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다
올해의 마지막 달, 마지막 월요일이었다. 작업실에 올 사람이라고는 연을 만들러 오는 수 외에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점심때가 지나고 석양이 비스듬할 때까지 수는 오지 않았다. 오늘은 안 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이 열렸다.
“이렇게 생겼구나.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어서요.”
중후한 몸매에 푸근한 인상을 한 여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밍이 함께 왔지만 밍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밍조차도 너무 오랜만에 보는데 처음 보는 저 여자는 누구일까.
“아마 다는 못 오고 두 명 정도나 올 것 같네요.”
밍이 나는 보지 않고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들여다봤다. 누가 또 오는 모양이었다.
“굳이 뭐 다 모이실 필요도 없는데. 미술 선생님이 남편 후배이고 또 막역한 사이라고 해서 연락을 드렸을 뿐인데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그녀는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이었다. 밍의 선배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수는 저렇게 생긴 부인과 살고 있었구나. 나의 상상과 달리 성형외과 의사라는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은 수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네에서 흔히 보는 중년 여인이었다. 그나저나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이 웬일일까 갑자기 걱정이 몰려왔다.
“그래도 수 선배와 삼십 년을 함께 한 지기들인데 사모님한테 직접 얘길 듣는 게 맞다 싶었어요. 이왕이면 수 선배가 와서 설명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밍이 일어나 전기난로의 스위치를 넣었다. 석 줄밖에 안 되는 니크롬선 열관이 바로 빨갛게 달궈지며 보기만 해도 따뜻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정작 작업실을 데우기엔 턱없이 적은 열에너지였지만.
두 사람은 전기난로를 마주하고 앉아 열을 내고 있는 붉은 철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느끼기에 분위기는 어색했고 별로 좋은 이야기가 오갈 것 같지 않아 불안했다. 무엇보다 이천십팔 년 전시회 이후 몇 년 만에 나타난 밍의 존재가 그 불안을 가중시켰다.
잠시 후, 수의 부인은 난로에서 눈을 떼고 일어나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벽 한쪽에 걸린 수의 그림 한 점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고 한참을 시선을 고정한 채 서 있었다.
“저거 하나뿐인가요? 그이 그림 남은 게?”
수의 부인이 시선으로 가리킨 그림을 밍이 돌아보곤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도 잘 몰라요. 너무 오랜만에 와서. 여길 떠났거든요.”
밍이 대답하는 사이에 율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리고 젠이 함께 들어왔다. 그들에게 묻어온 바깥의 찬바람 냄새가 신선했다. 율과 젠은 작업실에 들어오자마자 잠깐 멈칫했다. 밍의 출현은 예고된 것이었지만 생각지 않은 방문객 때문이었다.
“수 선배 사모님이시고, 이쪽은 작업실 동료들입니다. 일부러 꼭 오라고 불렀습니다. 젠이고 율이죠.”
누구냐고 물을 사이도 없이 밍은 단숨에 소개를 끝내고 자리를 정돈해 앉혔다.
“남편에게 얘기는 들었는데 와 보긴 처음이네요. 그냥 모여서 그림 그리는 데라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전시를 열 번이나 하셨군요.”
작업실 한쪽 벽에는 각 전시회의 팸플릿이 연도별로 붙어 있었다. 싱의 노력으로 자료가 다 모아졌던 것이다.수는 아내에게 한 번의 전시회도 알리지 않았단 얘기일까. 그렇기도 한 것이 나도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을 본 것이 오늘 처음이었으니까.
“수 오빠에게 무슨 일인가요?”
율이 입술에 마른침을 축이며 물었다. 마치 죽은 사람에 관한 것을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장해 보였다. 다만 옆에 앉은 젠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 말 없이. 어떤 궁금증도 없는 듯이.
젠의 입장에서는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이 초면은 아니었다. 일전에 쌍꺼풀이 풀려서 방문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이 출현한 것은 굉장히 뜻밖의 일이었을 텐데 무덤덤한 것 같았다. 하긴 그것이 젠의 특징이며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율이 커피를 만들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커피도 떨어졌네. 율의 탄식소리가 나더니 티를 준비하겠다고 해서 젠은 아무거나 하라고 했다.
