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통화를 위한 어느 장교 후보생의 글쓰기
아직 뵙지 못한 페이스북 "친구" 한 분 덕에 어느 젊은 연구자와 그의 아버지가 나눈 효에 관한 짧은 감상을 읽었다. 그 아버지 성함을 보니 유명한 철학자이심을 대번에 알겠고, 아들 역시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듯 했다.
진솔한 이야기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한 가지 떠오른 기억이 있어 우선 그것만 기록해 본다.
때는 십년도 더 전 어느 봄날, 나는 진주에서 공군 장교 훈련을 받고 있었다. 군대는 무조건 일찍 다녀와야 한다는 수 많은 진심어린 충고를 뒤로 하고, 대학에 대학원까지 졸업 한 뒤 들어간 훈련단이었다. 여러모로 대단히 좋은 환경에서 훈련 받고 있음을 알았기에 그저 감사했고, 좋은 동기들을 만나서 흙바닥을 구르면서도 때때로 객담을 나누며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지냈지만, 훈련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무척 길었다.(16주?)
3월 30일 경에 기침이 심해 처음 의무대에 가서 약을 타 먹은 것 같은데, 5월 초에도 나는 여전히 콜록거리고 있었다. 몸도 몸이었지만, 한창 '정신의 삶'을 추구하다가 입대해서 그런지 생각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영 마뜩치 않았다. '생각하기'에 대해 논문을 쓴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달까. 물론 어떤 것이 부재함으로 인하여 그저 생각 밖에 할 수 없는 상황 역시 언짢은 일이었다. (모든 생각은 재현representation 이다.) 대표적인 예는 물론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인데, 그 중에서도 늘 붙어지내던 당시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이 강했다. 편지로만 소통하던 때의 얘기다.
그러던 중, 유별난 노안을 자랑하시던 사관교육대장의 발표가 있었다. 어버이 날을 맞아 "충효 글짓기" 대회를 연다는 것. 예기치 못한 대회에 솔깃했는데, 그건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서도, 내가 전통적인 충효의 신봉자여서도 아니라, 사관교육대장이 내건 우수작품에 대한 부상 때문무료 카지노 게임다.
바로 전화 통화 사용권!
1등과 2등(혹은 3등까지었는지도 모른다)에게 전화 통화를 하게 해준다는 희소식이었다. 물론 대회의 목적에 걸맞게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게 해준다는 것이었지만, 이미 나는 어떻게 하면 당시 여자친구에게도 전화통화 한 번 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기회는 일단 얻고 보는 것, 그리하여 내 생애 가장 "전략적"인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전략적"이었던 까닭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충효'론자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느 정치사상가들처럼 나 역시 전통과 관습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 일종의 직업이었다. 국가와 가족은 대표적으로 지배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는 곳이 아닌가?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사관교육대장을 비롯한 군 간부들이었고, 그리고 교육대장의 훈시에서 드러난 대회의 목적이 워낙 뚜렷했기 때문에, 주최측이 원하는 바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전략적인 글쓰기가 필요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연필과 백지 외에는 다른 참고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 인터넷 검색도 참고문헌 조사도 모두 불가능한 상황이니, 아는 한도 내에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야 했다. 제출자의 수는 200명이 넘고, 심사위원들은 전문가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간결하고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했다.
따스한 오월의 어느 주말, 대다수의 동기들이 컵라면 취식이라는 명을 받고 들뜬 마음으로 오열맞춰 팔을 흔들며 식당으로 행진하던 그 시각에, 여전히 기침으로 골골하던 나는 생활관에 남아 연필을 들었다. 장고를 거듭할 여유도 없으니 '충효'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감상에서부터 시작했다.
忠孝, 그것은 대표적인 유가의 덕목이 아닌가.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유학에 관한 한 결코 전문가라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또 문외한은 아니었다. 동양의 대표 전통 사상의 얼개는 얼추 익히고 있고, 논어든 맹자든 도덕경이든 나름대로 이해한 바에 따라 몇몇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해서, 생각했다. 정공법으로 가자. 효경이다!
신체발부 수지무료 카지노 게임 불감훼상 효지시야.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우리 몸은 겉과 속 털과 살갗 할 것 없이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무료 카지노 게임니 감히 훼상치 아니함이 효의 시작이라는 말. 어릴 적부터 외던 효경의 이 유명한 구절을 한자로 적고 나니, 글의 테마가 떠올랐다. 사실 이 표현은 이어지는 구절과 대구를 이루는데, 두 번째 구절은 비교적 덜 (혹은 선택적으로) 회자된다는 것을 착안한 무료 카지노 게임다.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무료 카지노 게임 효지종야.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입신양명"이라는 사자성어가 예서 나왔다. 효의 시작이 앞서 말한 바와 같다면 효의 끝은 나로 인해 부모가 드러나는 데 있다는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철학자께서도 조실부친하시고 장성하여 모친을 잘 부양하려고 할 때 허망하게 모친도 여의게 되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묻게 하리라! 도대체 내 부모가 누구인가를... '부모가 어떤 분들이기에 당신이 그토록 훌륭한가?'를 반드시 묻게 할 무료 카지노 게임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사셨다고 술회하셨는데, 그는 은연 중에 효경이 이 구절을 체화했다고 볼 수 있다.
내 주장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여기서 가장 주목을 덜 받는 네 글자, 혹은 두 글자에 주의를 기울였다. 후세에 이름을 알리고 그럼으로써 부모가 드러난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 효의 끝이라고 해도, 여기에는 커다란 전제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바로 立身行道.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하는 것. 우리가 효경의 뜻을 무리없이 받아 들인다고 해도, 입신과 행도 없이 후세에 알려지는 이름은 별 의미가 없다. 양명어후세와 이현무료 카지노 게임가 입신행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때, 그 이름은 애초에 단순한 명성이나 세간의 평판일 수 없다. 몸을 세우는 것, 그리고 도를 행하는 것, 이는 그 자체로도 어렵고 버거운 일생의 도전이거니와, 세상 사람들이 보통 쉽게 훌륭하다 평하는 모습과는 결이 다르다. 이름을 "후세"에 알린다고 한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을 지 모르겠다.
또 하나, 나의 입신행도는 내 부모조차도 당장 기꺼워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孝의 본질과 궁극적 지향이 부모를 즉각적으로 만족케 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孝는 곧 삶의 원리 문제가 된다. 신체발부를 불감훼상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 내 삶의 근본 지침 문제이듯, 입신행도 함도 역시 순간의 필요와 욕망, 직접적인 만족과 기쁨 차원을 넘는 삶의 원리의 문제인 무료 카지노 게임다. 여기서 내 부모는 孝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지언정 궁극적인 어디언스는 아니다.
대략 이런 생각에 기초해 이런 저런 주장을 붙여서 제출했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교훈을 얻었기에 결과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시간...무료 카지노 게임다고 말하기에는 당시 나는 목적 의식이 아주 뚜렷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며칠을 보내고 난 어느날, 교육대장은 내가 낸 글을 2등작으로 발표했다!
그리하여 얻게 된 전화통화 사용권, 이제 무료 카지노 게임자는 웁니다를 세 번 복창하고 당시 여자 친구에게만 전화를 해야 하나 했지만, 천운과 기지로 말미암아 집에도 전화 한 통 넣을 수 있었다. 군 훈련 중 있었던 여러 일 중, 한 편의 아름다운 해피엔딩 스토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