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카지노 쿠폰록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부터 해서 넷플릭스와 활발히 협업하여 작품을 내놓고 있는 연상호 감독이 넷플릭스와 함께로는 처음 만든 장편 영화인 <계시록은, 뜻밖에도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로마 등의 걸작을 내놓은 명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총괄제작자)를 맡아 눈길을 끌기도 한 영화입니다. 동시에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을 통해 실사영화 영역으로 넘어온 후 처음으로 판타지나 SF가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만든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옥]과 비슷하게 최규석 작가와 함께 만든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연상호 감독이 흥행감독이 되기 전 가장 하드한 이야기를 만들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사이비 시절을 다크 드라마로 그의 작품을 오랜 시간 지켜봐 온 팬이라면 무척 반가울 즐거움과 동시에 신선하고도 생생한 충격 또한 느낄 영화입니다.
경기도 작은 도시에서 목사 성민찬(류준열)은 개척의 사명을 받아 작은 교회를 운영중입니다. 자그마한 개척교회다 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다 싶으면 일단 신도 등록부부터 들이밀 만큼 신도 확보에 여념이 없는 한편, 절대자에 의지하는 신도들에게 믿음을 설파하기도 모자란 시기에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시끄럽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교회로 낯선 남자가 찾아옵니다. 권양래(신민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남자에게 민찬은 역시나 새로 신도를 맞이한다는 마음으로 상냥하게 대하지만, 이내 그가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때마침 민찬의 아들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민찬은 높은 확률로 양래가 범인일 거라 믿으며 그를 추적하는 가운데 눈을 의심케 하는 어떤 '카지노 쿠폰'와 같은 순간과 대면하며 자신의 행보에 더욱 힘을 싣게 됩니다. 한편 끔찍한 범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여동생 연주(한지현)에 대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형사 이연희(신현빈)는 속죄의 마음으로 혹은 앙갚음의 마음으로 강력계에 자원합니다. 그런 가운데 민찬의 교회에 다니는 한 소녀가 실종되고, 연희는 그 용의자로 유력한 양래와 그와 불편하게 얽혀 있는 듯한 민찬을 뒤쫓습니다. 신앙인지 욕망인지, 각기 다른 형태의 카지노 쿠폰를 따르는 두 사람과 마치 그들을 시험하듯 그들 사이에 있는 한 사람. 과연 그들이 향하는 미래는 어디일까요.
연상호 감독이 흥행감독이 되고 확장된 세계관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내기도 하면서 그의 작품 속에 신파나 유머 요소가 적잖이 배가되기도 했지만, 사실 그전에 그가 만들던 작품들에는 이런 요소가 그야말로 0에 수렴했었습니다. <계시록은 오랜만에 감독이 앞서 언급한 '그전에 그가 만들던 작품'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진 영화라 무척 반갑습니다. 웃긴 장면은 단 한 군데도 없이, 감정에 섣불리 호소하려 하지 않고, 충분히 일어날 법한 현실의 이야기 안에서 인간의 심연을 치열하게 들여다 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언뜻 선악의 경계에 선 채 범죄 사건에 얽힌 자, 누가 봐도 범죄자인 자, 그리고 트라우마 속에 그들을 뒤쫓는 자를 대치시킨 추리 스릴러 같아 보입니다. 사건의 범인이 누구고 진실이 무엇인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화는 그 중심에 믿음을 둘러싼 종교적 테마에다가 목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까지 하면서 어느덧 사건의 진상은 중요하지 않게 되는 다층적인 화두를 던집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계를 돌파하는 동력으로 이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믿음을 선택하는 주인공을 그림으로써, 인간에게서 필연적으로 자라나는 믿음을 둘러싼 욕망을 묻는 것이죠. 이런 질문이 의심이 필수불가결 요소일 수 밖에 없는 추리극,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더 큰 교회를 맡을 수 있게 해달라거나 실종된 아이가 돌아오게 해달라며 기도하는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 현실의 많은 사람들도 저마다가 바라는 것을 마음에 담아 기도합니다. 기도가 일종의 상호작용이라 내가 간절히 담아 보내는 마음에 절대자가 응답할 것처럼 말이죠. 