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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May 14. 2022

어메리칸 효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우며 열과 성을 다해 어머니를 간호하던 V 씨

고령의 U 할머니는 대상포진으로 인한 통증으로 입원을 하셨다. 완전 관해(더 이상 암의 흔적이 보이지 않음)가 된 지 이미 20년이 다 되어가던 U 할머니가 아직도 암 전문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까닭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세계 최고의 암병원으로 손꼽히던 병원 중 하나이다 보니 이런 사람이 또 아주 드물지는 않아서 뭐 그러려니 한다. 할머니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한 분은 의료계에서 일하시고 다른 한 분은 변호사로 꽤 큰 법률회사의 고위직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다. 할머니의 병실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분은 주로 이 변호사 따님이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사실 이 분에 관한 이야기이니 V라고 이름을 붙여 드리자.


V 씨는 변호사답게 말을 참 잘하셨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지만 또 너무 압박하는 것 같지는 않게 한 줌의 감성을 둘러쳐서 말하시는. 게다가 관찰력도 좋으셔서 할머니의 상황을 우리가 오면 아주 잘 설명해 주셨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변호사 일만 하셔도 하루가 72시간이라도 모자랄 분이 거의 하루 걸러 한 번씩 할머니의 병실에서 같이 주무시며 병간호를 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 효녀는 U 할머니와 옆 아파트에 나란히 사시는데, 더 놀라운 것은 입원 안 했을 때도 할머니와 같이 잤단다.


그렇게K-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대표 주자, 공양미 삼백석의 심청뺨치는어메리칸효성으로할머니를간호하던V 씨의열성은아름다운것이었지만덕택에U 할머니의진료는쉽지않았다. 시중에나와있는모든약을보고신경차단술까지보았지만V 씨의눈에할머니의통증은차도가없었다. 지금도그때를생각해보면U 할머니랑직접이야기해기억은별로없고강렬한눈빛을발산하며자신의생각을말하던V 씨의얼굴만생각난다. 그런데그런V 씨의속마음을들을기회가생겼다. 어느날인가U 할머니가무슨검사를받으러갔는지V 씨만혼자병실에있던적이있었다. 이런저런얘기를하다내가낮에는그렇게로펌에서사람들을진두지휘하면서밤에는이렇게카지노 게임 사이트돌보려니힘들지않냐고물었더니, 이런말을하셨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20년 전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그날, 나는 앞으로 절대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나는 우리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만 15년을 조금 넘게 같이 살았다. 전형적인 희생의 아이콘 K-마더인 우리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일하시면서 언니들과 나를 기르시며 2인분의 삶을 살아가느라 정말로 당신의 삶은 1도 없는 인생을 사셨다. 그런데 그렇게 길러 놓은 딸들 중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지척에서 살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삶을 나누는 딸은 하나도 없다. 나이 들면 다 필요 없고 옆에 있으면서 일상을 나누는 자식이 최고라는데, 그렇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신을 갈아 넣어 기른,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보물 같다던 그 딸들은 파랑새처럼 각자의 꿈을 찾아 날아가버리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홀로 남아 자신의 노년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U 할머니의 케이스는 고난도 통증 조절 케이스로 나중에 케이스 스터디에도 올랐다. 글쎄, 까다로웠던 것이 할머니의 통증이었는지 가족의 기대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우리 과에서 별로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케이스가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V 씨의 그 까다로운 요구들이 나한테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 안에는 태평양 건너에 있는 우리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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