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편안한 명절
내 인생에 명절이란 늘 불편한 날이었다. 어릴 땐 큰집이라 엄청난 손님맞이를 했어야 했고 맛있는 건 많았지만 그 맛있는 것을 만드는 것에 조금이나마 동원이 되어야 했으며 가장 큰 고무 다라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를 처치하고 나면 바로 다음 끼니가 오곤 했다. 그래서 초딩시절부터 난 다짐했다. 결혼을 하지도 않겠지만 혹시라도 하게된다면 가족이 아주 적은 집의 아들과 하겠다고.
우리 친가 식구들이 대체적으로 성격이 좋지 못하며 인품또한 고매한 사람이 없다. (명절엔 늘 큰 소리가 오가거나 서로에 대한 직간접적 공격이 오갔다) 웃음소리보다는 늘 대립관계 혹은 원수 직전까지 간 사람들이 육탄전을 벌이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도록 나머지 사람들이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그 요주의 인물들은 때때로 바뀌긴 했으나 어쨌든 매 명절마다 늘 존재했다. 10세 이전 어릴 때에야 어렴풋이 알기만 했지 별로 끼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눈치라는 개념을 탑재하기 시작한 후엔 명절에는 늘 인간관계 대참사극을 목격하곤 했고 그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들은 당연히 아니었다.
20대가 되고나선 노동보다 더한 명절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정인물"에게덕담을 빙자한 잔소리와 공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기타 친척들은 나에게 미래에 대한 잔소리를 한 적이 별로 없다. 딱 한 사람, 그녀만이 내 인생에 과도한 관심을 표현카지노 게임 추천. 그녀는 바로, 우리 엄마의 시누이이자 나의 "작은" 고모다.
10대까지는 뭐 잔소리 정도라야 "넌 시집가지 말고 살아" 혹은 "너에겐 한의사가 어울려. 한의대를 준비해보는 게 어떄?" 정도였다. 결혼은 원래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고 한의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한의대를 내맘대로 갈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짜증은 나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내 학교외 활동이나 성적, 이런 것들은 솔직히 그녀의 자식보다 내 아웃풋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궁금증을 과하게 해소하려고 해서 그렇지 참견질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20대가 되고 진로를 본격적으로 결정해야 할 때가 오자 그녀는 자신의 자식과 비교를 하며 나를 밑으로 깔아뭉개는 발언을 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시험이란 건 원래 오래 공부하면 안 되는 거야. 고시공부는 3년 이내로 해야지? 우리 딸한테 공부 노하우 좀 배워." "뭐 고시까지 해. 여자는 선생이 최고야. 그냥 학교선생 해." "직장 취업 노하우는 우리 딸한테 배워. 니 이력서 컨설팅 좀 받아봐." (그때 그 아이는 학생 인턴일 뿐이었고 나는 인턴근무 하면서 취업준비 중이었다) "넌 성격이 세서 결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왕따당해서 유학보낸 딸래미 걱정이나 하지...) "남자친구 없어? 우리 딸한테 카지노 게임 추천 남자 소개받아."
