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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DAE 기대 Apr 21. 2025

엄마를 행복하게 해준 모나리자

졸업식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다. 나도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 이었다. 유로스타를 타는 것도 처음 이었다. 유로스타는 내가 석사 공부를 하게 될 학교가있는 'King's Cross'역에 있었다. 엄마와 함께 아침 일찍 부터 'King's Cross'역으로 향했다. 유로스타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것 보다 훨씬 편했다. 비행기를 탈 때와 마찬가지로 여권이 필요하지만, 엄마와 나를 몇시간 만에 프랑스 파리의 중심부로 대려다 주었다. 대부분의 공항이 도시 외곽에 위치하여 공항으로 이동 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소비 되는 것과 비교 했을 때 훨씬 편리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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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ing.com'으로 예약한 호텔로 곧장 향했다. 엄마와 나는 파리에서 5일 니스에서 2일을 머무를 예정 이었다. 엄마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은 에펠탑과 모나리자였다. 에펠탑은 파리의 어느 곳이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서는 '르브루 박물관'에 입장 해야했다. 'booking.com'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메일로 여러 관광 코스를 할인 받거나 줄을 서지 않고 프리패스하는 프로모션을 이용 할 수 있었다. '르브루 박물관'도 프리패스로 입장 할 수 있었다.



르부르박물관 안의 카페


르부르 박물관 중앙에 있는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피라미드식 건축물을 직접보니 신기했다. 중앙에 있는 피라미드식 건축물이 지하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더 많은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지하에 공간을 만들고 피라미드식 입구를 중앙에 만들어 사방으로 쉽게 오갈 수 있게 설계 했다고 한다. 날씨가 좋아 피라미드에 빛춰진 하늘이 아름답게 보였다.



르부르박물관 안에서 본 피라미드


모나리자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앞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가 왜 유명해 졌는지 나중에야 알았다. 박물관의 청소부가 모나리자를 훔쳐갔는데 찾기위해 이 도난 사건을 신문에 대서특필 해서 유명해 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뚫고 엄마와 모나리자 앞에섰다. 작은 모나리자는 두꺼운 유리안에 있었다. 엄마는 모나리자를 보며 즐거워 했고 나는 엄마와 모나리자를 함께 사진찍어 주었다. 엄마의 작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모나리자


오랑주리 미술관도 프리패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네가 직접 만든 정원을 그린수련 연작은 시간대 별로 다른 색감을 사용해 구분 할 수 있었다. 파노라마 처럼 길게 늘어선 그림은 정적인 관람이 아닌 걸으며 그림을 느끼게 만들었다.


오랑주리 미술관 - 모네, 수련 연작


점심을 먹기 위해 나폴레옹이 외상값 대신해 모자를 맞겼다는 식당에 방문했다. 정말로 있던 일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식당의 컨셉인지 알수는 없지만 식당의 입구에는 나폴레옹이 맞겼다는 모자가 전시되어 있었다. 식당에서 먹는 맥주는 꿀맛이었다. 처음에 맥주잔의 이가 나가 있었다. 나는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그냥 먹자고 했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영어를 못 함에도 불구하고 손짓으로 웨이터에게 컴플래인을 했다. 웨이터는 아주 친절하게 맥주를 새잔으로 다시 서빙해 주었다.


나폴레옹이 외상대신 맞겨 노았다는 모자
해산물, 에스까르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식당에서 주문한 해산물에 불만족 스러워 했다. 한국에서는 여기 보다 훨씬 싼 가격에 더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에서 처음 접해본 에스까르고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몽마르트 언덕


몽마르트 언덕을 방문했을 때에는 후회 되는 일이 많았다. 몽마르트 언덕까지 가는 가파른 길을 오를 때 엄마가 다리가 아플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몽마르트 언덕의 화가들에게 엄마는 초상화를 의뢰하고 싶어 했는데 내가 하지 말자고 한것이다. 몽마르트언덕에 도착 하니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화가들 또한 많았다. 화가들은 각자의 개성이 확연하게 들어나있는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었다.그 옛날 부터 예술가들의 성지가 지금까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거처 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엄마와 나는 노상 의자와 테이블을 펼쳐노은 한 카페에 않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몽마르트 언덕까지 오르느라 힘들었던 몸을 추수렸다. 아직도 엄마와 술한잔을 하면 그 때 엄마 초상화를 그릴껄 하며 후회 한다고 엄마에게 말하곤 한다.



다음으로 엄마와 세느강을 떠나니며 관광을 할 수 있는 유람선에 탑승했다. 이것도 'booking.com'의 여행 상품 중 하나인데 유람선과 샴폐인이 셋트로 되어 있어서 유람선을 타고 관광을 즐기면서 삼폐인도 함께 마실수 있었다.


세느강

유람선을 타고 관광 했던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등 파리의 풍경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리고 개선문으로 오후의 일정을마무리 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버스에서 바라본 개선문
개선문


파리의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던 우리느 동네 슈퍼에서 술과 과일 등 여러 주전부리를 사서 에펠탑 앞에 있는 잔디 밭으로 갔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선선한 파리의 날씨를 잔디 밭에서 즐기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가족들과 여행을 온사람들이 노래를 틀어 놓고 있었다. 엄마는그들과 친해져서춤까지 함께 추었다. 에펠탑은 일정 시간이 되면 크리스마스트리 같이 반짝거렸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파리의 밤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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