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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은 Oct 28. 2019

무료 카지노 게임해! 공각기동대 세대가 오기 전에.

취업에 성공했지만 허무하다는 배부른 소리


책상만 한 키보드 위에 올라가는 열개의 흰 손가락.

그 손가락은 각각 세 갈래로 갈라져 30개가 되었다.

그리고 소름 돋을 만큼 빠르게 키보드 위를 움직였다.

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사이보그였다!


과제 때문에 봤던 [무료 카지노 게임]. 교수님은 육체와 정신의 소유에 관한 철학을 가르치셨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키보드를 두들기는 기계손만 남았다. 아마 다들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저런 손이 생기면 과제 금방 할 텐데.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2학기 말. 새내기 때의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소논문만큼의 과제를 수업마다 제출하면서 배운 것은 짧은 글을 길게 늘이는 화려한 부사와 접속사. 의미 없어 보이는 장면을 의미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포장하는 언변뿐이었다. 당장의 과제를 해결하기 급급한 오늘들. 동기들끼리 모이면 사라져 버린 꿈과 낭만, '문송'한 취업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프라임이니 뭐니 하는 정부 사업으로 문과 대학 정원수가 줄고, 소프트웨어 단과대학이 신설되었다. 들어오는 새내기들은 단과 대학에 상관없이 기초필수 과목으로 코딩을 배운다고 했다. 코딩하는 인재가 요즘 잘 나간다나. 초등학생들도 배운다는 코딩의 바람은 대학교에까지 불어왔다.


무료 카지노 게임 세대가 오기 전에 취업해야 해!


공각기동대 세대. 우리는 밑 학번을 이렇게 불렀다. 문과로 대학에 들어왔음에도 코딩을 통해 문이과 통합형 인재로 자라날 녀석들. 취업 준비는 우리보다 이삼 년 늦게 시작하겠지만 실용 역량에 힘입어 기업의 워너비 인재로 손꼽힐 애들. 우리랑 똑같은 사람처럼 보일 테지만 세 갈래씩 갈라지는 손가락을 가진 무시무시한 기계인간!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공각기동대 세대가 졸업할 때쯤이면 우린 찬밥 신세가 될 거야!"

우리의 목표는 공각기동대 세대가 취업 시장에 나오기 전에 취직하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말이나 쉽지. 졸업은 멀었지만 취직 걱정 먼저 하고 있던 우리였다.


대학교 2학년 말, 우리는 혹독한 대2병을 겪고 있었다. 중2병이 '나'의 본질,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간섭받지 않을 수 있는 나는 어디까지인가? 등의 (흑역사를 만들기 딱 좋은)형이상학적인 고민에서 비롯된다면 대2병은 철저한 실용주의적 걱정이 주를 이뤘다. 대학교에 가지고 들어온 꿈과 낭만은 사라지고, 다가오는 졸업이 무서워지는 시기. 가늠도 되지 않는 어렴풋한 미래를 제로베이스에서 설계해야 하는 시기. 우리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 나, 취업할 수 있을까?

- 나, 돈 벌 수 있을까?

- 내가 취업시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동기들은 다가오는 3학년을 이렇게 대비했다. 첫 번째는 경영학이나 광고, 소프트웨어 혹은 디자인 등 취업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만한 부전공 찾기. 다른 하나는 휴학을 하고 스펙을 쌓거나 힐링하러 떠나기.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던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는 되어 있겠지 하는, 다소 무책임한 생각으로 걱정을 덮어 두고 나니 남은 것은 일을 벌이고 해결하는 과정뿐.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번갈아 하다 보니 졸업이 코 앞에 와 있었다.


취업하니까 어때?


대학에 입학한 지 4년 하고도 한 학기. 육 개월 휴학기간을 빼면 꽉 찬 대학 생활이었다. 내가 졸업할 동안 졸업한 동기는 사십 여 명 중에 대여섯 명 정도. 그중에서도 나는 취직이 이른 편이었다. 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이주 전, 취직이 결정 났다. 종강 2주 뒤 바로 출근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 년이 우울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빨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자기소개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던 시기였다. 불합격 문자를 받을 때마다 사회에서 거절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기도 했고. 겨우 합격 전화를 받고서야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허무할까?