지금에 와서는 자주 보지도 않는 조카한테 저런 말을 연2회이상 볼때마다 하는 고모라는 사람이 참 안타깝고 참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이구나 싶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정도 말보다 훨씬 더 심한 말을 들어왔고 나도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우리 집안에 요주의 인물에 추가되고 싶지 않아 늘 그저 참았다. SNS에 나오는 진상 친척들이 하는 짓은 모조리 다 하셨던 것 같다. 언젠 네 성격이 문제라서 결혼 안하고 사는 게 나을거 같다고 그러더니 30대가 가까워져 오자 시집을 잘 가야 한다며 미국에 있는 자기 딸 주변에 조건 카지노 게임 추천 남자들이 많으니 가서 소개 좀 받고 연애 노하우도 배우고 오라며(선생에 한 맺힌 인간인가 왜 그리 자기 딸 밑에 넣질 못해 안달이었는지 모르겠다...연애를 배워도 걔가 나한테 배워야 되는 게 맞지 않나 싶은데) 오바 쌈바를 하던 그녀. 물론 내 동생에게도 똑같은 언어폭력을 시전해왔고 우린 그런 고모를 솔직히 좀 싫어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자신의 딸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우리에게 뺏어 주려고 카지노 게임 추천. 함께 간 미국 여행길에 디즈니 샵에서 하나씩 산 볼펜을 그녀의 딸 때문에 몇시간 탄 국내선 비행기 안에서 스무번도 넘게 바꿔줬다. 자신의 아이가 배변실수를 한 것은 자신의 언니인 큰고모가 큰고모 딸을 너무 예뻐해서 샘이 나 그런 거라며 자기 언니를 탓카지노 게임 추천. 그때 고모의 만행을 부모님께 토로하면 아빠는 그래도 네가 다섯 살이나 많으니 뭐든 양보하고 참으라고 카지노 게임 추천. 그런 패턴으로 20년을 이어져왔다. 그러다 내가 대폭발을 하고 집과 한동안 연을 끊으면서 그녀를 볼 일도 자연스레 없어졌다.
꾸역꾸역 가족을 명절이며 행사며 만들어서라도 모이게 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도 편찮으시면서 지긋지긋한 명절은 사라졌다. 그리고 잔소리를 하는 그녀를 볼 일도 없어졌다. 왜냐면 아버지와 그녀가 거의 절연했기 때문이다. 모종의 이유로 아빠는 그녀의 싸대기를 날렸고 그녀는 그길로 아버지에게 연락을 끊었다. 물론 이유를 떠나 아빠의 행동은 잘못됐다. 하지만 그녀가 그간 우리 가족에게 날렸던 폭력도 잘못됐다. 둘다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이번 생에 없을 거란 것도 잘 안다.
그럴 바엔 안 보고, 안 듣고 사는 것이 서로카지노 게임 추천 좋다.
또한 이젠 내가 마흔이 넘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가 주는 연륜은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열심히 육아를 할 동안 나는 열심히 조직생활을 했다.(이러니 조폭같네) 드럽고 치사한 꼴을 보며 인간에게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곱절로 되갚아 주는지 너무 잘 안다. 그녀만 성질이 있는 게 아니다. 나 또한 그 피를 조금이나마 물려받았고 사실은 몇번은 다시 또 헛소리 못하도록 그녀에게 되갚아주었다. 살아보니 마냥 착하게 크는 게, 양보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너가 부당한 일을 봤을 때 대처할 수 있는 공격성 정도는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내 부모님이 내가 문제제기를 했을때 나를 탓하고 내게 마냥 참으라고 양보하라고 했던 건 부당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내게도 병이 생긴 거였으니까. 진작 배웠어야 했던 것을 못 배워 한참 카지노 게임 추천가 들고서야 스스로 깨우치고 방어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이번 명절엔 떡국 한 그릇, 10분간의 기도(난 무종교인이나 부모님이 어쨌든 종교인이니 이정돈 맞춰드릴 수 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해산했다. 서로에 대한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는 없었으며 얼마 전 내가 입양한 반려동물의 재롱을 보며 조금씩 놀아주고 TV프로그램에 대한 감상을 나눈 게 다다. 마음 불편한 것도 하나도 없고, 아주 평화로웠다. 옥의 티라면 아빠의 반찬투정 짜증 한번 정도?(음식을 많이 차렸다고 짜증내는 인간이란...) 눈이 내리고 강추위에도 멀리 안 가도 되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인생의 행복은 별 게 아니다. 귀인 100명 만나는 행운보다, 꼴보기 싫은 인간 한 명 안 만나는 게 복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지만 나는 30대보다 지금이 훨씬 더 좋다. 하기 싫은 거, 참아야 하는 게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부디 올 한해, 참을 일, 참아야하는 인간 없는 큰 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