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샤일록 작전》
“이 책은 픽션이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성격, 장소, 사건은 저자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거나 가공된 형태다. 실제 사건이나 장소,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포함한 실존 인물과 조금이라도 닮은 부분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다.”
많은 카지노 게임의 맨 끝에 자주 쓰이는 이 문장. 이 문장 자체를 카지노 게임의 소재로 삼아버리고 있다. 그래서 이 카지노 게임이 정말 허구인지, 아니면 ‘거의’ 사실인지를 헷갈리게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자신이 스스로 카지노 게임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필립 로스는 이런 짓을 여러 차례 했다). 허구와 사실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그 허물어진 틈새에 자신의 메시지를 구겨 넣는다. 독자는 카지노 게임의 문장 사이로 어느샌가 스며든다.
필립 로스는 거의 모든 카지노 게임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자아를 짙게 인식한다. 이 카지노 게임도 마찬가지다. 이 카지노 게임에서는 유대인으로서의 개인적 정체성보다는 유대인의 국가와 민족으로서의 존재 조건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1988년이 배경이고, 1992년에 발표한 카지노 게임이지만, 이 문제의식은 여전히, 아니 더욱 증폭되어 유효한 것이다(사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이 카지노 게임이 번역되어 나온 의미가 있다고 본다). 주로 유럽인들에게서 핍박받아온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여 아랍인을 핍박하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그러나 필립 로스는 절망하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의 배경에는 데미야뉴크라는 인물에 대한 재판이 있다. 잘 모르던 인물이다. 이스라엘이 전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물으며 진행한 재판으로는 아이히만 재판이 가장 유명하고, ‘죽음의 의사’ 요제프 멩겔레에 대한 추적도 유명하다. 데미야뉴크 재판도 당시에는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한다(그러나 검색해도 많은 결과가 나오진 않는다. 그러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공포의 이반’이라 불렸던 인물. 그는 소련의 붉은 군대 병사였다 포로가 된 후 자진해서 나치 SS의 보조 인력이 되었고, 유대인 수용소에서 갖은 악행을 저질렀던 인물. 전후에는 신분을 속이고 미국으로 이주해 클리블랜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재판에 넘겨는 데미야뉴크는 이를 부인한다. 자신은 그 ‘공포의 이반’이 아니라고. 이 카지노 게임이 발표되는 1992년까지도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재판을 보기 위해, 그리고 다른 카지노 게임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필립 로스가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형식이 바로 이 카지노 게임이다.
그 전에 필립 로스는 자신을 행세하면서 다니는 또 다른 필립 로스에 대해 듣는다. 예루살렘에서도 그를 만난다. 또 다른 필립 로스, 카지노 게임가 필립 로스는 그를 ‘모예스 피픽’, 즉 ‘모세의 배꼽’이라고 지칭한다(아마도 계속 이름을 가지고 설명하기가 카지노 게임가도 곤란하지 않았을까?). 필립 로스가 모예스 피픽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필립 로스는 디아스포리즘을 주장하고 다녔다. 아직 붕괴되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의 저명한 반체제 인사 바웬사를 만나는 등. 디아스포리즘은 유대인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2천 년 동안 핍박받으며 살아왔던 유럽으로 돌아가 살아야 평화가 온다는 생각이다. 그건 앞에서 얘기했던 유럽인에 핍박받았으면서도 정작은 그 화풀이를 아랍인에게 해대는(지금은 더 심한)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단 며칠 동안 여러 일을 겪다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납치를 당하고, 풀려나면서 협조하기로 동의한다. 카지노 게임의 이야기는 딱 거기까지다. 아마도 바로 아네테로 넘어가 무슨 일을 한 모양인데(그게 ‘샤일록 작전’이다), 그 이야기는 카지노 게임에 등장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에필로그라는 형식으로 전한다. 그러나 에필로그 역시 카지노 게임의 일부분인 셈이다. 이미 썼던 것을 모사드의 협박, 혹은 부탁으로 빼고 출판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무슨 내용일까, (현실이든 카지노 게임 속 인물이든) 카지노 게임가 필립 로스는 아테네에서 무슨 일을 한 것일까? 그는 모사드를 위해 어떤 일을 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수법이다. 카지노 게임을 쓴 필립 로스는 자신이 주인공이 카지노 게임에서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염두에 두고 있었을까? 나는 그게 궁금해진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 피해자는 언제까지도 피해자일 수 있는가? 피해자는 그 피해를 무기로 다른 이들에게 가해자가 되어도 되는가? 그게 민족과 카지노 게임라는 거대한 틀을 가지게 되면 어떤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작고한 필립 로스가 이미 수십 년 전에 문제를 제기했던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