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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Aug 17. 2021

EP 5. 무료 카지노 게임 그만 할래요.

유학 온 지 5일 만에 방문에는 이런 종이가 붙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 귀가 얇다.


물리적으로는 꽤 두꺼운 귓불을 갖고 있지만, 남의 말에 쉬이 흔들거린다는 면에서 무료 카지노 게임 귀가 매우 얇다. 어떻게 보면 장점일 수도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도 있는데, 이게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보지도 않고 선배들이 해주는 조언에, 친구들이 해주는 말에 너무 귀를 팔랑거렸던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나는해보기도전에이미포기했다. 취업말이다. 대학교를다닐때1년휴학을했었는데, 그때에버랜드에서기숙알바를했었다. 그때세상진상이란진상은다만나보고서비스직은내가할수있는일이아니란걸깨달았다. 세상이호락호락하지않다는것을배운후로공부의욕이솟았다. 그래서복학을기점으로내학교성적은눈부신상승세를이어나갔고, 4학년1학기에는꽤많은과목을들었음에도불구하고분자생물학과경영학, 그리고교양까지모든과목에서A+를맞는쾌거를이뤄냈다.


그런성취도잠시, 취업의문은상당히높아보였다. 나는취업멘토링이나대외활동을해본적도없었고, 영어도잘못하는데다가, 인턴쉽도안해봤고, 무엇보다다들그렇게찾으라는내가하고싶은직무또한찾지못했다. 뭐가뭔지를알아야나한테맞는게뭔지알것아닌가. 그래서도망치듯대학원을선택한것이었다. 물론중간에영국을다녀오고한국에서인턴을하기도했지만, 결국내가"다음단계"로지정한것은대학원이었다. 석사를하지않으면전공을살려서취업을하기어렵다는말에그런결정을했던것이다. 참어리석게도그당시에는한번도취업공고를살펴볼생각조차하지않았다. 괜히들여다봤다가낙담만할것같아서였을지도모른다.


그런데 석사를 오고 나니, 또 다들 박사를 하라고 했다. 한국 대학원에 비해서 우리 학교 우리 과는 PhD 진학률이 80%나 된다며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동기는 20여 명 정도였는데, 대부분 다 PhD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우라 나라만큼 높지 않다. 우리나라만큼 대학 진학에 사활을 거는 나라가 아니고, 랭킹이란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이미 대학교들이 평준화되어있어서 독일 아이들은 대학교에 진학할 때에도 집 가까운 데로 간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부를 진짜로 더 하고 싶은 아이들만 대학에 진학한다. 또 그중에서 진짜로 진짜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애들만 대학원에 진학한다. 이렇게 거르고 걸러진 공부 덕후들이 대학원에 있는 것이다.


나는그저취업이안될것같아서취준의일환이라고생각하고대학원에진학한것이었기때문에(게다가학비도공짜라고하니안할이유도없지않은가!) 처음에동기들과괴리감이많이느껴졌고, 스스로부족하다는생각도많이했었다. 나는소위말하는"과학자로서의열정" 따위는없고, 그저졸업장한장따러온생각없는애가된것같은기분에자주사로잡혀누가나무라지도않았는데괜히혼자주눅들기도했다. 이러한또래압박이있는상황에서PhD가아닌다른진로를생각하고있다는것이왠지나를"학계를저버린배신자"로만드는것같았다. 그래서문득문득"와진짜이길은내길이아니다."라고수없이되뇌는한편, PhD 공고가이메일로날아오면꼼꼼히살펴보곤했었다.




2년의석사유학동안잘했다고생각하는것한가지를, 정말 딱한가지만얘기해보라고하면나는이종이를내기숙사방문에붙인것이라고대답할것이다. 정말크기만컸지, 끔찍할정도로못생기고지저분했던기숙사방을조금사람살만한곳으로바꿔놓고나서내가제일먼저한일은바로이종이를방문에붙이는일이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무조건 해외에서 자리잡고 살기! 2년동안 충분히 할 수 있다!!!

당시 내 룸메이트들은 모두 유러피안들이었고, 주변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 대놓고 한국어로 떡하니 써서 붙여놨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드라마 주인공들이 목표하는 것을 책상이나 벽에 붙여놓는 걸 보고 따라 하길 좋아했었다. 처음에는 그냥 있어 보이려고, 열정 쟁이인 척하려고 붙여놨었는데, 지금의 나는 이 종이의 힘을 믿는다. 내가 이렇게 종이에 써서 붙여놓은 주문들은 언젠가는 꼭 이루어졌다. 토익 800점 이상을 맞아야겠다고 적어놨을 때도, 전과목 A+를 맞아야겠다고 적어놨을 때도, 독일 대학원에 가겠다고 적어놨을 때도.


그래서 이번에는 해외취업을 목표로 삼았다. 내가 유학을 온 가장 큰 목적이 외국에서 살기 위함이니, 2년이라는 기간은 그걸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2년 안에 나는 내 목표를 이뤄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연습장 한 장을 북 찢어서 매직으로 쓱쓱 적고 가위로 너덜너덜한 부분을 잘라내고 저렇게 방 문에 붙여뒀다.


그 후로 저 문구는 차츰차츰 잊혔고, 종이 또한 너무 조악하게 붙여둔 탓에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의식 중에 내 목표가 상기가 되었던 것인지 나는 꾸준히 공부하는 와중에도 CV를 업데이트해두었고, 간간히 취업정보를 찾아보면서 독일에서 내가 석사학위로 할 수 있는 직무들에 대해서 찾아봤었다. 처음에는 PhD를 하기가 싫어서, 공부는 제발 좀 그만하고 싶어서 research assistant나 research associate, lab technician으로 검색해서 찾아봤었다.


Linkedin, indeed, stepstone과 같은 잡 포털에서 생명공학, 생명과학, 생물학 등등 biology 쪽을 공부한 석사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들을 살펴보다 보면 진로는 PhD 아니면 위의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은 착각을 쉽게 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독일어로 일을 할 수준이 전혀 안됐기 때문에, German proficiency를 요구하는 일자리나 아예 독일어로 올라오는 공고 자체는 제외대상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일 취업은 참으로 암담해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내가 갈 곳이 없었다. 한국을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한국 취업 준비도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감이 들었다. 학사졸업할때에도학사로는취업이안될것같아서석사를온건데, 석사졸업할때에도석사로취업이안될것같아서박사를가야한다니? 그런데박사따면취업잘되나요라고묻는내게누구도뾰족한대답을해주지않았다. 팔랑거리던귀가멈춘 건 바로 그때였다.


아, 이대로 가다간 평생 무료 카지노 게임만 하다가 죽겠구나?


결단을 내렸다.



저 이제 무료 카지노 게임 그만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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