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만약을 위해 내 방의 재난 매뉴얼을 정해두었다. 비상 상황 시에 들고 달아날 물건이 총 네 상자에 보관되어 카지노 게임. (그걸 실제로 다 들고 갈 수 있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한가지 공통점. 모든 상자는 '추억'과 관련되어 카지노 게임.
오늘은 그중 하나를 열어보았다. 침대 끝에 두고 먼지 끼도록 거의 살펴보지 않는 상자였는데, 쌓이다못해 들러붙은 먼지들을 왠지 떼주고 싶었다.
상자 맨 위에는 중3때 선물받은 '전체 교사 시간표'가 카지노 게임. 학교 선생님을 좋아했던 나에게 친구들이 학기말 교무실 대청소를 할 때 가져와 준 것으로 지금껏 가장 황당한 선물이었다. 코팅 먹인 이 사절지 아래엔 가지각색의 플라스틱 파일에 담긴 가정통신문, 그리고 이른바 수업 '프린트물'이 카지노 게임.
중2때부터 모은 것들로, 철저히 아름다운 기억을 가진 수업과 선생님의 자료물 위주로 보관을 해놓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땐 그나마 재밌게 들은 사회 시간 프린트물밖에 없다. 그럼에도 꽤 많아서 두께만큼은 거의 쌀가마니와 같다. 어릴적 듣던 말에 의하면 프린트물은 비료 혹은 분뇨(...)로 만들었다는데 그게 사실인줄은 모르겠다. 하여간 난 그 프린트물 냄새들을 참 좋아했다.
이렇게 학창시절 추억을 들춰보고나면, 보관물의 시간대가 약 15-20년전 쯤으로 점프한다. 중고교시절 유물들을 정리한걸로밖에 보이지 않던 상자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아래에는 '부모님'이 받은 카지노 게임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그 상자는 사실상 부모님의 카지노 게임 보관함인 셈이다.(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나의 '보관병'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그중엔 부모님이 서로 주고받은 것도 있고 다른 이들로부터 받은 것도 있다. 연하장, 크리스마스 카드 등 종류는 물론이요 수발신지도 다양하여 대학 기숙사와 군대 훈련소 주소까지 알 수 있다. 'PAR AVION'이라고 도장 찍힌 항공 카지노 게임도 있다. 그런데 (먼지 때문에 간간이 기침을 해주며) 구경을 하다가, 카지노 게임가 아닌 메모를 하나 보았다.
'오늘은 ㅇㅇ이가 태어난지 7, 8, 9 ... 열흘 째 되는 날이다.'
무려 25년 전의 이 메모를 읽자마자, 바닥에 펼쳐놓은 무수한 날짜들 사이에 한 획을 긋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이 먼지 상자와 마주본 곳에는 또다른 상자가 카지노 게임. 비교적 작고 가볍다. 그리고 먼지가 없다. 그것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받은 '나의' 카지노 게임 보관함이다. 대부분 친구들이 준 것이며,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카지노 게임도 있다. 편의상 부모님 카지노 게임함을 1번, 내 카지노 게임함을 2번으로 부르겠다.
두 편지함 사이엔 독특한 간극이 있다. 이어져있지만, 떨어져있고 떨어져있으나 이어져있는. 인류사를 예수 탄생 이전이후로 크게 나누듯, 이 카지노 게임은 나의 생일 이전이후로 나뉠 것이다. 내 생일이 없었다면 2번 편지함은 없었을 것이고, 1번 편지함이 없었다면 내 생일 자체가 없었으리라. 두 편지함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서로를 모를 가능성이 크다. 아니, 웬만한 2번 함의 주인공들은 1번 함의 시대에 대부분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들은 알까. 그들의 흔적이 지금 내 작은 방에 모여있다는걸. 서로가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같이 살았고, 바로 오늘 이순간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들의 연결점이 된 것만 같다. 사실 모든 이들은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의 연결점일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경우 내가 가늠하지도 못할 정도의 시간이 그들 마음 속에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산다는건 내 자신이 무언가를 잇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간과 공간의 분절을 나는 잇고 카지노 게임. 내가 만든 연결은 나 혼자만 만들 수 있기에 참으로 특별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내 이야기'는 모두 특별하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연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멀리 오고가기 힘들고, 많이 마주치고 헤어지기 어려운 지금 그 연결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부모님이 들은 음악과 내가 듣는 음악이 이어진다. 어릴 때 갔던 여행지와 작년에 다녀온 곳들이 이어진다. 어머니에게 중요했던 이들과 나에게 중요한 이들이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끈'이란 길가의 꽃처럼 조용히 피어있는 듯 하다.
다음엔 또 무엇이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