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것들과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들
올 겨울 한기가 가시자마자 남편에게 집 옆 텃밭을 같이 가꿔보지 않겠냐고 프러포즈했다. 작년까지 주인집 내외분이 관리하셨던 곳인데, 고구마 수확을 끝으로 비어있었다. 이때까지 나는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콩나물을 키워본 것 말고는 무언갈 길러본 역사가 없었으므로, 일단 누구라도 끌어들여야 했다. 결과는? 대실패!
눈치 빠른 그는 이 결정이 추후 노동력 분배의 문제를 부를 것이며 곧 비극적 결말을 맺을 거란 이유로 내 제안을 거절했다.(역시 내 남편 똑똑). 그 후 몇 차례 더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우여곡절 끝에 최종 텃밭 메이트는 친정 식구들이 되었다.
땅 상태는 손볼 곳 없이 좋았다. 거름을 한차례 주고 4월 초쯤 시장에서 모종을 사다가 만만한 것들부터 심기 시작했다. 쌈채소 형제, 가지, 오이, 토마토, 감자, 고구마, 참외 정도? 그중 첫 수확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였다.
생각해보니 37년 인생 중 내손으로 따 본 거라곤, 돈 내고 입장한 제주 농장의 감귤뿐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네이버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따는 법을 검색한 뒤 '최대한 줄기에 가깝게 똑 끊지 말고 돌려서' 조심스럽게 땄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당연히 삼겹살이었다. 그때까지 내 머릿속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역할은 고기 먹을 때 곁들임 정도였으니까.
고기 먹을 때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싸 먹어서는 소비량이 수확량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무섭게 자랐다. 마트에서 늘 손바닥 만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 봐서 몰랐는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배추만 해지는 데는 고작 며칠이면 충분했다. 그때부터였다. 눈물겨운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의 전쟁이 시작된 건.
우선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쑥갓을 고기랑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캔참치에도 싸 먹고 된장국에도 넣어 먹고 나중에는 그냥 염소처럼 손에 들고 뜯어먹었다. 이마저도 역부족이란 걸 깨달은 뒤로는 나눌 사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30대 여성들은 친구들과 맛있는 걸 사 먹으러 다니지, 직접 먹을 것을 나누진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귀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버리는 죄업을 지을 순 없었으므로, 서울로 친구 집들이를 가던 날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대량 나누기로 결심했다. 받는 이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 깨끗이 씻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키친타월을 깐 지퍼백에 한 끼 분량으로 담았다.
토요일 올림픽대로는 역시나 차로 꽉 막혔고, 나는 조수석에 가지런히 놓인 다섯 개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봉지를 보면서 어이없게 웃다가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났다.
암 진단을 받기 2년 전쯤 엄마가 밭농사를 시작했었다. 팔 수도 없고 놀릴 수도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일이었다. 돌이 많은 흙이라 컨디션도 좋지 않고 무식하게 크기만 해서, 엄마가 매일 밭에 나가도 티가 안 났다. 나중에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그때 밭일로 스트레스받아서 암 걸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으니까... 그날도 전화로 주말에는 느이 아빠가 좀 일찍 나와서 밭일이나 도와주면 좋겠는데 맘에 안 든다는 엄마의 푸념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저녁으로라면을끓인다는엄마가요즘엔라면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넣어먹는다고웃으며얘기하는데갑자기화가울컥치밀었다.
"아니, 그걸 거기 왜 넣어 먹어~"
"그럼 어째. 냉장고에 한 움큼 남았는데 이 아까운 걸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버려. 못 먹음 어쩔 수 없는 거지. 아무도 엄마더러 밭 돌보라고 하는 사람 없는데, 왜 몸 상해가면서까지 하는 거야? 엄마가 시작해 놓고서는 같이 안 해준다고 서운해하는 거 좀 이상하지 않아?"
꽉 막힌 올림픽대로에서 그날 엄마와의 통화를 되짚다가 눈물이 왈칵 났다. 아마 엄마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 같다. 게으름 떠는 법 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걸 다 보았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던 거다. 더는 자라지 않는 자식들과 더는 달라질 게 없는 일상에서, 유일하게 자라나는 것들을 돌보는 일이 엄마에게는 귀했던 거다. 쑥쑥 자라나는 것들을 이제 더는 자라지 않는 자식들과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을 나는 왜 몰라봤을까....
느닷없는 전원생활 1년. 힘든 건 남동생과 아빠를 시키고 기분만 내는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럼에도 텃밭은 나를 나누게 하고, 귀하게 여기게 하고, 쑥갓 꽃과 감자꽃이 예쁜 걸 알게 하고, 엄마 생각을 하게 한다. 내일은 나도 엄마처럼 라면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넣어 먹어 볼까나. 엄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