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어쩌다 보듬은 것
문득 아프지 않은 날을 셈해보았다. 아마도 억울함이 이유였을 것이다. 아프지 않았던 날은 대략 보름에서 20일 정도 된다. 확진을 받은 지 120일째인 오늘, 나는 100일가량 카지노 게임에 시달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깨작깨작 밥알을 튕기다가 철희에게 말했다. “지금껏 카지노 게임을 잘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냥 카지노 게임이랑 같이 사는 거네.” 나에게 ‘카지노 게임인’이란 별명을 붙여봤다. 그 이름을 떠올리자, 그간 나는 환자였다가 카지노 게임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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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좌측 등 카지노 게임과 복통 때문에 열흘째 거의 집에만 있었다. 보통 3~4일이면 가닥이 잡히는데 이번 녀석은 참으로 독하다. 정원까지 나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3일은 침대에만 있었는데,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비스듬히 누워 땀만 흘렸다. 어느덧 어두운 방에서 카지노 게임을 껴안고 잠을 자는 것이 익숙해졌다. 블라인드 사이로 살짝 보이는 흰 하늘을 무시하고 카지노 게임이랑 나랑 나란히 누워서 눈알이 빠지도록 유튜브만 봤다. 덕자, 입짧은햇님, 쯔양, 야식이… 음식을 위장에 쓸어 넣는 이들의 영상은 나에게 카지노 게임은 줄이고 식욕은 키우는 재활 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잠이 오면 죄책감 없이 잠에 빠졌다.
두 달 전인가,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항암제에 부작용(오한)이 있어서 대체로 좌석 시트가 데워지는 타다를 호출하는 편이다. 호출이 너무 안 되길래 병원 로비에서 택시를 잡았다. “이슬람 사원으로 가주세요.” 택시 기사 대부분은 보광동 정중앙에 있는 우리집까지 가는 걸 싫어한다. 기사와 말씨름하기 싫어 나는 이슬람 사원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아무튼, 택시 뒷좌석에 타자마자 찌든 땀 냄새가 그득했다. 창문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로비에서부터 병원 정문까지 이어진 인도에는 환자와 방문자들로 가득했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기사는 정문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옛날 같으면 다 죽었어야 할 사람들인데 병원에서 억지로 살려놓네. 한국 사람들 참 병원 좋아해.” 나를 방문자 정도로 생각했던 걸까. 뒷좌석에서 나는 밥그릇만 한 암을 보듬은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카지노 게임과 병, 아픔에 대해서 생각보다 쉽게 말한다. “금방 나을 거야.” “살 좀 쪄야겠어.” “힘내! 이기자!” “강황이 그렇게 좋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건강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카지노 게임을 가진 사람은 그 아픔을 감추기에 급급하고, 카지노 게임이 없는 사람은 호전적인 승리의 에너지를 전하고 싶어 한다. 그럼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도 잘 모른다. 누군가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어딘가 부족하다. 적당한 말을 찾기까지 나는 나에 대해서 더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천벌을 받은 것도 아니고 카지노 게임을 상대로 폐관수련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어쩌다, 그걸 보듬게 된 것이다. 한 달 만에 본래 크기의 두 배로 커지기도 하는 암세포. 자기관리 부족에서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나는 병과 카지노 게임을 감추는 데 많은 힘을 써야만 한다.
암환자의 완치 초읽기는 발병 후 5년 뒤부터 시작된다. 그때까지 생존 여부로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전이와 재발이 없다면 나는 2024년에 간암과 이별하게 된다. 미래에는 더 나은 진통제, 더 나은 치료법이 생길 것이다. 어쩌면 카지노 게임 없는 암환자도 가능할지 모른다. 내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아픔에 대해 더 쉽게 나눌 수 있는 내일이다. 랑이가 앨리바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했던 말도 그거였다. “아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가 기대를 걸 수 있는 건 내일 정도다. 아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 내일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