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슬기롭게 도망치기
11월 끝자락의 금요일. 부서 이동을 하고 처음으로 유급 휴가를 썼다. 사실 아무 날도 아닌 날이었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휴가니까 절대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이 떠졌다. 역시 습관이 무섭다(..)
느지막이 밖에 나갈 채비를 해본다. 오늘의 목적지는 카지노 게임와 우에노 그 사이 어디쯤.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라기엔 이미 구글 리뷰가 천 개가 넘는 곳이다. 전 부서 동료 추천으로 회사 사람들이랑 방문하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원래는 웨이팅이 긴데 평일 점심이라 그런지 내 앞에는 회사원으로 보이는 두 명뿐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계란의 비릿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찾아보니 효고현의 고급 계란을 쓰고 있다. 닭들은 건강한 사료를 섭취하도록 관리해서 계란의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우리나라가 마늘에 진심이면 일본은 계란에 진심이다.)닭도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아 속이 편안했다.
평소 술을 잘 즐기진 않지만 생맥주도 주문했다. 평일 낮에 마시는 맥주는 언제나 달콤하다. 저녁이나 주말에 마시는 술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직장인이 평일 낮에 술을 마실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 작은 일탈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다음 목적지는 카지노 게임 국립서양카지노 게임이다. 계속 보고 싶었던 모네 전시회를 가보기로 했다. 국립서양카지노 게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고, 우에노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그림에 관심 없는 분들이라도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하다.
평일인데도 사람 진짜 많더라..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역시 카지노 게임의 민족..(?) 티켓 구매줄이 꽤나 기니 아래 공식 사이트에서 인터넷 예매를 추천한다.
장소: 도쿄 국립서양카지노 게임
관람기간: 2024년 10월 5일~2025년 2월 11일
관람시간: 오전 9시 30분 ~ 오후 5시 30분 (금・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
관람료: 일반 2,300엔, 대학생 1,400엔, 고등학생 1,000엔, 중학생 이하 무료
감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음성 가이드는 650엔(현금, 카드 모두 가능)에 대여할 수 있다. 한국어 가이드도 제공한다. 작품을 보면서 드뷔시의 피아노곡을 함께 듣는 부분이 진짜 좋았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빛과 색의 변화, 자연 풍경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말년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 이번 모네전에서는 수련 연작과 일본풍 정원 그림 등을 포함해 총 67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세 번째 섹션 빼고는 사진 촬영이 불가했다.
부제가 '만년의 모네: 수련, 물의 풍경'인 만큼 모네가 수련에 한창 빠져있을 시기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사실 화사한 초기작의 수련이 더 내 스타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눈질환, 가족사, 세계대전의 풍파를 그림 속에 녹여낸 것이 인상 깊었다.
색깔의 구분이 어려울 만큼 백내장이 악화되면서 말년의 수련은 거의 초상화에 가깝다. 빛과 색, 아름다운 자연이 왜곡되어 보이니 말이다. 색과 형태가 뒤섞인 새로운 작품 스타일에서 모네의 강렬한 의지와 내면의 감정이 작품으로 표출되는 것 같았다. 화가에게 색상을 구분할 수 없는 건 정말 치명적인데,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그림을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은 전시였다.
내년에는 카지노 게임도 카지노 게임에서 고흐전을 한다고 하니 꼭 가봐야지. 개미지옥이 따로 없구만..
최근에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부서 이동을 한지 반년, 지금까지 전혀 해보지 않은 업무에 겸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해도 예상보다 적응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에 은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참이었다. 신규 사업부라 안 그래도 카지노 게임이 적은데, 내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민폐만 끼치는 느낌이 들어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컸다.
그러던 중에 겸무 부서에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저질렀고, 또 그 실수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뭐에 홀린 듯 더한 실수를 거듭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난달 야근은 40시간을 넘었고 일을 게을리한 것도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한 일이 실수 투성이었을 때 오는 자괴감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카지노 게임이 큰 실수를 하면 오히려 극도로 침착해진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나 혼자서 수습이 불가능한 문제라 다른 부서 분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주요 거래처들에게 한 실수여서 직속 상사는 물론 모든 관계자에게 몇 번이고 사과드리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게 며칠을 컴퓨터를 붙잡고 겨우 문제를 처리했는데, 그 순간 해결이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고 구토가 올라왔다. 극심한 강박 탓이었겠지.
도망가고 싶었다. 사실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의지가 약하고 끈기가 없는 카지노 게임이라고 몰아세우곤 했었다. 더욱이 낯선 곳에서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잘 살아내야 하는 해외살이니, 맞서서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내 모습이 좋아보일리가 없다. 그러던 중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다.
철로를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이 끊겨 있다. 더운 날과 추운 날, 철로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 때문에 틈을 만들어놓은 거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틈이 없는 카지노 게임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 아니 작은 변화에도 크게 휘청거리거나 무너질지 모른다. 철로의 틈처럼 우리에게도 작은 틈이 필요하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슬기롭게 도망치는 선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지노 게임에서 한 발자국 정도 떨어져서 어색한 곳과 익숙한 곳을 오가고, 낯선 나와 친숙한 나를 멀리서 또 가까이서 살피며 나만의 초점 찾기.
카지노 게임에서 도망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나를 전혀 다른 세상에 놓고 새로운 것들에 집중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내 카지노 게임을 사랑할 힘을 얻었다. 계절에 맞게 피었다가 다시 지는 꽃처럼, 인생도 꽃처럼 피어나고 또 지는 꽃처럼 힘든 시기도 있는 거겠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음에 괜시리 안도감을 느낀다. 이제 다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