다가올 다음 날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없었다. 쉼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는 건지. 애초에 대학의 다음 단계가 직장인 건지. 나는 걱정에 쫓겨 졸업과 취직을 한 기분이었다. 공각기동대 세대가 오기 전에! 그치들이 내 밥그릇을 빼앗기 전에!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 전에!


그런데 후배들 이야기를 전해 듣다 보면 그네들도 별 다를 건 없더라. 아는 동생은 너무 다양한 걸 배워서 자기가 뭘 배우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전에는 특별했던 기술이 모두가 할 줄 아는 것이 되어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정말? 하고 반문하게 되는 고백이었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얼른 취업해야 한다고 등 떠밀었던 공각기동대 세대는 허상이었다. 괜히 혼자 불안해서 취직 못할까 봐 조급해하고 울던 날들. 쉼 없이 학교 다음 바로 사회로 등 떠민 것은 공각기동대 세대가 아니라 나였다니. 이 얼마나 흔한 90년대 스포츠 만화 같은 결말인가?


- 날 괴롭히던 걱정, 사실 나는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던 거야!


요 한 줄이 내가 동생한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지만, 부끄럽고 오글거려서 말을 아꼈다. 그리고 대 2병을 먼저 겪어본 사람으로서, 충고를 듣는다고 해서 안 불안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동생을 위한 우쭈쭈와 달다구리 기프티콘뿐이었다.


결국 우리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두려워했던 공각기동대 세대는 우리랑 다를 것이 없는, 우리 같은 요즘 젊은이들이었다. 너희도 대2병을 앓고 있구나. 다들 찝찝한 걱정거리는 안고 사는구나. 내가 휴학을 결심했을 때처럼. 동기들이 부전공을 선택했을 때처럼. 다들 학과와 대학 취업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위협은 졸업 이후를 무서워하던 우리가 그린 허깨비였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졸업하는데 크게 다를 건 뭐람,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더라.


중2병, 대2병, 그다음은 직2병?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하면 마음이 좀 안정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 이상하게 허무하고 또 스멀스멀 불안했다.


낭만이 깨지고 목표가 없어지고 내가 별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주저앉는다.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2때도, 취직에 대해 고민하던 대2때도 똑같았다. 그리고 취업이 확정된 후, 나는 그 때의 불안이 반복될까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회사와 사회생활, 진짜 어른의 삶이라는 환상을 품은 출근 전 마음가짐이 대학교 입학 시기와 비슷했다. 나에게 취직은 대 2병의 결론이었지만, 취직 확정과 동시에 다시 과정이 되어버렸다. 대 2병이 왔던 것처럼 직장에 다니면서도 내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면 어떡하지? 회사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까 봐 문득 무서워졌다.


취직 이후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미뤘던 행복을 회사를 다니면서도 찾을 수 없을까 봐. 몇 년 단위로 끊기고 이어지며 내 삶의 목표가 되어주던 정규 교육과정과 대학, 취업이라는 베이직 코드 이후의 목표를 내가 못 찾을까 봐. 이다음의 목표가 나를 전처럼 간절하게 만들지 못할까 봐.무료 카지노 게임 세대라는 허상을 만든 것 처럼, 또 이름모를 가짜 불안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괴롭히게 될까 봐.


'직2병'의 전조증상은 너무 일찍 나타났다.



참! 스쳐가며 읽은 뉴스에 따르면, 요즘 애들(그래 봤자 고등학생이겠지만!)은 키보드로 타자를 잘 못 친다고 한다. 하도 스마트폰을 만져서 스마트폰 타자가 키보다 타자 속도보다 빠르다나? 우리가 걱정했던 손가락 30갈래의 무료 카지노 게임 세대는 더 먼 미래를 기약해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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