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마음이 휑하니 비어버린 날에는 어린 시절 가족끼리 둥그렇게 둘러앉아 먹던 음식이 생각난다. 바람 소리가 위협이라도 하듯 쉬익 쉬익 부는 그런 날이면 꼭 따뜻한 국물을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연탄보일러를 때던 시절 간신히 데워놓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삐걱대는 스테인리스 문을 열고나면, 기다렸다는 듯 찬 바람이 달려들곤 했다. 옥상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을 오르고 나면 옥상 한 귀퉁이에 김치 항아리가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항아리에 손을 불쑥 집어넣은 뒤 묵직하게 익은 김치를 꺼내 등을 토닥이다 보면, 아삭한 식감이 아련하게 남은 묵은지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묵은지를 투박한 식칼로 서걱서걱 썰어 물이 끓는 냄비에 멸치와 다시마 몇 줌을 한데 넣어 뭉근히 끓여 내면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방 안을 채웠고 이불 아래 넣어두었던 수제비 반죽은 그새 딱 떼어먹기 좋을 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뚝 뚝 떼어다 한소끔 더 끓여 내면 찬 바람이 지나다니는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텅 빈속을 따스히 채워주던 김치 수제비가 밥상을 채웠던 풍경이 아직까지 또렷하게 남아있다.
먹을 게 많아지고 선택지 또한 많아졌고 어떤 걸 먹어야 할까 그런 고민이 습관처럼 박힌 요즈음,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입에 쉽게 물리고 자연스레 어릴 때 먹던 음식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해 겨울 담아준 김치를 꺼내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렇게 했듯 서걱서걱 썰어 본다. 멸치 대여섯 마리, 다시마 몇 조각을 물에 넣어 육수를 끓이는 동안, 오목한 나무 그릇에 와르르 쏟아낸 밀가루 위로 미지근한 물을 쪼르륵 흘려보내며 힘껏 치대 본다. 손가락 끝과 사이사이에 엉겨 붙은 녀석들을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다 보면 어느새 동그랗게 뭉쳐진다. 비닐을 살포시 덮어 반죽을 숙성을 시키는 동안 썰어둔 김치에 고춧가루 몇 스푼과 참기름을 쪼르륵 더해 빈 냄비에 한참이나 볶다가 끓여둔 육수를 부어 한소끔 더 끓인다. 김치가 애매하게 익었다면 감자를 넣어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뭉툭하게 썰어 전분기가 좀 빠지게끔 물에 담가두었다가 잘 털어내 반죽을 넣기 전 육수에 넣어 뭉근히 끓이면 제법 구수한 맛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김치든 감자든 부재료들은 취향껏 선택을 하고서 잘 부풀어 오른 반죽을 들어 올려 뚝뚝 한 조각씩 뜯어내 넣다 보면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고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녀석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면 한참이나 끓이던 냄비 아래 불을 끄고 오목한 그릇에 담아낸다.
날이 점점 추워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던 그런 계절은 저물었고 이제 꽤나 긴 시간 찬 바람이 불 것이다. 겨울은 멀었지만 가을이 아득해지는 즈음, 오늘은 수제비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