“녹차인데 다 다른 향이니 알아서 골라가세요.”
각각의 컵을 들고 의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로 차향이 맴돌았다.
“사실 수 선배 사모님한테 연락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어. 수 선배가 나에게 연락하라고 할 리는 없고, 사모님이 날 수소문한 것 같아. 가까이 지낸 걸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결론은 수 선배가 떠났다는 거야.”
밍의 말은 문법적으로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맥락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도 국일이 있었다면 기승전결로 좀 알아듣게 얘기하라고 잔소리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수 오빠가 떠났다? 어디로? 왜? 언제?”
율이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연거푸 물었다. 그녀의 티백 꼬리에는 동백꽃향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걸 들어보자고 밍이 사모님을 모시고 온 거 아닌가. 율, 침착해.”
젠이 자신의 티백을 끄집어 접시에 내놓으며 느리게 얘기했다. 그녀의 티는 유자향이었다.
서두르며 묻는 율이나 느리기 한없는 젠이나 밍이나 수의 아내에게는 다 같은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함께 그림을 그리며 지냈던 무리들.
“전혀 짐작을 못하셨던 것 같네요. 저는 혹시 어떤 단서라도 얻을까 해서 왔는데.”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이 힘이 다 빠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밍이 뭐 아는 게 있는 거야? 말 좀 해 봐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네. 지난달에도 수 오빠는 아무렇지 않게 연 만들다 가셨는데. 내가 봤어요. 월요일에 연 만들러 오신 거.”
율의 표정이나 말투는 너무나 상심한 것 같았다. 요즘 율이 많이 외로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상처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도 갑자기 슬퍼지고 쓸쓸해졌다.
“아니, 제가 말씀드릴게요. 남편이 그림을 그리는 걸 저도 알고 있었고, 그게 사막이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죠. 이스라엘의 사막을 저도 같이 갔었거든요. 그때 남편에게 어떤 각성이 일어났는지 눈치챘어야 했는데 놓친 것 같아요. 그냥 평범했어요. 아이들과 연을 만들어서 날리는 좋은 아빠였고, 병원일로 바쁜 저를 도와 살림도 잘 도와준 자상한 사람이었어요. 건강이 안 좋아서 여러 번 고생은 했지만 그때마다 잘 이겨줬고요. 그런데 중년 이후 멍하니 있는 것을 가끔 보곤 했죠. 남자들도 겪는 갱년기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고요. 그렇게 일상이 흘렀는데 며칠 전 저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더라고요. 자기를 떠나게 해 달라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은 갑자기 격해져서 급기야 눈물을 보였다. 밍이 티슈를 끌어다가 옆에 놓았지만 손대지 않았다.
너무 무겁고 침울한 공기가 짓누르고 있어서 사람들이 숨 쉬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겨울의 짧은 해는 벌써 땅거미를 만들고 현관문 밖 사람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왜 이렇게 무겁고 힘겨울까 시계인 나조차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해가 지고 있구나.
“이유를 물었죠. 이해가 되면 붙잡지 않겠다고.”
잠시 후에 어렵게 이어진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젠이 대신 크음 하고 목을 푸는 소리를 냈다.
“남편은 나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다고 했어요. 다만 그동안의 결혼생활에 대해 감사했고 아이들과 제게 고마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젠 아이들도 다 장성했으니 한 시름 덜고 떠난다고. 혹시 이 땅에서 다시 만날 날이 없다 하더라도 천국에서 보자고 했어요. 일단은 튀르키예로 가는데 그다음 일정은 아직 모르겠다고.”
일동 침묵. 공기의 흐름조차 멎은 것 같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율이었다.
“도대체 왜들 그래요? 국가도 엉망이고, 작업실도 엉망이네. 떠나긴 왜 떠나? 어디로 간들 뭐가 달라지나?”
흥분하며 혼자 질문하는 율을 젠이 멍하니 바라봤다.