그래도 어쨌든 선택이든 결심이든 실행이든 그 키를 쥔 것은 인간일진대, 이 지점에서 영화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앞으로 할, 혹은 지금 하고 있는, 혹은 과거에 했던 선택에 관한 어떤 계시를 만난다면 그것에 의지할 것인지. 설령 그것이 나를 어두운 길로 인도한다 해도 따를 것인지를 묻는 것이죠. 영화 속에서 계시는 꼭 절대자만이 아니라, 가슴 깊이 죄책감을 남긴 존재가 마치 환영처럼 나타나 전하기도 합니다. 없는 환영을 만들어내고, 실제로 일어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현상을 자기 뜻대로 해석해서 도출되는 '계시'와 달리, 그 '계시'를 따라 이루어지는 인물들의 행동은 인과가 명확합니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고 결행한 것인데, 그것에 신의 계시이니 죄책감의 발로이니 하는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해설로서 가져다 붙이는 느낌이랄까요. 현실의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기까지 수많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에도 하나의 신호로부터 그 사건과 현상의 기원을 찾고, 거기에 집착적으로 매달리며 이윽고는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그에 대한 계시를 찾으려 하는데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우리가 흔히 운명이나 계시라고 일컫는 것이 하는 것이 어쩌면 알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뒤얽혀 굴러가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를 옭아매는 과거와 놓여진 현실, 나아가려는 미래를 합리화하려는 수단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저마다 강렬한 활약을 펼치는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가 던지는 이 화두에 힘을 싣습니다. 도덕의 경계를 넘보는 사건 앞에서 믿음의 시험에 드는 목사 성민찬 역의 류준열 배우는 근래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소도시 개척교회 목사로서의 소탈한 모습부터 개인사로 인해 말못할 번뇌로 끙끙 앓는 모습, 나락으로 가든 새로운 레벨로 가든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사건 앞에서 광기 어린 믿음으로 눈이 돌아가는 모습, 그 믿음의 끈을 끝까지 놓을 수 없어 더욱 독하게 매달리는 광인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라데이션을 보이는 인물의 역동적인 변화를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감 있게 그려냅니다. 한편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치열하게 현재를 추적하는 형사 이연희 역의 신현빈 배우 또한 만족스런 연기 변신을 보여줍니다. 과거 너무나 큰 비극을 겪었기에 감정이 모두 휘발된 듯 건조한 모습의 인물이, 트라우마가 당기려는 방아쇠에 흔들리다 점차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절제된 연기로 그려냅니다. 더불어 사건의 중심에 선 '누가 봐도 범인' 비주얼의 인물 권양래 역을 맡은 신민재 배우는 이 영화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델타 보이즈, <튼튼이의 모험 등 고봉수 감독의 코미디 영화들에서의 모습으로 익숙했던 이 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첫 등장부터 전혀 웃기지 않은 어둠을 잔뜩 머금은 인물로 나타나 보는 이를 긴장케 하더니 그저 고장났을 뿐인 자신의 본성에 그럴싸한 서사를 붙이려는 괴물의 비뚤어진 내면을 뒤로 갈수록 소름끼치게 드러내며 극을 휘어잡습니다.
이번 <계시록 뿐 아니라 연상호 감독은 여러 영화에서 종교 혹은 유사종교를 주요 소재로 삼아왔지만, 늘 전해 온 메시지는 비단 종교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믿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대개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힘이 되지만 때로 비극과 재앙으로 향해 가는 인간에게서 이성을 거두어 가기도 하죠. 그 불확실한 형체의 믿음에 인과가 확실한 우리의 인생을 걸 때, 우리의 인생은 때로 얼마나 위태로워질 수 있는지를 <계시록은 결말까지도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를 통해 의미심장하게 전합니다. 두뇌를 시험하는 스릴러인가 하고 보기 시작한 영화는, 결국은 두뇌가 아닌 마음을 시험하는 전개 속에 종교의 유무와 선악의 경계를 넘어 지켜보는 누구나를 이런 질문에 직면하게 합니다. 여러 작품을 관통하며 일관되게 지속되어 온 질문을 색다른 이야기와 강렬한 연기로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이 영화는 <부산행 이후 가장 만족스럽게 본 연상호 감독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