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라이브펍 stax fred
학교 계약은 불발되고, 공연지원서도 써야해서 마음이 바빴다. 그렇지만 2월이 아니면 장기로 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일단 갔다. 내꿈씨가 숙소예약이나 교통편, 환전 등 전부 준비하고 나는 갈아입을 옷만 덜렁 챙겨서갔다.
일본에서 제일 궁금한 것은 아무래도 음악인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사람들의 수요는 어느정도인지 였다. 인디카지노 쿠폰공연장은 꼭 가보겠다고 생각했고, 한국에는 없는 큰 규모의 레코드샵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짧게 다녀온 인상으로는도쿄는 음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인 것 같다.
첫날 음악 공연장을 알아보다가 도쿄 내 음악공연 일정을 모아놓는 웹사이트를 발견했다. 이 사이트에 업로드 되어있는 공연장만 해도 약 950개가 되는데 실제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건지!!! 매일 한 군데씩 돌아도 3년이 걸리는건가...!
https://www.tokyogigguide.com/en/gigs/calendar
수많은 공연 중에 가장 가고싶은 곳 하나를발견했다. STAX FRED이라는 공간에여성 솔로뮤지션 메구、사사히라 아야카와야마지의 공연이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아티스트들과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외국인이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왔다는 것에 놀라고 반가운 눈치였다. 10여평 남짓되는소박한 이 공연장은 2003년 6월에 오픈해서 23년째 운영 중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갖고있다.
https://staxfred.jimdofree.com/
우선 사운드 밸런스가 너무 좋고 따뜻해서놀랐다. 출연자들의 음악도 좋았다.
사사히라 아야카상은 멋있게 보이려고 하거나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아티스트다. 기타와 노래가 한 몸처럼 잘 붙어서 편안하게 봤다. 솔로로 공연하면 그룹이 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단조로울 수 밖에 없는데 사운드도 좋고,음악을 너무 잘 표현하니까 지루하게 느낄 틈이 없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5gRSQfoL4
야마지상은 기타 주자 아키라상과 함께 나왔다. 기타 두대와 보컬은 많이 보는 조합은 아닌데 저음부가 없어서 허전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즐겁게 보았다. 누구나 밴드를 하고 싶어하지만 사실 멤버를 모으고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각자 의견도 다르고 생업과 병행하다보니 스케쥴 맞추기도 어렵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혼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야마지상처럼 여건 될때마다 다양한 연주자 구성으로 공연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기 구성보다 중요한 건 멤버들 간의 호흡과 에너지라는 걸 느꼈다.
https://takazumiyamaji.bandcamp.com/album/total-entertainment
마치고 관객들과 뮤지션들이 다같이 섞여서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음악을 하는 덕에 유쾌한 사람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음악하길 잘했다 싶었다.
이 곳의 또 다른 재미는 일본주(사케)를 판매한다는 것! 보통 한국클럽에서는 맥주나 칵테일, 위스키가 흔히 판매되는데. 맥주가 동양문화도 아니고, 클럽에서 사케를 먹으면 안되는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우리도 다른 손님들처럼 사케를 시켜먹었는데, 사케 먹으면서 공연을 보니 더 재미있었다.
성공적인 첫 방문 후 사장님께 가사집도 드릴 겸 해서 마지막 날 한 번 더 방문했다. 이 날은 20년 간 이곳에서 매달 라이브하고 있는畑崎大樹(hatazaki taiki)상의 one man show 가 열렸다. 유튜브로 미리 찾아보니13년 전 영상에서 레게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모습이었다.
늑장부리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공연이 막 시작할 무렵 들어갔는데흰 머리를 길게 기른 타이키 상이 음악에 흠뻑 젖어 노래하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이 깊이몰입해 연주하는 그 모습을 그저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이 날 2시간을 내리 공연했는데, 앵콜요청이 들어오자 두 곡을 더 연주했다. 긴 시간 연주하며 끝까지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고 똑같은 에너지로 쭉 연주를 하셨다... 20년의 노련함이 느껴졌다.일렉기타와 통기타를 번갈아 가며 연주하고, 다양한 기물(링, 아이스크림 막대기?)을 이용해 사운드를 만드셨는데 MR도 없이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연습과 연구를 해오신 것이보였다.이 날 관객 중에는 14년째 팬도 있었다.아마 사장님이 대강 준비해주신 것 같은덮밥을드시고 있었는데 여기가 공연장인지 친구네 집인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njZsehfsvmY&list=PLRf1xuivDKhaLELNzd7RO7sPlA9aESuBo&index=2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은 인디 가수들이 노래할 수 있는 공연장이 한 손에 꼽을 정도인 것에 비하면 도쿄는 음악인들에게 놀이동산 같다. 도쿄라고공연장 운영 상황이 특별히 더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부산보다는공연에 대한 수요, 다양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음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노래할 기회가 많다는 점, 내 음악이 주류에서 인기있는 음악이 아니라도 좋아해주는 팬층이 확보된다는 점이 마음 든든할 것 같다. 이곳에선 음악만 열중해도 어느정도는 생활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20년 세월동안 그 자리를 지켜주신 클럽 사장님과 음악인들에게 존경을 보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