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당신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으신가요?
길을 가다 만난 고양이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마치 영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주인공처럼 시간의 틈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어린 시절을 살았던 빌라 옆 놀이터 담장 위의 고양이를 찍은 아주 오래된 사진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면, 그래서 잠깐이라도 그 시간에 머물 수 있다면, 저 사진의 [틈]으로 가고 싶어요.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하교하면 엄마가 설탕에 재운 토마토를 주시던 순간으로요. 하지만 갈 수 없겠지요. 이미 아버지는 영영 만날 수 없고, 무수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전 이미 아버지 보다 더 나이를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IMF도 모르시거든요. 사진 한 장엔 그 시절의 그리움도 함께 있습니다.
묻습니다.
우리는 진정 소통하는 것일까요? 경계(영역)의 동물인 고양이만큼이나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있냐 묻고 싶어요.
전 아주 연약한 존재를 지켜야 하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제 약해질 순 없어 무조건 견뎠지만 맘처럼 쉽진 않습니다. 사회를 보던 날카로운 펜은 이미 무뎌진 지 오래. 보수적이고 소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런데, 가정 안에서도 서로를 몰라 상처를 입히지요.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완벽히 이해하며 살까요? 아마도 아이에 대한 불편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시간의 틈으로 거슬러 가면 10년 전 나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었을 겁니다. 저도 겪지 않았더라면 스스로의 공간은 발견조차 못하고 외부의 프레임만 바라보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보는 시선, <프레임은 유연해야 합니다. 경직된 시선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권력이 가진 경직이 가장 날카롭지요. 경험의 관계성을 늘 상기해야 합니다. 과거의 나의 시선은 그날까지의 경험에 기인한 것입니다. 12월 3일 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지만 그 영향력은 다를 겁니다. 아픔도 다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가치에 기반한 시선을 가져야 할 겁니다. 시선은 자유롭되, 마땅한 책임을요.
길고양이들의 경험을 우리가 알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고유함은 존중해줘야 할 가치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어떠한 선택을 할 때, 상대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침범하지 않는다면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맞추지 않고, 또 상대를 내 뜻대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요. 마찬가지로 정책결정자들은 스스로의 선택이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프레임을 보다 유연하게, 상호 관계성을 토대로 한 선택이 보다 나은 건강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방향은 다르더라도, 결국은 같이 살아가는 사회니까요. 길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보며 소심좌 한 명이 잠시 끄적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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