“수 선배 건강은 어때요? 혹시 많이 안 좋은 것은 아닌가요?”
밍의 질문은 건조했다. 늘 그렇듯.
“안 좋죠. 그래서 말렸던 거예요. 찾지 않을 테니 국내에 머무는 게 어떠냐고 했죠. 제주에 집도 있고, 설악에도 있거든요. 그래야 아프면 바로 병원으로 갈 것 아니냐고 했죠.”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수는 왜 부인을 저런 상태로 만들어놓고 가야 했을까.
“그래도 짐작 가는 데가 있지 않아요? 남편인데.”
젠이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 보인은 눈을 살포시 감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고향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몇 년 전부터...... 그런데 그 사람 고향이 서울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태어난 곳인 용산에 가고 싶다는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밍이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 어깨를 감싸 안았다. 처음 보는 밍의 따스한 태도에 사람들의 표정이 잠깐 당혹스러웠다.
“일단은 튀르키예라고 하셨다면 그다음 일정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혹시 튀르키예와 관계된 어떤 기억이 없나요?”
여전히 밍의 질문은 건조했다. 그러나 정확하고 진지했다.
“튀르키예도 같이 다녀왔어요. 성지 순례였는데 일정이 끝나고 나서 카파도키아를 걸어서 다녔어요. 그곳은 험지라서 풍선을 타고 하는 여행이 일반적인데 굳이 조금이라도 걸어보고 싶다고 해서요. 사막을 그린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남편이 그런 황량한 자연환경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던 일이에요.”
밍은 고개를 끄덕였고 젠도 그런 밍을 말없이 바라보곤 고개를 숙였다.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선이 생각났다. 강목무료 카지노 게임 동생이며 은혜의 엄마인 미선. 몽골어로 미셀이라고 발음한다는. ‘웃음’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이름 미선. 왜 그랬을까. 왜 미선은 홀연히 사라졌을까. 그리고 수는 왜 사라지고 있는가.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떠나는 이들과 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깊이는 비교할 수 없이 남은 자들의 것이 컸다. 나는 지금 남은 자로 있는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을 보고 있는 것이다.
“너무 나빠요. 무책임하다고요. 수 오빠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뭔가를 눈치챈 율이 소리치자 밍이 눈빛으로 제압했다. 가만있어 율.
“굳이 찾아보자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게 과연 남편에게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은 어느 정도 수습이 된 것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붉어진 눈가가 어찌나 안쓰럽던지.
인간의 눈물은 내가 차마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눈물을 뿌리게 하는 아픔을 주고받는가. 수는 어디서 이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는 수는 그렇게 모진 사람도, 이기적인 사람도 아니었건만.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연락은 하실 거예요. 아마 자리 잡히면. 수 선배가 모진 사람은 아니잖아요.”
밍이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을 토닥이며 잔잔하게 말했다. 이 말이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을 위로할 수 있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수 오빠가 겪었던 아픔이 있어요. 수 오빠 그림으로 인해 자신의 고향을 찾아간 어떤 사람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때 많이 괴로워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아픔을 사모님한테 주진 않을 거예요. 좀 기다려보죠. 저희도 함께 기다릴게요.”
젠의 느린 말이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에게 스며든 듯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은 차츰 회복되었다.
“고마워요. 제가 오길 잘했네요. 남편이 어디에 있는 게 중요하진 않았어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가 저를 힘들게 했거든요. 알았어요. 기다려야죠. 네.”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은 수긍하는 태도로 말을 하긴 했지만 그 마음의 힘듦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모두를 슬프게 만들었다.
“이번 설에는 수 오빠가 만들어준 연을 날려야겠어요.”
젠의 말에 율도고개를 끄덕였다.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은 한 번 환하게 웃긴 했으나 다시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갔다. 밍과 함께.
결국 모두 돌아가고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 부인과 밍이 나가던 뒷모습이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
수. 당신은 어디로 사라지고 있나요.
외로운 이들끼리 왜 더 외로워지는 선택을 하나요. 인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