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
지난주 금요일, 꽤 오래 알고 지내는 김성환 카지노 가입 쿠폰와 점심 식사를 했다. 부산 사직동에서 운영 중인 독서교육 학원에 들러 수업이 끝날 때까지 책장에 꽂힌 책들을 살폈다. 고전 명작, 최근 출간된 소설, 다분히 교육적인 목적의 도서들까지 다양한 책들 중故 박완서 선생의 수필집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를 집었다.선생의 담담하고도 단단한 문체는 언제 읽어도 아주 새롭지도, 이내 지겨워지지도 않는다. 시대적 격차를 염두하더라도 닮고 싶은 글이었다.
그런 글을 읽고 있으면 문득 '에세이'와 '수필'이라는 표현의 무게감을 실감하게 된다. 용어 자체로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쓰기는 하지만, 요즘의 만연한 '에세이'에 비해 좋은 '수필'은 더 클래식한 맛이 있다. 그저 '손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도 하는 수필이라지만, 좋은 수필은 결코 대충 휘갈긴 글이 아니다. 순간의 감정에 떠밀려 쓴 글도 아니고, 유행을 좇아 어설픈 공감을 구하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아내면서도, 작가만의 사유를 더해 '뻔하지 않으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한 편의 글이다. 덕분에 1977년부터 1990년 사이 쓴 수필을 엮은 책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를 2025년에 읽고도 공감의 여지가 있고, 통찰의 기회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의 제목과 동명인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가정폭력이 만연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1983년 첫 도입된 '여성의 전화'를 소재로 삼아 가정폭력에 대한 당대의 사회 인식과 작가의 사유를 덧붙인다. 특히 폭력을 일삼는 남편들의 논리적 모순을 비꼬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여성의 전화 도입을 두고는 "미국에서 한다고 하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도입하려는 행태"라고 비난하면서도, 여성의 전화를 이용하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에 대해서는 "알고 보면 미국만큼 남편의 지위가 높은 나라가 없다. 한국이었으니 망정이지 미국이었으면 더 심하게 얻어맞았을 것."이라며 폭력범들을 두둔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이자 선망의 대상인 '미국'에 대해 본인들 입맛에 따라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남편들의 행태를 지적하는 박완서 선생의 문장은 여러 번 곱씹어 읽게 된다. 감정의 격앙은 없는데도, 깔끔한 논리와 단호한서술 덕분에 오히려 더 문제의식이 강조된다. 그 외에도 구정보다 신정을 더 중요히 여기며 '구정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이 탐탁지 않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담은 글도 기억에 남는다. 카지노 가입 쿠폰의 의견에 딱히 공감되지 않았는데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글맛이 좋았다.
김성환 작가를 기다리는 불과 20여 분 동안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를 읽으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작가의 태도랄까, 글을 쓰는 이유랄까, 뭔가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됐다. 상품으로써의 글과 책의 가치를 인정하나, 작가라면 상품을 만든다는 의도보다는자신의 의견을 마땅한 방식으로 빚어 한 편의 글을 짓는다는 의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 식으로 표현하면 '사물 그 자체 때문에 쓰는 사람'으로서의 작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반성이었다.
사실 글밥을 먹어보겠다고, 글만 써서 그럴듯한 생계를 꾸려보겠다고 대담히 나섰던 이십 대 중반 이후 10여 년 동안 고군분투하면서 어느 순간 나의 화두는 '팔리는 글을 쓰는 방법'이었다.시인이 되어보겠다던 이십 대의 김경빈이, 칼럼과 카피라이팅이라는 상업적 글을쓰는 삼십 대의 김경빈이 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속물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시기도 있었다. 글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쁨, 내 글로 인해 도움을 받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뿌듯함, 내 책을 둘러싼 편집자와 출판사 등등의 이해관계를 떠올리며 나는 '돈을 밝히는 속물'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작가'라고 스스로를 재정의했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故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으며'독자를 꾀기 위한 전략이나 작법'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끝내 한 편, 한 편의 수필을 담담히 읽을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뿐이다. 독자로서 내가 선생의 글을 곱씹어 읽었던 것은, 소재가 특별하다거나 유머가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글의 주제가 충분히 생각할 거리가 있음 직했고, 작가가 의견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잘 다듬어진 산책길처럼 자연스럽게 나의 눈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끝내는 글을 통해 작가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돋아났기 때문이다.
2021년에 취향존중 에세이 '이까짓 민트초코'를 출간하고 벌써 4년이 지났다. 감히 故 박완서 선생의 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애정과 신념을 담아 완성한 책이다. 당연히 '잘 팔렸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런저런 의도로 편집자와 책을 기획하고, 에피소드를 구상하고, 문장을 고쳤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나에게는 한 편, 한 편 소중하고 재미있는 글이지만 '독자를 꾀기 위한 전략이나 작법'이 눈에 밟힐 때마다 괜히 민망하기도 했다. 내 글이 못나 보인다는 건 이제 더 좋은 글을 쓸 준비가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던데, 과연 그럴까?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느라 다음 책 출간이 기약 없이 미뤄졌는데, 다시 또 책을 출간할 기회가 오기는 할까? 아니 무엇보다도, 나는 과연 '예전보다 좋은 글'을 쓸만한인간이 되기는 한 걸까?
읽던 책을 덮고, 김성환 작가와 맛있는 쌀국수를 먹고, 달콤함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그러고도 일주일이 더 지났는데도 이런 생각이 잔잔하게 머물러 글을 쓴다. 그러고 보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