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품은 거울이』(2019) 수록작
“어머니, 저도 카지노 쿠폰가 될 수 있어요?”
조개가 바다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카지노 쿠폰라니, 갑자기 무슨?”
바다가 조개에게 되물었습니다.
“카지노 쿠폰요, 성스럽고 아름다운 존재.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조개가 카지노 쿠폰라는 말을 알게 된 건 며칠 전이었습니다. 산호초와 해파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은 것입니다.
“저 땅 위에 사는 인간들 중에는 카지노 쿠폰가 있지.”
나이 많은 산호초가 말했습니다.
“카지노 쿠폰요? 그게 뭔데요?”
어린 해파리가 물었습니다. 조개도 산호초의 다음 말에 귀를 세웠습니다.
“카지노 쿠폰는 자기보다 큰 존재에게 스스로를 바친 사람이야. 그래서 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한 거지.”
순간 조개의 가슴이 뛰었습니다. 카지노 쿠폰, 그것이 되고 싶었습니다. 자기도 성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고 못난 조개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조개는 말도 못하고 마음속에 ‘성자’를 품은 채 끙끙 앓았습니다. 밤낮을 그러다 보니 속병이 날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 되었습니다. 조개에겐 바다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자애로운 바다 어머니에겐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지혜로운 바다 어머니라면 성자가 되는 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개는 용기를 낸 것입니다.
조개는 숨죽인 채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바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 조개의 물음에 진실하고 현명한 답을 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조개는 초조해졌습니다. 질문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긴, 나 같은 미물이 카지노 쿠폰는 무슨…….’
조개는 부끄러워 몸을 꾹 다물었습니다. 괜한 말을 꺼낸 것이 스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조개야.”
이윽고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넌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지?”
바다 어머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원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어.”
“정말이에요? 저도 카지노 쿠폰가 될 수 있어요?”
“그럼.”
바다 어머니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조개의 여린 속살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성자가 될 수 있답니다, 자기처럼 보잘것없는 존재도.
드물지만 카지노 쿠폰가 된 조개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카지노 쿠폰의 보석’을 가진 조개들이랍니다.
“카지노 쿠폰의 보석이요? 그게 뭔데요?”
“세상에서 가장 참된 구슬이지. 너 같은 조개만이 만들 수 있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란다.”
순간, 조개의 마음 한가득 환한 빛이 차올랐습니다. 자기도 그 구슬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보석을 얻어 카지노 쿠폰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카지노 쿠폰의 보석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먼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주신 기회랍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피하지 말고 시련을 견뎌야 한답니다.
“어떤 시련이요?”
조개가 바다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악마의 씨앗을 품는 거야.”
“네?”
“먼저 그 씨앗을 네 가슴에 심어야 해. 카지노 쿠폰의 보석을 얻으려면.”
조개는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악마의 씨앗에 대해서는 조개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몸에 들어오면 엄청난 고통을 일으키는 독이며 이물질이었습니다. 그것이 몸에 박힌 조개들은 대부분 아픔을 참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 끔찍한 병균이 보석을 얻기 위한 조건이라니.
“무서워요.”
조개는 몸을 꽉 오므렸습니다. 바다 어머니가 다시 온몸으로 말했습니다.
“두려움과 아픔을 이겨내야 해. 너에게 주어진 기회를 붙잡고, 죽음까지 넘어서야 비로소 카지노 쿠폰가 되는 거란다.”
조개는 더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악마의 씨앗이라니. 그런 무서운 독을 몸에 심을 수는 없었습니다. 카지노 쿠폰가 되자고 목숨까지 걸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평화로운 나날이 흘렀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것도 흘러들지 않았습니다. 조개의 가슴속엔 여전히 카지노 쿠폰라는 말이 별처럼 박혀 있었지만, 그 별은 저 높은 하늘에나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물 속에 사는 조개 따위는 닿지도, 다가가지도 못할 곳에.
가끔 꿈을 꾸긴 했습니다. 카지노 쿠폰를 만난 꿈 말입니다. 카지노 쿠폰는 은은한 빛을 내는 하얀 구슬을 안고 있었습니다. 구슬은 몹시 보배롭고 신비로워 보였습니다. 조개는 그 구슬이 탐났습니다. 그것을 만지려고 카지노 쿠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카지노 쿠폰는 사라지고 구슬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조개는 감탄하며 구슬을 바라봤습니다. 구슬의 중심부에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조개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왠지 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구슬을 카지노 쿠폰의 보석이라 부르는구나.’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조개는 속살이 아려 왔습니다. 가슴속 별이 꿈틀꿈틀 살아나 살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카지노 쿠폰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걸까.’
조개는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카지노 쿠폰가 되려면 보석을 가져야 하고, 보석을 가지려면 죽음을 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조개가 잠시 졸고 있을 때였습니다. 조개는 또 꿈을 꾸었습니다. 모래알, 껍질 조각, 쓰레기, 죽은 벌레 같은 불순물들이 자기에게 마구 몰려드는 꿈이었습니다. 조개는 진저리치며 도망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불순물 중 하나가 조개의 속을 쿡 찔렀습니다.
“앗 따가워!”
조개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고통이었습니다. 조개의 여리디여린 속살 한가운데, 검고 딱딱한 이물질이 콱 박혀 있었습니다.
‘악마다!’
조개는 즉각 알아챘습니다.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드디어 죽음의 씨앗을 만난 것입니다.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일까요, 하늘이 내린 저주일까요.
“너 뭐야!”
조개가 소리쳤습니다. 몸속에 들어온 침입자에게 말을 하려면 안을 향해 소리 내야 합니다. 밖으로 말을 던지던 평소와는 반대로 말이죠.
“크르릉.”
