 참담함 같은 쓴맛이다. 그러나 다시 썼을 때 더 많고 깊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날려버린 시간이 참담하지만,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후퇴를 패배처럼 인식할 현대인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한 글에서는 역사적 책임을 회피카지노 게임 사이트 뉘앙스가 느껴져 매우 불편하기도 했다. 본래의 전범은 서구라거나, 태평양 전쟁과 아시아 국가에 대한 침략이 서구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자신이 저지른 죄가 아니므로 죄책감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서술… 전범을 저지를 만큼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독려되고 강화된 것이오로지 서구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더불어 해외 식민지를 ‘호령'했다면서 ‘대'일본제국에 대한 찬양 같은 표현들…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을 강조하며 동아시아 문제의 해결사, 리더로 일본을 포장하면서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을 강조하는 것에 매우 거부감이 들었다. 일본에서 후퇴를 말한다면, 뒤에 놓여있는 역사부터 직시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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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앞만 보며 쉬지 않고 달린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아왔는데, 우리가 지금껏 경시 또는 배척해온 후퇴란 어떤 것인가? 일견 우리는 후퇴를 무서워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후퇴란 절망적인 실패고, 돌이킬 수 없는 패배이며, 극복할 수 없는 상처인가?
우리가 현재를 '열심히' 사는 이유는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할 수 있는 미래란 조금 더 풍족하고, 조금 더 여유 있고, 조금 더 편안한 미래다. 그렇기에 성장과 발전만이 풍요와 여유, 편안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의 청사진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선형적인 개념으로만 논의되어도 괜찮은가?
“근대 이후 사람들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지금 이 순간의 ‘차 맛을 음미'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건강을 위해 마신다.(27)” 현재보다 미래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며, 심지어 현재는 주목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착취된다. 입시든 취준이든 승진이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러한 삶의 전진은 경쟁을 바탕으로 한다. 이때 끊임없는 경쟁은 우리 사회가 재촉하는 삶의 방식이다. 경쟁을 통해 탁월한 노동자로 거듭나고, 계속해서 공장을 가동하고, 자본은 이미 많이 가진 자에게로 더 많이 수렴된다. 어쩌면 미래지향적인 삶은 개인보다 집단을 위해 유도된 지점이 있다…
게다가 성공 담론은 개인의, 또는 우리 가족의 성장과 발전만을 그린다는 위화감이 있다. 부동산 투자가 미디어를 가득 채울 때, 많은 사람들이 임대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는 임차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이 사실은 수많은 재테크 콘텐츠 속에서 외면된다는 점이. 우리가 기대하는 성장과 발전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누군가를 제치고, 앞서나가고, 배제해야만 하는 성장. 왜 우리는 다른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가?
후퇴의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건 기존의 성장 관념이 우리 삶을 선형적으로 압축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우상향을 그려야만 하는 그래프의 선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마치 우리가 선으로 그어진 트랙 위에 달리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선이 아닌 들판에, 아니 평면적인 들판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공간에 있다. 이러한 곳에서 후퇴는 후퇴일 수 없고, 성장은 성장일 수 없다. 다만 공존할 뿐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 고령화와 저출산, 지방 도시 소멸 등 현대 사회가 마주한 문제가 가리키는 지점은 성장이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어떻게 과거처럼 성장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끌어안고 함께 살 수 있을지 공동체로서의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후퇴란 단순히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이켜보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방향을 재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의존할 수 없으므로.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겠지만, 복기하고 재정의하는 과정에 선다는 게 중요하다. 아마 바로 그 지점이 “한 걸음 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