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책을 읽을 땐 어느“시기“에 그 책을 읽었는지도 중요하다. 그러니깐 같은 영화라도 만약 내가 중학교 때 인터스텔라를 봤다면 나는 쉽게 과포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스텔라에서 묘사된 우주는 실제로 오랫동안 나에게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나는 헤르만헤세의 책을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두 권 읽어 봤다. 두 책에 대한 공통된 인상은 ”헤세의 책을 더 어렸을 때 읽었으면 좋았을 걸”이다. 아마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기에 읽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 헤세의 책들은 항상 청소년 필독서에 있나 보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장래가 촉망했던 똘똘한 아이 한스가 자신을 둘러싼 높은 기대에 압박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다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고전, 그리고 다른 나라 문학들을 읽다 보면 시대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데도 비슷한 구석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놀란다. 이 책을 보는 동안에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공부”가 그러했다. 한스는 공부를 잘한다. 그리고 한스가 공부하는 동안엔 집안에서 좋은 대접을 받는다. 마을에서도 한스는 좋은 평판과 대우를 받는다. 소설 속 한스가 스트라스부르크 시험장에 간 장면에선 심사관들은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호칭을 높이며 존댓말로 대한다. 마을에서 권위가 가장 높은 목사도 한스를 따로 불러다가 자기 시간을 들여 과외를 해준다.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스 스스로도 공부 잘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우월감을 갖는다. 그는 더 이상 같은 마을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놀지 않는다. 학교에 가는 일정도 다르다. 한스의 가장 큰 취미는 혼자 낚시하기다. 카지노 게임 추천 잘하는 한스에겐 마을은 너무 좁아 시시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장면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회에서 우리는 카지노 게임 추천 잘하는 사람에게 다정하다. 하지만 그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인류 진보에 기여하거나, 지역 사회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사실 공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스스로를 위한 행위다. 한스와 같이 수도원을 다니는 많은 학생들, 그뿐만 아니라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든 학생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카지노 게임 추천 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일 것이다. 만약 마을에, 그리고 지역 사회에 더 직접적으로 발전이 되는 일이라면 소설 후반에 나오는 대장장이들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주민들의 톱니바퀴를 만들고, 시계를 만들며 세탁기를 고친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나오는 대장장이에 대한 묘사는 조롱에 가깝다. 허풍쟁이에다. 술쟁이, 여색만 밝히는 사람들이 전부다. 그렇다고 시대가 바뀌었기에 지금은 다를까. 지금도 노동을 하는 사람들, 소위 블루 칼라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공부하는 학생보다 대장장이가 내 삶에 더 도움이 된다면, 존경할 필요는 없어도 낮춰볼 필요는 없지 않을텐데.
한스를 죽인 것은, 한스가 가진 비상한 머리에 대한 호의다. 시계를 잘 만드는 대장장이에게 “시계를 잘 만드네요” 정도의 칭찬과 같이, 카지노 게임 추천 잘 하는 학생에겐 “넌 카지노 게임 추천 잘 하는구나” 정도의 칭찬만 주어지면 된다. 한스가 더 이상 공부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성적이 떨어지자, 그에게 베풀어졌던 관심과 호의, 애정은 전부 사라졌다. 그와 함께 한스 스스로도 조금씩 메말라갔다. 물론 공부 그 자체가 온전한 범인일 수는 없다. 친구와의 삐걱거리던 관계, 혹은 상처 입은 어린 감수성도 공범이다. 하지만 그 모든 비극의 시작은 똑똑한 아이에 대한 환대였다. 조금은 카지노 게임 추천 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