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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Jan 21. 2021

카지노 게임 노이어를 향해 달릴 기회가 있었다면

17일. 아침에 창밖을 보자 눈이 펑펑 내린다. 맞은편 파스텔톤 건물의 갈색 지붕은 어느새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발코니로 나가 유리로 된 천장을 바라보자 역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눈은 밤새 내렸나 보다.


동시에 나의 희망도 소복이 쌓인다. 오늘 정우영이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단 10분이라도 뛸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희망. 정우영의 프라이부르크가 오후 3시 30분에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바이에른과 분데스리가 16라운드를 치른다. 내게 이 매치업은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2018년, 정우영이 바이에른 U-19팀에서 뛸 때부터 그를 취재했다. 1군 명단에 처음 들었던 날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데뷔하던 날에도 그를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지켜봤다. 그는 2년 전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한 이후 처음으로 등번호 29번을 달고 알리안츠 아레나를 찾았다.


그러니 내게 이 경기는 카지노 게임으로 시작해, 카지노 게임으로 끝난다. 사실 팀에서 입지가 좋은 편은 아니어서 선발을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최근 교체 출전은 꾸준히 했고, 또, 출전할 때마다 측면에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바이에른전에서도 그러길 바랐다.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감독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마누엘 노이어, 토마스 뮐러와 함께 훈련한 적이 있는 카지노 게임을 단 10분이라도 내보내지 않을까, 기대했다.


카지노 게임

코로나19로 인적이 드문 프뢰트마닝역에 도착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눈이 제법 쌓였다. '원래' 같았으면 이미 이 눈은 다 질척이는 검은색으로 변했겠지. 발이 푹푹 들어가는 눈길을 따라 걸으며 알리안츠 아레나로 향했다. 카지노 게임은 예상처럼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자석이 프라이부르크 벤치와 가까워 카지노 게임을 계속 관찰할 수 있었다. 트레이닝 복을 입고 벤치에 앉은 그는 그라운드로 입장하는 바이에른 선수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젠가 자신의 꿈이기도 했던 바이에른 1군 선발 포함. 저 자리에 있길 바랐을 카지노 게임의 머릿속은 평소보다 복잡하고, 기분이 이상했을 거다.


경기 내내 눈은 그칠 줄을 몰랐다. 달리는 선수들의 머리에 눈이 쌓이는 게 기자석에서도 보일 정도로 펑펑 내렸다. 눈은 계속 내리는데, 내 희망은 조금씩 사라졌다. 경기 도중 프라이부르크 선수 두 명이 쓰러지며 슈트라이히 감독은 예정에 없던 교체 카드를 두 장 사용했다. 약 80분의 시간이 흘렀고, 프라이부르크는 1-2로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카지노 게임은 끝내 슈트라이히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몸만 풀다 다시 벤치로 돌아가 앉았다.


바이에른의 2-1 승리로 경기는 끝났다. 카지노 게임은 느릿느릿 벤치에서 일어나 그라운드로 나가 동료들을 격려했다. 그때 자말 무시알라, 알폰소 데이비스가 카지노 게임에게 다가왔다. 바이에른 캠퍼스에서 함께 성장한 옛 동료들이다. 곧 뮐러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제롬 보아텡, 다비드 알라바도 카지노 게임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노이어는 카지노 게임을 보자마자 어깨동무를 하며 한참 대화를 나눴다. 악수를 하고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하는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 둘은 눈에 확 띌 정도로 붙어있었다.


못내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왔다. 카지노 게임 이날 기회를 잡았다면, 저렇게 친한 사이인 '월드 클래스 골키퍼' 노이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릴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꿈을 키웠던 구단인 바이에른을 상대하는 그에게 동기부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을 거다. 경기 결과는 바꾸지 못해도 분위기는 실컷 흔들 역량이 있는 선수라는 건 이미 이전 몇 차례 출전에서 증명했다. 과거 동료였던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뛰면 어린 정우영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됐을 텐데. 동점 골을 넣기 위해서는 측면에서 스피드로 변화를 줄 조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평소 감독의 선수 활용에는 이러쿵저러쿵 내 의견을 비치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다. 정우영을 선택했다면 전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았을 거다. 물론 누구보다 가장 아쉬운 건 정우영 자신이다. 바이에른 동료들에게 받은 따뜻한 환대가 그나마 프라이부르크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에 큰 위안이 됐을 거다.


사진=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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