악마는 이상한 소리를 냈습니다. 조개는 속살이 따갑고 쓰라렸습니다. 악마의 독기 때문이었습니다.
“나가! 당장 나가!”
조개는 몸서리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갈 수 없어.”
악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뭐야? 그럼 아프게 하지 마. 가만있으란 말이야!”
“난 가만있는 거야.”
악마가 그르렁거리며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 그렇게 독을 뿜어내면서!”
“독이라니? 난 그냥 있는 거야.”
악마는 태연하게 덧붙였습니다.
“이게 그냥 나야.”
그랬습니다. 악마는 생긴 그대로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악마가 아닐 것입니다.
“나는 네 몸에 박히기 위해 태어난 거야. 난 이 부드러운 속살이 좋아.”
악마는 흐흐흐, 하며 더 심한 독기를 내뿜었습니다. 조개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몸속 깊이 파고든 이물질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었습니다.
“으으, 제발…….”
어떤 말도 소용없었습니다. 악마가 스스로 빠져나올 리는 없었고 그 불순물이 몸속에 있는 한 조개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었습니다.
아픔은 더해만 갔습니다. 조개는 온몸이 욱신거리고 열이 올랐습니다. 맹독에 속살이 타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이 악마가 나를 죽일 거야.’
조개는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카지노 쿠폰의 보석도 이젠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카지노 쿠폰라니, 조개 주제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악마를 내보낼 수도 없고, 아픔을 멈출 수도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싸워나 보자. 가만히 있어도 죽는 건 마찬가지야.’
조개는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리고 자기 안의 적에게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으아아.”
조개는 비명을 토하며 적을 힘껏 껴안았습니다. 고통스런 이물감과 독기를 녹이기 위해 온 힘을 짜내었습니다.
“으아아.”
악마도 비명을 질렀습니다. 조개의 속살을 녹이려는 듯 지독한 독으로 조개를 공격했습니다.
조개는 죽도록 힘겨웠지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몸의 일부가 얇은 막이 되어 흘러나왔습니다. 조개는 그 막으로 몸속의 고통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한 층, 또 한 층……. 혼신의 생명력을 끌어모아 제 안의 죽음을 덮고, 또 덮었습니다.
악마는 점점 더 조개의 깊은 몸속으로 내려갔습니다. 아픔과 이물감은 시나브로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조개는 끝까지 온 힘을 쏟았습니다. 수천 겹의 자신으로 제 안의 것을 층층이 감싸 안았습니다. 하루, 또 하루,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날들과 나날들을…….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요.
조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아프기는커녕 속이 뿌듯하게 차올랐습니다. 조개는 알아차렸습니다. 자기에게 심장이 생겼다는 것을.
그 심장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보배, 바로 참된 구슬이었습니다.
조개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찬란한 기쁨의 색을 가진 눈물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카지노 쿠폰가 된 거야?’
조개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꿈만 같았지만 꿈이 아니었습니다. 카지노 쿠폰의 증표인 참된 구슬을 얻었으니 이제 자신은 카지노 쿠폰였습니다. 작고 못난 조개가 비로소 성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로 변신한 것입니다.
조개는 바다 어머니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기가 해냈다고. 두려움과 아픔을 이겨냈다고.
그런데 그때, 조개의 마음속에서 오래된 음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바다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죽음까지 넘어서야 비로소 카지노 쿠폰가 되는 거란다.’
조개는 주춤 몸을 움츠렸습니다. 언젠가 산호초가 했던 말도 떠올랐습니다.
‘카지노 쿠폰는 자기보다 큰 존재에게 스스로를 바친 사람이야.’
조개의 부푼 가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빈 가슴속으로 다른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내가 진짜 카지노 쿠폰일까? 죽음을 넘어선 것일까? 큰 존재에게 나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개는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자신은 분명 참된 구슬을 안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카지노 쿠폰의 자격을 얻었다 하기엔 어딘지 떳떳지 못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악마가 떠올랐습니다. 그 지독한 적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 악마.”
조개는 안으로 말을 던지며 악마를 불렀습니다.
“야, 대답해 봐.”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악마의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울퉁불퉁한 이물질이 있던 자리는 온통 비단같이 고운 구슬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조개는 자기 안을 찬찬히 살폈습니다. 소중한 구슬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악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조개를 그토록 괴롭혔던 악당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조개의 눈물이 또 흘러나오는 건. 그런데 눈물의 색깔이 아까와는 달랐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슬픔도 아니었습니다. 조개는 스스로도 왜 우는지 몰랐습니다. 낯선 눈물의 빛깔에 당혹해하고 있을 뿐.
얼마를 그러고 있었습니다. 별안간 구슬이 꿈틀, 몸을 틀었습니다. 조개도 움찔, 몸을 움츠렸습니다. 순간, 조개는 알게 되었습니다. 미지의 눈물빛의 의미를.
구슬은 몸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 몸속에 검은 씨앗이 심어져 있다고. 그것이 자기 마음의 중심이라고. 조개의 심장인 구슬의 심장은 바로 그 씨앗이라고.
조개는 가슴 깊은 곳이 아려 왔습니다. 가만히 제 심장 속 심장을 느껴 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악마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그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 일을 해냈다는 것을.
악마는 기꺼이 포기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더 큰 것을 위해 몸을 바친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까지 넘어선 순수한 희생이었습니다. 더없이 성스럽고 아름다운 헌신이었습니다.
심장 속에서 발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조개는 적의 이름을 부르며 저의 심장을 꼭 안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참된 구슬이었습니다. 악마의 죽음이 낳은 목숨만큼 귀한 보배였습니다. 아둔한 미물을 일깨운 위대한 카지노 쿠폰의 보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