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일지(1)
대학원 원내 식당에 처음 들어갔을 때였다. 두리번두리번, 낯선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내 고개는 바삐 움직인다. 처음 보는 공간,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카지노 게임를 찾아내야만 한다. 메뉴를 고르기도 전에 내 시선은 언제나 조용히 숨을 수 있는 카지노 게임부터 찾고 있다. 그리고 나는 금세 익숙한 풍경을 발견한다. 출입문 가까이에 투박하게 마련된 넓은 식탁 위에는 선명한 파란색 카지노 게임가 붙어 있다.
그 카지노 게임는 늘 나만 앉는다. 처음에는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며 고마워했다. 실제로 줄을 설 필요도, 누군가와 카지노 게임를 경쟁할 필요도 없었으니 그건 분명한 편리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카지노 게임가 가진 또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 앉는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난다. 누구와 마주 앉아 밥을 먹거나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다.
거긴 오직 밥을 먹는 기능만이 존재할 뿐이다. 낭만과 우연한 만남의 재미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파란색 카지노 게임는 점점 나와 닮아가기 시작했다.주변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었고, 존재만으로도 이질감을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그 카지노 게임에 앉아있는 나는 늘 조금씩 외로웠다.
지하철을 탈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출근길마다 빼꼼히 고개를 들어 열차 안을 살핀다. 혹시나 내가 있어야 할 카지노 게임에 낯선 물건이 놓여 있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아, 오늘도 네 바퀴 대신 두 바퀴 자전거가 내 카지노 게임를 차지했구나.' 몇 번을 반복해도 마음을 표현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한마디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드디어 자전거 주인이 내릴 때가 되었다. 어림잡아 내 엄마 또래쯤은 돼 보였다. 그녀는 자전거를 끌며 내게 무심히 말했다. "여기 좀 비켜봐요. 내리게."나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여기 휠체어 카지노 게임인데요."잠깐의 침묵 후 그녀가 불편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사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꼭 휠체어만 타란 법 있나요?"그녀의 말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었다. 나는 더 이상의 말을 잃었다. 그렇게 내 카지노 게임는 다시 공허한 카지노 게임로 남았다. 달리는 열차 안 파란색 카지노 게임는 늘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나'와 닮아 있다.
내 존재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지워질 수 있는,
배려를 가장한 배제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 파란색 카지노 게임는 내 존재 자체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낙인이었다.
영화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장애인석은 입구 가까운 곳에 넓고 독립적으로 마련돼 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나는 혼자 떨어진 그 카지노 게임에 앉아야 했다. 어둠 속에서 함께 웃고 울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외딴섬에 앉은 것 같았다.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이 사회에서 구분된 존재로 살아가는 현실을 절감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파란색 카지노 게임말고도 분홍색, 노란색등 다양한 카지노 게임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임산부석에서, 누군가는 노약자석에서 자신만의 '카지노 게임를 지키기 위한' 긴장 속에 살아간다. 우리는 언제쯤 서로의 카지노 게임와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파란색 카지노 게임가 붙은 카지노 게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내 카지노 게임가 구분 지어진 이곳에서 언젠가는 다른 이들과 섞여 앉아 자연스레 웃고 떠드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그때가 온다면 나는 조금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조금 더 자연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조용히 파란색 카지노 게임 위에 앉는다.
제 글을 찾아와 주시고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카지노 게임서
당연한 존중을 받는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봅니다.
매주 화요일, 마음속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