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타 K. 토마슨, 《악마와 함께 춤을》
분노!
시기와 질투!
앙심과 샘통!
경멸!
이런 카지노 쿠폰들을 긍정적으로 볼 사람은 많지 않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거의 늘 작은 일에 감사하고, 작은 일에 분노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시기와 질투는 마음의 평정심을 깨뜨리고 불화의 원인이 된다고 하고, 앙심을 품는 것은 심술궂음을 넘어서 전혀 고상하지 않다.
경멸은 어떤까? 외모나 가난, 피부색 등에 대한 경멸은 어쩌면 전근대적이고, 사회의 화합을 방해한다.
그래서 많은 위인들, 아니 위인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 아니 2류, 3류 자기계발서 작가들은 앞의 부정적 카지노 쿠폰들을 억제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가져야 한다고, 그럴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일에 분노하고,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하며 앙심을 품으며, 가끔 드는 경멸감을 부끄러워해왔다. 다른 이들이 그런 것 같으면 비판해왔다.
그런데 크리스타 토마슨은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그녀에 의하면 앞의 부정적 카지노 쿠폰이란 정원의 잡초가 아니라, 정원의 흙을 기름지게 하는 지렁이와 같은 것이다. 뽑아내고 걸러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있기 때문에 더욱 풍성해지고, 정원다워지는 존재다. 긍정적인 카지노 쿠폰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카지노 쿠폰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들 역시 인간다움을 이루는 요소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요소다.
저자는 잘못된 일에 대해, 부당한 일에 생기는 분노,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 서 있는 또 다른 사람, 혹은 더 좋은 차를 구입한 이웃, 더 빨리 진급하는 동료 등에 대해 가지는 시기와 질투, 내가 싫어하는 것을 굳이 강요하는 상사, 잘못된 방법으로 성공의 길을 걸어가는 유명인 등에 드는 앙심, 그리고 나와 경쟁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 등은 자연스러운 카지노 쿠폰이므로 굳이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길들이려 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악마(devil)’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카지노 쿠폰이므로 ‘악마와 함께 춤을’ 춰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간디를, 부처를, 공자를, 아리스토텔레스를, 루소를 비판한다. 대신 몽테뉴의 마음가짐과 니체의 철학을 옹호한다. 몽테뉴와 니체는 내게 우는 카지노 쿠폰을 부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게 부정적인 카지노 쿠폰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긍정적인 분노와 부정적인 분노가 구분되지 않으며, 정의로운 경멸과 부정의한 경멸도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카지노 쿠폰이든 가치가 있는 카지노 쿠폰이다.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카지노 쿠폰은 도구가 아니다. 카지노 쿠폰은 에너지를 주는 연료가 아니다. 카지노 쿠폰은 당신을 섬겨야 하는 머릿속의 작은 집사가 아니다. 카지노 쿠폰은 마음의 벽장에서 치워야 할 잡동사니가 아니다. 지렁이가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카지노 쿠폰은 내 삶의 일부다. "
그런데 그럼 그런 카지노 쿠폰들이 나와 사회에 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부정적 카지노 쿠폰이 드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은 알겠으되, 그 후의 반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가 무척 궁금하다. 물론 저자는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분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분노를 괴물로 만들어내지 않으려면 이 카지노 쿠폰을 정직하게 탐구해야 한다.” 어려운 말이다. 분노의 발산이 아니라 그것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살펴보라는 말인듯하다.
시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시기를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료’로 사용하거나 불평등이나 불공정을 해결하기 위한 ‘동기’로 사용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말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어쨌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미 그런 연료와 동기로 쓰인 카지노 쿠폰은 시기가 아니지 않을까?
경멸은 더욱 어렵다. “그저 건전한 자아 인식을 가지고 경멸을 느끼면 된다.” 느껴지면 경멸을 그대로 두라는 얘기인데, 그러면서도 자아 인식을 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내가 어떤 상황에서 불구자에 대한 경멸을 느낀다면,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감사하라는 얘기일까? 그러면서 여전히 몸이 불편한 이들에 대한 경멸감은 유지하고? 그런 말은 아니겠지만,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궁금해진다.
분명 길은 있을 터인데, 내가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게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길은 매우 좁아 보인다. 긍정적인 카지노 쿠폰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좁은 길인 것 같다. 부정적인 카지노 쿠폰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그것을 받아들이되 그 카지노 쿠폰에 휩싸이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