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좀 재밌게 좀 살자고요-! 카지노 게임 추천!
제목과 같은 답답함이 올라온 건 2024년 회고가 올라오면서부터다. 다들 회고를 올리는데, 뭔가 익숙한 패턴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성장’과 ‘성공’에 포커스를 맞춰 하나같이 비슷하게 올라왔다. 올해는 무엇을 했고… 어떤 성장을 이뤘고… 뭐를 깼고… 뭐를 이뤘고… 뭔가 답답했다. 뭔가 이상했다. 모두 똑같은 사람은 아닐 텐데, 뭔가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
아니. 분명 우리는 다 다른 삶을 무려 1년 동안 살았다. 옆에서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 신혼부부도 각자 다른 이야기들이 있거늘, 왜 우리는 다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만 반복하고 꺼내놓는지 도대체 의문이 들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슬펐다. 다름은 아니었다. 다들 각자 스트레스를 풀어낸 이야기,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이야기, 놀랄만한 이야기와 인사이트, 기억에 남는 대화, 사랑, 순간, 재미들이 있었음에도 성장과 성공이라는 결과로 수렴되는 것이.
그래서 내 안에 터져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아 좀 재밌게 좀 살자고요-! 카지노 게임 추천!”
그래.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더 정확히는 재밌게 좀 자신의 삶을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재미에 집착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자기가 재미있는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반짝반짝해지는 사람들을 한 번 떠올려보자.
다음화를 기다리는 오타쿠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여러분이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정말 열심히 들어주고 질문해 주는 사람이 앞에 있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러면 있는 힘, 없는 힘도 내면서 그 이야기를 열심히 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다음화를 기다리는 오타쿠는 그 힘이 드세다. 좀 더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내가 우울증으로 한참 고생할 시절에도, 나는 열심히 용돈과 생활비를 모아 어떻게든 여행을 갔다. 친구가 공연을 한다길래 가이드 겸 원주에 가보는 한 편, 어떻게든 KTX비를 모아 대전으로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 거기서 만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인사이트는 나에게 하나의 재미가 되어줬고, 이건 세상을 넓혀주는 하나의 인사이트가 되었다. 내 다음 회차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인사이트였으므로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다음화가 기다려졌다. 내 마음은 죽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다음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다음화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 나를 살린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절망에서 기어 나와 희망의 햇빛을 맞보았을 때 다들 이렇게 재밌게 살고 있을 줄 알았다. 다들 우울증도 공황도 안 겪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내 알게 됐다. 다들 나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진 않아서, 그만큼 재미에 대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는 좀 우울해졌다. 만약 평범한 상황에서 건강한 재미를 계속 쌓아나간다면, 발전시켜 나간다면 삶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밌을까.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설렐까. 그리고 이 건강한 재미들을 서로 공유해 나간다면… 와… 상상만으로도 나는 벅찼다.
알쓸신잡- 다음화를 기다리는 오타쿠들의 눈빛으로
그런데 어느 TV프로를 보니, 다음화를 기다리는 오타쿠들과 같은 사람들이 나왔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알쓸신잡. 유순한 눈빛이지만 약간의 광기와 다른 분야에 대한 흥미로 빛나는 그 눈빛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새로운 정보와 주제를 섞어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들에게는 막힘보다는 즐거움이, 지루함보다는 호기심이 넘쳐 보였다. 저 눈빛을 나는 알았다. 내가 타인에게 철학을 설명할 때 눈빛이었고, 내가 누군가의 전문분야의 (좋은 의미의) 발작버튼을 눌렀을 때 나오는 눈빛의 결이었다. 완전히 흥분한 눈빛은 아니었지만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든 간에 재미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 눈빛.
확실한 건 그 눈빛에는 힘이 실려 있다는 점이었다. 피곤하다고 느껴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 힘이 어디선가 솟구치고 있었다. 심지어 녹화시간만 잘 채우고 가면 되는! 그러면서도 내일 출근인! 사람들임에도 시간을 넘어서까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왜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그것이 그들에게 하나의 고도화된 놀이이자 재미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재미와 다른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끝없이 고도화한 사람들이 나누는 어떤 발전된 재미였다고 생각한다.
연간회고와 알쓸신잡
알쓸신잡에 나온 패널들은 돈과 효율로 연말회고를 진행할까? 얼마를 벌었는지 회고하고, 다음 해에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다짐할까? 아님 녀 더 많은 여행지를 ‘정복’하고, 인증숏을 올리겠다고 마음을 먹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성장과 효율과는 또 다른 기준을 세워 회고할 것 만 같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살아있을 것 같다.
돈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과 효율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성장과 그 결과물을 회고하는 건 너무나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오직 효율로만, 돈으로만 우리의 1년짜리 대하 장편소설을 판단한다면 얼마나 삶이 단조로워질까. 지루해질까. 나는 그것이 염려된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분명 생생하다. 1년의 이야기는 효력이 있다. 슬픔이 있었을 테고, 기쁨이 있었을 테고, 사랑과 환대와 어려움과 극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판단과 경우의 수가 그저 효율로만 채워진다면 그 무수한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 당신은 우주 어디로 흩어지는 걸까.
언제나 환대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환영한다. 특히 재미와 즐거움으로 깃들었던 여러분의 순간들을 환영한다. 여러분은 지금 살아있다. 여러분은 지금 생생하다. 즐겁거나 즐거웠던 순간들이 있다.
부디 내 답답함이 상처나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제목에 오해가 있었다면 풀렸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재미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한다. 알쓸신잡 형 대화는 더더욱. 내일을 살아갈 오타쿠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좀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 재미있게 좀 살아봐요!